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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행(修智行), 길 위에서 진리를 탁발하는 여정[인터뷰] 생명평화결사 사무국장 수지행
정현진 기자  |  regina@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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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3.07  18: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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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지행. 그는 스스로를 ‘부디스천’이라고 부른다. 그의 종교적 신념은 모든 종교가 소통하고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전을 관통하는 인간 붓다의 모습을 발견한 후로, 그에게는 예수의 모습도 새롭게 다가왔다고 한다. ⓒ정현진 기자

실상사 기획실장이자 생명평화결사 사무국장인 수지행. 그는 지난 2일부터 조계종 화쟁위원장 도법 스님이 이끄는 ‘화쟁코리아 100일 순례’를 함께 이끌고 있다. 순례를 며칠 앞둔 날, 준비에 바쁜 수지행을 찾았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에서 불자의 길로 들어서 생명평화 운동, 지역 생태 공동체 운동을 이어가고 있는 그는 지난 2003년부터 생명평화탁발순례에 참여해왔다. 아무것도 의지할 것 없는 길 위에서 출가의 의미를 찾고, 길에서 만난 이들이 자신의 생명이요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수지행. 1998년 실상사에서 받은 치유의 기억과 인연으로부터 시작된 세상 속 그의 ‘탁발’은 무엇이었는지, 그가 닦아 행하고자 하는 지혜는 무엇인지 듣고 싶었다.

그는 스스로 종교적 심성 속에서 살아왔다고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불자는 아니었다. 초등학교 시절 교회에서 홀로 찬송가 부르기를 즐기는 아이였다는 그는 사춘기도 종교적으로 겪었다고 표현했는데, 이를테면 “하느님이 나를 만들었다고 해서, 왜 내가 하느님 말을 들어야 해요?”라고 대들기도 했다.

그러다가 아무 종교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헤매던 시간, 20대 초반 어느 날 불경 말씀을 접했다. 우연히 전주의 한 불교사를 지나다가 발견한 액자에는 “악을 악으로 갚아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 적혀 있었는데, 그것은 불자였던 어머니가 늘 이르던 말이었다.

“어머니는 절에 열심히 다니면서도 제가 교회 추수감사예배에 예물을 가져갈 때면 손수 가장 좋은 수확물을 챙겨주시던 분이었어요. 늘 타이르던 말들이라 시골 촌부의 말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법구경의 말씀이더라고요. 굉장히 새롭게 다가왔고 불교 공부를 하게 된 계기가 됐어요.”

   
▲ 생명평화결사 탁발순례 (사진 제공 / 생명평화결사)

‘전태일’의 삶에서 배운 보살도의 실천

그렇게 불교 공부를 시작해 수계를 받고,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에 27살 늦은 나이로 대학 철학과에 진학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새로운 계기를 접한다. <전태일 평전>이었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읽게 된 책이 <전태일 평전>이었어요. 그리고 그 속에서 불경의 개념이 다시 보였죠. 보통 불교에서는 중생, 보살, 부처의 존재를 말하고 ‘보살행을 하라, 보살도를 실천하라’고 가르쳐요. 그 전에는 그게 관념적으로만 들렸는데, 평화시장이라는 현장이 중생 세계고 전태일 열사의 삶이 바로 보살의 삶이라고 받아들이게 됐어요.”

자연스럽게 학생운동으로 연결됐다.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되기도 했고, 졸업 후에는 사회운동을 이어갔다. 그것이 ‘보살도의 실천’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을 때, 공허함과 분노로 피폐해진 자신을 발견했다. 모든 것을 다해 헌신했음에도 왜 여기에 있는지 알 수 없었고 길이 보이지 않았다.

1998년, 실상사 주지로 있었던 도법 스님을 떠올렸다. 금산사 화엄학림에서 만난 적이 있었던 그에게 도움을 청했다. 스님은 100일 기도를 권했고, 기도를 왜 해야 하는지조차 받아들이지 못했던 그는 점점 미처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지난 10년 사심 없이 헌신적이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뒤에는 욕망도 있었고 완고한 자아가 버티고 있었어요. 자아와 당위성이 앞섰던, 수행이 없었던 삶이었기 때문에 그토록 힘들어진 거죠.”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

그 후 수지행은 도법 스님이 실상사에서 하는 일들을 보면서 생명평화운동에 뛰어들었다. 서울 인드라망 생명공동체에서 일을 하고 있던 중 지리산 댐 건설 문제가 불거졌다. 지리산 댐 건설 반대운동에 참여하면서 그가 새롭게 눈뜬 것은 생태적 지역운동의 필요성이었다. 댐 건설과 같은 개발을 허용하는 것은 지역 주민, 우리 자신이라고 생각한 그는 각 지역을 중심으로 실제 현장에서 생태적 삶을 위한 운동이 이뤄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마침 실상사를 중심으로 한 생명운동 단체인 한생명에서 사무국장 역할을 청했다. 2002년 초대 사무국장을 맡은 수지행은 실상사나 귀농학교가 아닌 마을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지역운동을 시작했다. 여성농업센터, 어린이집, 친환경농업과 귀농자 지원 등 한생명의 모토인 ‘조화로운 삶, 생명을 살리는 농업, 더불어 사는 지역공동체’를 실현해갔다.

지리산 댐 반대운동은 여러 실천의 태동으로 이어졌다. 운동에 참여하면서 지리산은 그의 가슴 깊이 자리 잡았다. 지리산의 눈, 가르침, 가슴으로 세상을 보자는 슬로건 아래 새로운 생명평화운동이 시작됐다. 평화를 위해 투신하는 이들을 길러내야 한다는 제안에 따라 ‘생명평화결사’가 결성됐고 수지행도 그 속에 있었다. 2003년 11월, 도법 스님의 천일 기도가 끝날 즈음 생명평화결사는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는 뜻을 내걸고 첫 탁발순례를 떠났다.

   
▲ 생명평화결사 탁발순례 (사진 제공 / 생명평화결사)

‘부디스천’이 만난 인간 붓다
“불자라면 다른 종교와 나눌 수 있어야”

수지행은 스스로를 ‘부디스천’이라고 말한다. 개신교와 가톨릭 단체를 후원하면서 교류하고 있다. 그는 “종교는 같이 살아남아야 한다. 나는 명확한 ‘불자’이지만 내가 진짜 불자일 수 있으려면 다른 종교와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연히 초기 불교 경전을 번역한 전재성 박사를 만나면서 초기 경전을 공부하게 됐어요. 보통 금강경, 열반경 같은 경전은 대승경전인데 초기 경전은 소승불교를 가르치죠. 초기 경전을 통해 부처를 ‘인간 붓다’로 만날 수 있었어요. 붓다가 몸이 아팠다는 이야기, 제자들이 속을 썩였던 이야기, 그것에 어떤 가르침을 주었는가에 대한 내용은 한 시대를 살았던 붓다라는 인간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보여줬어요. 그러면서 예수님이 더 좋아졌고, 어릴 적 읽었던 성경의 내용과 예수님의 삶도 극적으로 다가왔어요.”

그는 경전의 기록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경전을 관통하는 부처와 예수의 삶을 보게 됐다면서, 큰 흐름에서 다른 종교들이 서로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종교 간의 교류를 중시하는 것은 ‘인드라망 운동’ 덕분이다. 인드라망은 화엄경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커다란 그물과 그물코마다 달린 구슬이 서로를 비추는 모습을 통해 관계와 존재를 설명한다. 각 구슬은 서로를 비추고 투영하는 관계에 있으며 하나의 존재는 구슬 속에 수없이 비춰진 모습의 총체다.

수지행은 “인드라망이라는 그물 속의 나는 홀로 나라고만 할 수 없고, 또 여기 있는 내 존재는 또 어딘가에서 비춰지게 되는 것”이라면서, “내가 여기에서 불자로서 생명평화운동의 하나를 하고 있지만, 그 삶은 또 다른 쪽에서 비춰지고, 다른 쪽의 삶도 나에게 투영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나는 나 혼자만의 모습으로 설명할 수 없어요. 수많은 관계 속에서 비춰진 상의 총체죠. 그 관계들 속에서 내가 존재하는 거예요.” ⓒ정현진 기자

수지행은 이런 맥락에서 생명평화탁발순례의 의미를 전했다. 그는 탁발순례가 사회를 향해 ‘화쟁’이라는 화두를 던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전에 우리 자신의 성찰과 기도라며, “내가 성찰과 기도를 잘 하면 그 모습이 그대로 우리 사회에 비춰질 것이고, 나의 밝음으로 세상을 밝힐 수 있을 것이라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춰본다는 것’에 대해서 “내가 칭찬을 받을 때조차 남들이 나보다 못한 덕으로 칭찬을 받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서 “어쩌면 크게 기뻐할 일도 다른 측면에서는 부끄러워해야 할 일일 수도 있다. 크게 기뻐할 일도, 크게 슬퍼할 일도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길 위에서 내가 얼마나 많은 것에 의존하고 있었는지 확연히 볼 수 있어요. 붓다의 출가처럼 집도, 돈도, 여자도 없는 상태. 낯선 길 위에서 홀로 있는 그때에만 온전히 깨어있을 수 있습니다.”

그는 이제 낯선 길 위에서 앞서 길을 걸으며 100일간 깨어있음을 다시 체험할 것이다. 수지행은 무엇보다 그것이 기쁘다고 말했다. 또 이번 순례를 통해 함께 걷는 이들이 부처가 어루만지고자 했던 우리 사회의 상처와 고통을 한번이라도 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수지행(修智行). 지혜를 닦아 행하라는 뜻의 법명이다. 그에게 지혜란 어떤 것인지 물었다.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는 눈, 그것이 지혜”라고 답했다. 그는 “온전히 ‘맞는 것’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서 끊임없이 찾아갈 수 있도록 늘 깨어있고 싶다”고 말했다.

<바로잡습니다>

기사 중 “실상사 종무실장”으로 보도된 것을 “실상사 기획실장”으로 바로잡습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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