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예수] 마태오 복음 해설 - 167

57 날이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태아 사람인 부자 요셉이라는 사람이 왔는데 그도 역시 예수의 제자였다. 58 이 사람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내어달라고 청하자 빌라도는 쾌히 승낙하여 내어주라고 명령했다. 59 그래서 요셉은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고운 베로 싸서 60 바위를 파서 만든 자기의 새 무덤에 모신 다음 큰 돌을 굴려 무덤 입구를 막아놓고 갔다. 61 그때에 무덤 맞은편에는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앉아 있었다. (마태 27,57-61)

마태오 복음서에서 예수의 무덤과 부활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는 부분이다. 마태오 복음에서 여기에만 나타나는 인물인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이 주인공이다.

대본인 마르코 복음서 15,42-47을 마태오는 크게 줄이고 바꾸었다. 안식일 전날인 준비일(마르 15,42), 요셉의 용기(마르 15,43), 고운 베를 구입함(마르 15,46), 예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림(마르 15,46), 예수가 죽었는지 빌라도가 군인에게 질문(마르 15,44-45)한 부분이 마태오 복음서에서 삭제되었다. 명망 있는 의회 의원(마르 15,42)인 요셉은 부자요 제자로 바뀌었다. 빌라도가 예수의 시신을 요셉에게 내어주었는데(마르 15,45), 마태오 복음에서는 빌라도가 요셉의 요청에 따라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리라고 명령하였다. 깨끗한 베(59), 새 무덤(60), 큰 돌(60)은 마태오가 새로 강조한 내용이다.

▲ <매장(埋葬)> 세부, 프라 안젤리코, 1440년

마태오 복음이 쓰인 80년경 초대공동체와 유다교는 이미 사이가 서로 크게 벌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요셉을 의회 의원으로 소개한 마르코의 표현을 마태오가 그대로 인용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느님의 종은 부자들과 함께 묻힌다는 이사야서 53,9을 의식해서 마태오는 요셉을 부자라고 말한 것일까. 마태오 공동체에 부자 신자도 있었다는 뜻일까. 부자도 선행을 하면 바늘구멍을 통과하여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일까. 58절은 부자들과 권력자들은 서로 쉽게 소통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시신을 무덤에 모시는 때가 저녁임이 마태오에게 중요하다. 더운 유다 지방에서 위생적 이유로 시신은 사망 직후 곧바로 매장되었다. 시신이 밤을 넘기면 고인에게 무례한 일로 여겨졌다. 십자가에 매달린 시신은 더 서둘러 매장해야 했다. 아리마태아는 유다 북부 지역의 한 동네로 추측된다. 요셉이 그곳에서 왔다는 것이 아니고 그 지방 출신이라는 뜻이다. 요셉은 예루살렘에 오던 단순한 순례자였을까. 그는 이미 예루살렘 시민이 되었을까. 우리는 알 수 없다.

지방에 사는 사람이 수도 예루살렘에 무덤을 마련한 것은 그가 부자임을 암시한다. 부자들은 무덤도 화려하게 준비한다. 마태오는 요셉에게 제자(Matheteuo)라는 단어를 썼다(마태 13,52; 28,19; 사도 14,21). 이 단어는 70인역 공동성서(구약성서)에는 보이지 않는데 부활절 이후 초대공동체에서 사용된 것 같다.

사형수의 시신을 로마 군대가 유가족에게 내어주는 것은 어렵지만 가능한 일이었다. 시신을 내어주어 혼란이 발생할 위험이 예상될 경우에는 시신을 넘겨주지 않았다. 빌라도가 요셉에게 예수의 시신을 내어주었다는 말은 예수가 로마 군대에 위협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점을 마태오가 말하려는 뜻이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시신을 까마귀가 해치도록 로마 군대가 방치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빌라도의 너그러운 처사를 은근히 드러내는 “내어주다”(Apodothenai) 라는 단어가 쓰였다. 로마 군대에게 밉보이지 않으려고 마태오는 애쓰는 것이다. 그러나 죽인 뒤에 시신을 흔쾌히 내어주면 뭐하나. 1974년 조작된 인혁당 사건의 사형수 8인은 판결 몇 시간 후 처형되었고 시신은 유가족의 동의 없이 화장되었다. 남의 피를 흘리게 하는 사람은 제 피를 땅에 쏟게 된다.

시신을 모시는 것은 유다교에서 자선에 속한다. 유다 사회에서 매장은 장의사의 도움 없이 개인적으로 행해졌다. 깨끗한 고운 베로 예수의 벌거벗은 시신을 감쌌다. 시신을 나체로 매장하는 것은 모욕으로 여겨졌다. 십자가에 처형된 시신은 보통 개인 무덤이 아니라 집단묘지에 묻혔다. 현대식 공동묘지는 당시 이스라엘에 없었다. 무덤은 보통 개인 소유 땅이나 정원에 있었다. 땅을 파고 시신을 묻은 것이 아니고 동굴 속 바위 위에 시신을 올려놓는 것이 보통이었다. 무덤 입구를 막은 큰 돌은 무덤이 있는 장소를 표시한 것이기도 하다.

앞 단락에 언급된 두 여인은 예수의 죽음과 시신 매장의 목격자다. 세 번째 여인이 왜 언급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증인은 두 사람 이상이 필요하다는 규칙(신명 19,15)을 마태오는 의식했을까. 두 여인은 시신 매장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고 지켜보았다. 그녀들이 요셉과 이미 아는 사이였는지 알 수 없다. 예수의 장례에 여인들이 슬피 우는 장면이 본문에 보이지 않는다.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의 장례에 애곡은 허용되지 않았었다.

예수와 아주 가까운 제자들이 아니라 낯선 사람이 예수의 장례를 치른 이야기다. 그래서 본문이 역사적 사실에 근거했음이 더 신빙성 있게 보인다. 요셉이 예수의 제자로 기록되었으니 적어도 남자 제자 한 사람은 예수의 장례식에 참여한 것이다. 마태오는 도망쳐버린 열두 제자의 체면을 그나마 살려준 셈이다. 그러나 예수의 가족과 열두 제자들은 참석하지 않고 겨우 세 사람만 지켜본 쓸쓸한 장례였다. 조문객 세 사람도 없는 장례식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예수의 시신 매장은 그 자체로 보면 복음 선포의 내용에 속하지는 않는다. 예수의 시신이 품위 있게 모셔졌다는 사실이 본문의 주제다. 예수는 범죄자들의 무덤에 이름 없이 묻힌 것도 아니고, 흙속에 매장되는 가난한 사람들의 무덤에 묻히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예수의 장례는 서둘러 진행된 것 같지는 않다. 유다교에서 장례의식 탓에 안식일 규칙을 어기는 예외는 허락되었다. 또한 본문은 예수가 가짜로 죽은 것이 아니고 진짜로 죽었음을 확인하고 있다. 예수는 가짜로 죽었다는 소문도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의 시신이 씻겼다는 보도가 복음서에 전혀 보이지 않는 사실이 아주 이상하다. 시신을 깨끗하게 씻는 일이 유다교 장례의식에서 가장 중요하였기 때문이다.

예수의 무덤 이야기의 사실 여부에 대해 성서학계에서 논란이 많다.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 이야기는 초대공동체가 꾸며낸 이야기이고 예수의 장례 장면은 전설에 불과하다는 크로산이 그 중심에 있다. 그러나 요셉 이야기는 역사적 근거가 있는 것 같다. 예수의 무덤에 대한 전승이 있었고(1코린 15,3-5), 예수의 무덤은 일찍이 공동체에 알려진 것 같다. 크로산의 주장을 나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예수의 무덤은 부활을 미리 알려주는 장소로 해석되었다. 예로니모는 예수의 몸을 성체로 비유하기도 했다. 요셉은 용기 있는 제자로 칭송되었다. 십자가에서 예수의 시신을 내림, 예수의 시신 앞에서 탄식함이라는 두 가지 주제가 중세에 등장하였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아들의 시신을 안고 슬퍼하는 모습이 문학 작품, 조각과 그림, 영성서적에서 강조되었다.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보다 예수 어머니 마리아가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예수의 시신을 감쌌다는 이른바 ‘토리노 수의’ 이야기가 있다. 성서학자들은 그 주제에 대해 공헌할 일이 전혀 없다. 그 주제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성인 김대건 신부의 유골이 수백 개로 나뉘어 여러 곳에서 전시되고 있다고 한다. 순교자들을 존경하는 일은 분명히 의미 있다. 그러나 지금 순교자로 사는 일이 더 중요하다.
 

 
 

김근수 (요셉)
연세대 철학과, 독일 마인츠대학교 가톨릭신학과 졸업. 로메로 대주교의 땅 엘살바도르의 UCA 대학교에서 혼 소브리노에게 해방신학을 배웠다. 성서신학의 연구성과와 가난한 사람들의 시각을 바탕으로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마르코 복음 해설서 <슬픈 예수 : 세상의 고통을 없애는 저항의 길>이 있으며, 마태오 복음 해설서 <행동하는 예수 : 불의에 저항한 예수>가 최근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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