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십대 밑바닥 노동 실태조사 보고대회 열어

“어리니까 깔봐요. 말도 막 하고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죠. 대기할 때 호텔 직원이 두 줄로 앉히는데 좀 얘기를 한다 싶으면 ‘너 일어나서 문 보고 서있어’ 이렇게 해요. 욕이랑 반말은 다 하는데, 그냥 손으로 가리키면서 ‘너, 너, 너 따라와’ 이렇게 부르고.” (17세, 여, 호텔 연회장 서빙 아르바이트)

“면접 보러 올 수 있냐 해서 갔더니 대뜸 ‘학교 안 다녀? 그럼 너 돈 많이 필요하지? 하루에 12시간 일하자’ 이러는 거예요. 일주일에 6일을. 안 하겠다고 했더니 ‘너 가출한 거 모를 줄 아느냐’면서 다른 덴 다 월급 60~70 주는데, 여기니까 많이 주는 거라고 그래요.” (19세, 남, 콜센터 근무)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이하 네트워크)가 6일 오전 서울 중구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10대 밑바닥 노동 실태조사 보고대회’를 열고 청소년의 열악한 노동 상황을 고발했다. 네트워크는 2005년 <똑똑, 노동인권교육 하실래요?>(2005, 사람생각)발간을 계기로 결성되었으며, 청소년들의 노동인권교육 확산과 노동인권 확보를 위해 활동해왔다.

네트워크는 작년 8월말부터 11월까지 약 세 달에 걸쳐 영역별 노동 경험이 있는 청소년들을 직접 만나 심층면접 형식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배경내 네트워크 상임위원은 “청소년 일자리의 축소 및 변경은 어떤 결과를 낳고 있는가, 불안정 노동의 확산이라는 노동세계의 변화는 청소년의 삶과 노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가족 배경이 청소년의 노동 배경에 어떻게 작용하는가 등에 초점을 맞췄다”며 조사의 방향을 설명했다.

▲ 6일 오전 서울 중구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십대 ‘밑바닥 노동’ 실태조사 보고대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변미혜 움직이는청소년센터 EXIT 활동가, 윤지영 변호사, 배경내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상임위원, 하인호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활동가 ⓒ문양효숙 기자

배경내 위원은 “IMF 이후 청소년 노동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며 그 배경으로 ▲온 가족이 일하지 않으면 생활이 어려운 노동빈곤의 심화 ▲열심히 공부해도 더 나아질 것이 없다는 교육의 사다리 역할 붕괴 ▲독립 욕구의 강화 등을 지목했다. 지난 2011년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아르바이트 경험 비율은 재학생의 경우 27.4%, 학교 밖 청소년의 경우 62.0%로 나타났다. 배 위원은 “정부기관이 수행한 조사는 대부분 재학생이나 보호자와 함께 살고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실제 수는 이보다 훨씬 많다”고 지적하며, 청소년 노동이 소수의 일이 아님을 강조했다.

네트워크는 “시급 5천원을 ‘세다’고 표현할 정도로 임금 수준이 바닥이며 이마저도 여러 명목으로 떼이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청소년 노동자는 정직원이 아닌 ‘알바’라는 취약성에 ‘나이’의 위계까지 더해져 최하층 노동을 담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손님이나 동료 앞에서 막말과 욕설을 듣는 것은 물론 허드렛일을 도맡아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네트워크는 “10대 여성의 경우는 ‘어리고 말 잘 듣는 여자애’를 기대한다”고 지적했다.

영상보고에서 18세 A양은 “콜센터에서 일할 때인데, ‘어린데도 돈 똑같이 주니 열심히 일할 줄 알았는데 아니다’라며 사장이 잘랐다. 일 시작할 때 커피 타는 것, 청소, 다 시키려고 뽑은 거다. 그런데 내가 계속 싫은 의사를 내비치니까 당황한 듯하다”고 말했다. A양은 이어 “지금 일하는 데는 아는 사람 명의를 빌려서 스물두 살로 들어갔다. 대우가 다르다. 전에는 전부 누구야, 누구야 이렇게 불렀는데 지금은 누구 씨라고 부른다”며 나이를 위장해 덜 모욕적인 지위로 올라서는 전략을 택했다고 말했다.

달라진 10대 노동현장, 최악에서 한발 더 물러서

배경내 위원은 “청소년 일자리는 줄거나 더 열악한 곳으로 이동했으며 불안정 노동이 확산됐다”며 10대 밑바닥 노동의 달라진 얼굴을 설명했다.

“패스트푸드점, 빵집, 편의점, 주유소 등 과거 청소년의 대표적 일자리였던 곳에서 지금은 20대와 장년층이 일한다. 청소년 일자리 자체가 없어지거나 간헐적 노동, 야간노동 등의 비공식 노동의 형태가 늘어난 것이다.”

네트워크가 심층면접을 시도한 청소년 노동자들은 대부분 업체에 직접고용되지 않고 간접고용이나 특수고용의 형태로 노동을 했다. 예를 들면 건당 배달료를 받는 배달대행, 구인업체를 낀 호텔연회장 서빙, ‘지옥알바’라 불리는 택배 물품 분류 일용직, 이벤트 홍보 노동 등이다.

배달대행은 일반적으로 배달이 발생하면 가게에 가서 직접 음식을 사 주문자에게 배달하고 차액을 챙기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요식업계는 필요할 때만 노동력을 사용할 수 있고, 인력관리 및 노동법 준수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 배달대행 업체와 배달대행 노동자 또한 고용자-노동자 관계가 아니다. 사고가 나도 산재 신청을 할 수 없고 시간외수당이나 퇴직금 등 각종 법적 보호도 누릴 수 없다.

“업체는 배달 직원 쓰는 것보다 훨씬 좋죠. 회비가 한 달에 15만원 정도인데 저희가 대행해주는 업체가 50개 정도 되거든요. 건당 2천원을 받으니까 바쁘게 움직여야 해요. 사고 안 나고 싶지만 사장님이 막 재촉하면 부담감이 생겨요.” (18세, 남, 배달대행 업체)

여성 청소년 아르바이트의 대명사인 호텔연회장 서빙 또한 외주 업체를 통한다. 청소년들이 회원으로 구인 사이트에 가입해 업체로부터 일할 수 있는 날짜와 호텔을 배정받는다. 네트워크는 “40분 전에 출근하고 15~20분 늦게 퇴근해도 그 시간에 해당하는 임금은 떼먹었다. 점심시간도 30분 주면서 1시간의 임금을 공제하는가 하면 타행계좌 입금 시 발생하는 수수료 500원도 제했다”며 중간 착취의 현장을 고발했다.

▲ 청소년 노동자는 대부분 근로기준법 적용이 되지 않는 5인 미만 사업장이나 간접고용, 특수고용의 형태로 일하게 된다. ⓒ한수진 기자

‘탈가정=성매매’라는 공식의 과잉,
탈가정 청소년의 노동에 대한 다양한 해석 필요해

또한 네트워크는 탈가정 청소년과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의 청소년에 주목했다. 2013년 여성가족부 통계의 의하면 ‘한 번 이상 가출해 봤다’는 청소년은 전체의 12.2%다. 조사가 재학생을 대상으로 이뤄진 점을 감안할 때, 탈가정 청소년은 연간 20만 명 규모로 예상된다. 네트워크는 “‘탈가정 → 성매매’의 공식이 과잉돼 지원 정책 또한 ‘조기 발견과 쉼터 연계 입소’에 집중돼 있다”며 “주거 지원 확대와 자립 지원 일자리 창출 등 노동 지원 정책이 시급히 확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네트워크는 “특별히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의 청소년들의 경우, 생활비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찾아 나서는 경우가 많은데, 소득이 발생하면 수급자격이 박탈될 수 있어 열악한 사업장을 찾거나 불평등한 근로계약을 맺을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제가 수급자여서 통장으로 받으면 기록이 뜨니까 현금으로 주실 수 있냐고 (고용주에게) 먼저 물어봐요. 어떤 곳은 4대 보험을 들어야 일을 할 수 있는데 저는 보험을 들면 (소득이 잡히니까) 우리 집이 수급자에서 탈락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래서 다른 친구 이름으로 받거나 주급으로 받기도 하고 그래요.” (18세, 남, 기초생활수급 가정)

배경내 위원은 “십대 ‘밑바닥 노동’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사업장 감독 강화, 수도권 중심의 관계기관 점검, 노동관계법 홍보 강화 등 정부의 종합 대책이 실효성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배 위원은 “교사와 청소년, 사업주의 노동법에 관한 인지도가 현저히 낮을 뿐 아니라, 5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되는 근로기준법 조항은 5인 미만 사업장이나 특수고용이나 간접 고용 형태로 일하는 청소년에게 무용지물”이라며 “청소년 당사자의 조건을 고려한 복지정책, 가족정책, 교육정책이 종합적으로 개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에 이어진 토론에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윤지영 변호사는 “청소년 노동은 언제나 불안정했고 시간제 노동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나마 이전에는 사용자와 청소년간의 직접고용 관계여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었다”며 “간접고용, 특수고용, 무급인턴은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있어서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노동하는 청소년들의 지위가 더욱 열악해진다”고 지적했다.

사진 제공 / 민중의소리

불안정노동 확산 막고 노동조합이 움직여야

윤 변호사는 “전체 노동시장의 불안정노동 확산을 막고, 불안정 노동자의 권리 보장을 위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며, 청소년 노동자가 많이 종사하는 업무별로 노동 보호를 위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윤 변호사는 법 개정과 제도 개선이라는 게 늘 시간이 걸리는 일인 만큼 “무엇보다 노동조합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활동가는 우리나라 공공부조의 특징을 ‘가족의 사적 부조’와 ‘강한 노동 강제’로 설명했다.

“공공부조는 가족 문제와 떨어져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가족 이데올로기는 중산층을 기준으로 한다. 내가 어려울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따뜻한 가족 구성원이다. 그러나 정작 가족 간의 상호 부조를 가장 강제 받는 이들은 빈곤층이다. 국가는 빈곤층에 이런 형태의 가족을 강제하고 묶어내려 한다. 가구 안에 머물러 있을 때에는 추정 소득, 가구 밖으로 나가면 부양의무자기준을 통해 간주 부양비가 부과된다.”

김윤영 활동가는 “최저 생계비가 너무 낮아 수급비로는 생활이 어렵다. 낮은 복지 수준 때문에 일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일을 하면 복지 서비스를 받지 못한다”면서, 이런 모순된 상황이 빈곤층 청소년의 노동권과 인권을 위협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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