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의 사목방문에 정치 논리 개입해선 안 돼”
교회가 축제 벌일 동안 한국의 람페두사 강정과 밀양에서 울고 있을 것

교황이 25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다. 이번 방한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아시아에 대한 관심과 분단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것임은 부인할 수 없으며, 필요하고도 긴요한 일임은 분명하다. 교황청 대변인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의 전언에 따르면, 교황은 한국 천주교 대전교구에서 개최하는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오는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4박5일간의 일정을 마련했다.

한국을 이미 방문했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00년 대희년을 앞두고 ‘아시아 교회를 위한 교황권고’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일천년대에는 유럽 대륙의 토양에서, 이천년대에는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대륙에 뿌리를 내렸던 것처럼 삼천년대에는 이처럼 방대하고 활력이 넘치는 아시아 대륙에서 신앙의 위대한 수확을 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밝힌 바 있으며,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번 방문 역시 큰 틀에서 이와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미 바티칸과 대한민국 수교 50주년을 맞이해 “대한민국 국민의 선익을 위해 한반도에 화해의 선물을 허락하시길 하느님에게 간절히 청한다”고 말한 바 있으며,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는 교황 방한 배경에 대해 “아시아의 여러 교회 중 분단된 한국의 교회를 제일 먼저 찾으심으로써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를 염원하며 아시아 청년들과 함께 기도하기를 원하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한 교황은 아시아는 “종교적, 인종적, 시민적 구성원들 사이에 평화로운 공존의 기나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며 아시아 지역에 대한 관심을 표명해 왔다.

그러나 이번 방문이 한국 사회와 교회에 미칠 파장을 생각할 때 그저 박수 치고만 볼 일은 아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자체는 반가운 일이지만 그 시기가 적절한지 따지는 것이다. 이번 방한은 한국 천주교회의 요청뿐 아니라 박근혜 정부의 요청도 작용했다. 그래서 교황 방한 결정 관련 보도에 대해 언론사에 엠바고를 신청한 것도 정부였다. 정부는 교황 방한 결정을 발표하면서 “박근혜 대통령 및 한국 천주교회의 초청으로 14일부터 18일까지 방한하여, 대통령 예방 및 대전교구에서 주최하는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 행사 참석 등 일정을 가질 예정”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한상봉 기자

교황 방한, 정부와 천주교회 중 누구에게 득이 되나?
“교황의 사목방문에 정치 논리 개입해선 안 돼”

교황은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아시아청년대회 참석하고, 충남의 솔뫼와 해미성지를 방문하고, 충북 음성 꽃동네도 찾을 예정이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한반도 평화와 화해를 기원하는 미사를 명동성당에서 봉헌한다. 이처럼 교황 방한이 순수한 사목방문의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방한 첫날 일정으로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는 정치적 일정이 포함되어 있다. 실상 청와대는 박근혜 정권 초기부터 친서를 보내 교황 방한을 요청해 왔다는 점에서, 이번 교황 방한이 외교적 측면도 지니고 있음이 분명하다.

교황이 가톨릭교회의 지도자면서 동시에 바티칸의 국가원수 자격이다 보니 박근혜 대통령 예방이 무리한 것은 아니겠지만, 두 차례에 걸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문이 하필이면 전두환과 노태우 군사정권 아래서 치러졌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부정선거’ 시비에 휘말려 있는 박근혜 대통령을 교황이 예방하면서 자칫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을 가톨릭교회가 ‘결정적으로’ 인정하는 듯한 인상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

이것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래 계속된 한국 천주교 사제들의 시국미사가 가진 의미를 희석시킬 것이다. 지난 대선에 불법 개입한 국가기관에 항의하는 시국선언에 이미 한국 교회에서 4,500여 명의 수도자와 11,724명의 평신도가 서명했으며, 사제들은 총 2,124명이 참여해 전체 한국 천주교 사제 4,800여 명 중 약 43%에 달하는 사제들이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번 교황 방한이 자칫 한국 교회 사제들의 입장과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은, 교황의 의지와 상관없이 교황 자신이 그동안 표명해온 바가 한국 교회에서 훼손될 위험이 있다. 교황은 그동안 사제들과 신자들의 정치 참여를 독려해 왔다. 특히 지난해 9월 16일 성 마르타의 집 소성당에서 행한 강론에서 “좋은 가톨릭 신자라면 정치에 관여해야 합니다. 스스로 최선을 다해 참여함으로써 통치자들이 제대로 다스리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통치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무엇일까요? 기도입니다”라고 말했다.

천주교 평신도들의 시국기도회와 사제들의 시국미사는 바로 ‘기도’를 통해 위정자들의 회개와 민주주의 회복을 갈망하는 의사표시였다는 점에서 정당하고도 복음적인 행위였다. 그리고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는 “시국미사는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지지를 표명했다.

이처럼 한국 교회가 박근혜 정부의 정당성을 문제 삼고 나선 상황에서,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서임 직전 사제가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쐐기를 박아서 논란을 일으켰다. 이 발언을 빌미로 당시 보수언론과 정부가 시국미사에 참여하는 사제들에 대한 종북몰이를 개시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당연히 정부에서는 염수정 추기경에 대한 지원사격을 아끼지 않았다. 염수정 추기경이 서임식에 참여하기 위해 로마로 떠날 때 장관급의 동행이 거론되었고, 결국 차관급 등 3명의 정부인사가 서임식에 참여했다. 지난 4일 거행된 추기경 서임 감사미사에는 당연히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참석했다.

▲ 지난 4일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열린 서임 감사 미사에 참석한 염수정 추기경 ⓒ한수진 기자

이 상황에서 추진되는 교황 방한은 자칫 현 정부와 일부 보수적 천주교 인사들의 입장에 교황이 맞장구를 치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다. 염수정 추기경은 2월 20일 교황청 공식 일간지 <로세르바토레 로마노>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에는 “더 이상 싸워야 할 권위주의적인 정부는 없다”고 현 정부를 변호하고 정의구현사제단 등이 “대통령의 퇴진을 주장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1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초청한 담화회에서 염 추기경은 “시민들은 공권력이 그들의 자유를 존중하고 자신을 대표한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오늘 박근혜 대통령은 염수정 추기경과 주한 교황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 교황 방한 준비위원장인 강우일 주교와 준비위 집행위원장인 서울대교구 조규만 주교 등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 하는데, 보도에 따르면 이날 오찬은 교황 방한과 관련해 범정부적인 지원이 이뤄지는 데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천주교 교황 방한 준비위원회의 요청으로 마련됐다고 한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는 지난 11일 국무총리 주재로 문화체육부 장관과 국무조정실장은 물론 기획재정부, 외교부, 법무부, 국방부, 안전행정부, 국토교통부, 보건복지부 차관들과 경찰청장, 소방방재청장, 관세청장, 대통령 경호실 차장 등이 모여 ‘교황 방한 지원위원회’를 여는 등 공을 들이고 있다.

물론 한국 천주교회 측에서도 같은 날 ‘교황 프란치스코 방한 준비위원회’를 출범시켰는데, 주교회의 의장인 강우일 주교가 당연히 준비위원장을 맡기는 했지만, 염수정 추기경과 유흥식 주교 등 충청권 주교들이 부위원장에, 그리고 집행위원장은 서울대교구 총대리 조규만 주교가 맡았으며, 대변인 역시 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허영엽 신부가 맡았다. 주로 메인 행사가 이뤄지는 충청권의 주교들과 서울대교구 인사들이 포진된 이번 준비위원회가 과연 얼마나 교황의 뜻을 잘 반영해 행사를 진행할지 궁금하다.

교회가 축제를 여는 동안 복음적 요청은 배제될 수도
“한국의 람페두사는 강정과 밀양…고통 받는 현장이다”

역사적으로 교황 방한은 그동안 두 차례 있었지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은 모두 군사정권 시절에 이뤄졌다. 1984년 5월 천주교 전래 200주년을 기념한 교황 방한 당시 광주 학살을 통해 집권한 전두환 정권이 얼마나 교황 방한에 공을 들였는지 잘 알려져 있다. 당시에도 이번과 마찬가지로 정부 차원의 ‘방한 지원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전두환 대통령은 환영사에서 “오늘 세계 가톨릭교회의 최고 영도자이시며 평화의 사도이신 교황 성하의 역사적인 한국 방문을 기쁘게 생각하면서 온 국민과 더불어 환영”한다면서,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이 이 땅에 이룩하기를 염원하는 것은 바로 그 평화와 정의이며 그러기 위하여 우리 국민이 이 땅에서 실천하고 있는 대의는 바로 반폭력과 화합의 행동지표”라고 전했다. 정권의 성격과 상반된 외교적 언사로 가득 찬 이 환영사를 2014년 8월에도 다시 보게 될지도 모른다. 1989년에 서울에서 열린 세계성체대회에 맞춘 교황 방한 역시 노태우 정권 시절에 성사되었다는 점에서 이번 교황 방한 역시 역사적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품게 한다.

▲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교황 프란치스코는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가난한 이들과 사회정의에 대한 관심을 쏟는 데에서 제외된다고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영신적 회개,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강렬한 사랑, 정의와 평화를 향한 열정, 가난한 사람들과 가난에 대한 복음적 감성은 모든 사람들에게 요구된다”(201항)고 했다. 그리고 “사회질서와 공동선 추구와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한다”(182항)고 했다.

교황 방한과 관련해 한국 교회는 두 가지 ‘현실론’에 직면해 있다. 교황 방한과 같은 대규모 행사를 유치하려면 당연히 국가권력의 지원과 협조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권의 부당성에 항의하는 기도와 행동을 중단하고 정부에 협조적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실용적 현실론’이 하나이고, 교황의 가르침에 따라 사회질서를 정의롭게 재건하기 위한 행동에 더욱 나서야 한다는 ‘현실참여론’이 다른 하나이다. 이 상충된 현실적 요청 사이에서 한국 천주교회와 프란치스코 교황이 어떤 태도와 의견을 가질지에 따라서 가톨릭교회의 ‘복음적 신실성’을 가늠하게 될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사목헌장>은 “교회는 결코 현세적 야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교회의 소망은 성령의 인도로 그리스도 자신이 하시던 일을 계속하려는 것 한 가지뿐이다. 진리를 증거하고, 판단하기보다는 구원하며, 봉사를 받기보다는 봉사하러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의 일을 계속하려는 것뿐이다”(3항)라고 천명했다. 교황 방한 자체가 절대적인 요청은 아니다. 그분에 대한 존경심과 별도로 교황 방한 이외에 다른 모든 사안이 상대화되어서도 안 된다.

교황은 줄곧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이들의 교회’를 호소해 왔다. 세계적 차원에서 한국은 유일한 분단국가로서 ‘세계의 람페두사’다. 그러나 한국 사회 안에서 람페두사는 청와대나 무수한 성지나 꽃동네라기보다 평화가 위협받는 강정마을이며, 생존이 위협받는 밀양이다.

“누가 이들을 위해 울어줄 것인가?” 하고 호소할 수 있는 곳으로 교황을 안내하는 게 교황의 뜻을 살리는 길이다. 단지 정부를 거들며 ‘천주교회만의 축제’를 위해 지금, 여기에서 울부짖고 있는 이들을 다시 배제하는 행위를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이 반복해서는 안 된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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