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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영성
티벳의 혼, 총이 없어도 강한 진실의 힘[이웃종교의 향기] 티벳 승려 갸초 스님
문양효숙 기자  |  free_flying@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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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3.14  18: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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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서부의 티벳 땅에는 두 개의 얼굴이 있다. 하나는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순수와 깊은 불심(佛心)을 지닌 사람들이 살고 있는 평균 해발 4천 미터 고원의 아름답고도 신비한 나라, 다른 하나는 60여 년 전 ‘하나의 중국’을 외치는 중국의 침략과 그에 이은 대량 학살로 인구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120만 명이 죽임을 당한 고통과 비극의 나라다. 지난 3월 10일은 티벳의 수도 라싸에서 일어났던 ‘민중 봉기’ 55주년을 맞이하는 날이었다.

1949년 창설된 중국 공산 정부는 티벳을 무력 침공했다. 무력으로 수도 라싸를 점령한 중국은 티벳 정부와 주권을 포기하는 대신 불교 사원과 티벳어 등 티벳 민족의 문화를 지켜준다는 약속이 포함된 ‘17개 항목 협정’을 맺었다. 그러나 중국은 통치력을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이 조약을 어기고 사원을 파괴하고 승려를 탄압했으며, 이에 티벳인들의 저항이 시작됐다.

마침내 1959년 3월 10일, 티벳 전 국민의 무력봉기가 일어났다. 중국 정부가 티벳의 정부 수반이자 영적인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체포하려 하자 셀 수 없이 많은 티벳인들이 그를 보호하기 위해 시위에 가담했다. 그러나 시위는 무참히 진압됐다. 8만7천 명이나 되는 티벳인들이 목숨을 잃었고, 24살의 달라이 라마는 인도로 망명했다.

   
▲ 갸초 스님이 서울 양재동 구룡사 법당에서 절을 올리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서울 양재동 구룡사(조계종 통도사 서울 포교당)에서 만난 갸초 스님은 티벳 사람이다. 한국에 있는 7명의 티벳 승려 중 한 사람인 그는 2007년 통도사 주지 스님과의 인연으로 한국에 왔다. 티벳에서 태어난 그는 15살에 승려가 되기 위해 난민이 되어 인도 다람살라에 가서 14년간 불교를 공부하며 수행했다. 다람살라는 1960년대 인도가 지정한 서른다섯 곳의 난민 재정착 마을 중 하나로 달라이 라마를 포함한 티벳 임시정부기관과 불교 학교가 모여 있는 곳이다.

갸초 스님은 지난 2월 중국의 티벳 자치지구에서 일어난 티벳인의 분신을 언급하며 “티벳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고 말했다.

“분신한 사람이 2009년 이후 130명이 넘어요. 분신하면 시신을 가족에게 보내주지도 않고 공안들이 처리해요. 티벳 장례 문화는 그렇지 않거든요. 가족에게 보내서 친구와 친척들이 와서 위로해줘야 하는데 그러면 거기에 온 사람들까지 잡아가요. 게다가 가족을 찾아가서 분신한 사람이 원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다고 하면 보상해 주겠다고 회유하기도 하고요.”

분신한 사람들 중에는 특히 승려가 많다. 갸초 스님은 티벳의 저항운동에 승려가 적극적인 이유를 “불교가 삶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승려가 움직이면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더 크지요. 티벳 사회에서 승려는 배운 사람들이기도 하구요. 상황을 더 잘 알고, 배우기도 했고. 게다가 다른 사람은 행동하고 싶어도 가족이 있으니까요.”

갸초 스님은 “중국 정부는 티벳인들 삶의 모든 것인 불교를 말살시키려 한다”고 전했다.

“티벳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영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를 비판하도록 시키고, 사원 안에서는 승복을 입은 중국 공안들이 감시하고 있죠. 사원의 승려 수를 규제하고, 승려가 되려면 중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해요. 달라이 라마의 사진을 소유하는 것도 금지예요.”

   
▲ 티벳의 한 마을 ⓒ여경

1950년경 티벳 전역에는 6천 개 이상의 사찰과 수도원, 60만 명 이상의 승려가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와 70년대 대부분의 비구와 비구니, 낙파(탄트라 수행자)가 총살되거나 노예 캠프에서 강제노역 중 사망 또는 실종됐다. 사원은 모두 파괴되어 불과 5개 밖에 남지 않았고 유물은 약탈당했다. 1996년 시행된 ‘애국심 재교육’ 정책은 승려들이 필수로 받아야 하는 수업으로 달라이 라마에 대한 비난과 중국 공산당에 대한 충성 맹세를 주요 내용으로 한다. <티베트, 말하지 못한 진실>(알마, 2008)의 저자 폴 인그램은 중국 정부의 고의적인 사원 파괴를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귀중한 불교 회화 작품과 불상은 중국인과 그들의 명령에 복종한 티벳인의 손에 박살났다. 성스러운 마니석은 변기 만드는데 사용되었고, 가축 도살장이 고의로 사원 영내에 설치되었다. 티벳에서 가장 성스러운 사원으로 여겨지는 라싸의 조캉 사원이 돼지우리로 사용되고 성스러운 불경은 거름과 함께 쟁기질 당했다”

갸초 스님은 세상에서 가장 어린 양심수로 알려진 제11대 핀친 라마 실종 사건도 언급했다. 달라이 라마에 이어 티벳 불교의 두 번째 지도자인 핀친 라마도 전임자의 환생으로 계승된다. 1989년 10대 핀친 라마가 사망하자 탐사대는 6년여의 시간 동안 그의 환생을 찾았다. 달라이 라마와 탐사대는 1995년 당시 여섯 살이었던 겐둔 최키니마를 제11대 핀친 라마로 지정했으나 발표 3일 만에 중국 정부는 아이와 그 가족, 탐사대를 모두 연금했고 현재까지 행방불명 상태다. 10년이 지난 2005년 중국 정부는 걀첸 노르부를 자신들이 인정한 핀친 라마로 공표하기에 이른다. 걀첸 노르부의 부모는 공산당원이었고, 걀첸은 평소 달라이 라마를 반역자라고 비난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정부는 종교 탄압뿐 아니라 티벳 언어 말살정책 및 한족 이주 지원 정책 등을 펼치며 ‘하나의 중국’을 위한 ‘문화학살’을 진행해왔다.

“학교와 관공서에서 중국어를 쓰죠. 학교에서는 티벳어를 제2외국어처럼 수업하고 관공서는 권력자들이 전부 중국인이니 중국어를 자연스럽게 쓰고요. 지금 라싸 인구 절반이 중국인이에요. 이주 장려금이 나오거든요. 티벳 지형이나 기후가 워낙 험하니 정부의 장려금이 사라진다면 남을 중국인들은 많지 않겠죠.”

환경파괴 문제도 심각하다. 중국 정부는 중국 전체 영토의 4분의 1에 달하는 티벳 땅에서 무분별한 벌채를 진행해 전체 티벳 산림의 68%가 파괴되었다. 티베트의 강에는 수십 개의 댐 건설 계획을 수립해 악명 높은 ‘쌴샤댐’ 건설의 경우 수몰지역 주민 70만 명을 강제 퇴거시켰다. 게다가 1971년 티벳 고원에 핵무기를 들여와 티벳을 핵실험과 핵폐기물 처리 용도로 사용했다. 1995년 중국 정부는 티벳 고원에 고농축 핵폐기물을 매장한 사실을 시인했다. 갸초 스님은 “티벳은 황하를 비롯한 중국 3대강의 발원지”라면서 “환경파괴는 티벳 사람들만의 피해가 아니라 전세계적인 손해”라며 안타까워했다.

   
▲ 7년 전 인도 다람살라에서 한국에 온 티벳인 갸초 스님 ⓒ문양효숙 기자

이런 현실에서 티벳인들과 망명 임시정부가 원하는 것은 ‘실제적인 자치’다.

“역사적으로 독립국가임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우리는 현실을 중요시 여깁니다. 티벳 문화, 티벳 언어, 티벳 종교를 지킬 수 있는 진짜 자치구를 원해요. 지금은 말만 자치지 실제로는 자치가 아니에요.”

이는 달라이 라마의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판단이다. 달라이 라마에게 ‘실용’은 ‘집착하지 않고 분노하지 않으며 스스로의 반응에서 생겨난 것들에 휩싸여 남과 외부의 사건을 탓하지 않는 것’이다. 하루 네 시간의 명상과 오랜 시간 키워온 자비의 마음이 주는 초연함 때문일까. 깊은 깨달음에서 얻은 본질에 대한 통찰 덕분일까. 고국을 침략한 중국을 향해 분노하지 않고 ‘실용’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은.

갸초 스님은 “독립이 아니라 자치를 요구하는 건 또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를 미치지 않게, 서로 도움이 되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서로 평화롭고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다”라고 덧붙였다.

“달라이 라마께서는 자국민들이 분신을 하고 고문 받고 잡혀 가는 현실을 보면서도 ‘비폭력’을 말씀하세요. 스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총으로는 아무것도 못해요. 무력으로 중국을 이길 수도 없거니와 그건 중국이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빌미를 제공해줘야 완전히 진압할 수 있으니까요. 처음에 중국 정부는 티벳인들을 무장 테러범인 것처럼 선전했어요. 국제사회가 테러범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잖아요. 하지만 실패했죠. 달라이 라마 스님 덕분이에요. 스님의 비폭력 방침을 전세계가 알고 있으니까요.”
“무력 저항을 생각하는 티벳인들은 없나요?”
“티벳인들에게 달라이 라마는 절대적이에요. 분신이라는 극단적인 선택도 자기 몸을 태우는 것이잖아요. 비폭력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죠. 자기 생명을 버릴지언정 중국인들에게 직접적인 해를 가하지 않아요. 달라이 라마 스님께서 20세기는 서로 싸우고 죽는 시대였지만 21세기는 대화하면서 풀어야 하는 시대라고 하셨죠. 싸우고 죽고 끊임없이 보복하고, 그런 건 이제 그만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가아지요. 정치 지도자들이.”

갸초 스님은 “중국 정부는 달라이 라마 스님이 계실 때 대화에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이 15대 달라이 라마 환생을 찾을 단체를 만들었다고 해요. 자기들 입맛에 맞는 사람을 찾으려고요. 달라이 라마 스님이 돌아가시기를 기다리는 것 같은데 완전 착각이에요. 왜냐면 달라이 라마 스님이 돌아가시면 젊은 세대가 총을 들 수도 있으니까요. 파국으로 치달을 위험이 있죠.”

   
▲ 룽타의 색깔은 눈 덮인 하얀 티베트의 설산들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여경

달라이 라마는 미국 기자인 토머스 레어드와의 인터뷰에서 “티벳의 혼은 여전히 살아있고 티벳 민족은 강인하다”며 ‘진실의 힘’을 강조했다.

“물론 총에도 나름대로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총의 힘은 단기적이고 일시적이지요. 결국에는 진실의 힘이 고개를 들지요. 무기의 힘이 진실과 부합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총은) 대부분 허위와 거짓과 관련되어 있지요. 그러니 총이 있는 곳에는 대체로 거짓이 있고 파괴가 있습니다. 정부가 너무 많은 국가 기밀을 지키고 있다면 아무리 군사력이 막강하더라도 나약하다는 증거입니다. 정부가 제 나라 국민에게조차 비밀을 감추려 든다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티벳인들에게는 총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 강합니다. 우리는 당하고도 여전히 진실을 말합니다. 거짓말도 하지 않고 우리의 실수를 감추려 들지도 않습니다. 진실은 약하지만 꾸준합니다. 약하지만 지속적이고, 때로 서서히 힘이 커지기도 합니다. 티베트도 똑같습니다.” (<달라이 라마가 들려주는 티베트 이야기>, 웅진지식하우스, 2008)

1960~70년대 네팔과 인도로 간 유럽과 미국 사람들은 티벳 승려에게 명상과 불교 철학을 배웠다. 1970~80년대 유럽과 미국에는 티벳 불교 센터가 생겼다. 세계 전역에 티벳학과가 생기고 불교 경전이 번역되었다. 달라이 라마, 소걀 린포체 등의 가르침을 담은 책은 불교 신자가 아닌 이들에게까지 널리 읽히고 있다. 티벳 불교는 쫓겨나고 탄압 받았지만 세계 많은 이들의 정신에 많은 깨달음을 선사할 만큼 영향력이 커졌다.

갸초 스님은 “대화를 시도하고 국제 사회에 끊임없이 알려나가는 것만이 우리의 방법”이라며 “티벳이 고유한 정신을 지키는 건 전세계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폭력적이지 않고 평화로운 문화는 전세계에 미치는 힘이 있어요. 우리가 싸우는 건 민족의 문제뿐만 아니라 그런 정신적 뿌리를 지키기 위함이지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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