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예수] 마태오 복음 해설 - 162

32 그들이 나가다가 시몬이라는 키레네 사람을 만나자 그를 붙들어 억지로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하였다. 33 그리고 골고타 곧 해골산이라는 데에 이르렀을 때에 34 그들은 예수께 쓸개를 탄 포도주를 마시라고 주었으나 예수께서는 맛만 보시고 마시려 하지 않으셨다. 35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나서 주사위를 던져 예수의 옷을 나누어 갖고 36 거기 앉아 예수를 지키고 있었다. 37 그리고 예수의 머리 위에 죄목을 적어 붙였는데 거기에는 ‘유다인의 왕, 예수’라고 적혀 있었다. 38 그때에 강도 두 사람도 예수와 함께 십자가형을 받았는데 그 하나는 예수의 오른편에, 다른 하나는 왼편에 달렸다. (마태 27,32-38)

▲ <십자가에 못 박히는 그리스도>, 윌리엄 블레이크, 1803년
대본인 마르코 복음서 15,21-27과 본문은 순서와 내용에서 같다. 그러나 루카 복음서 23,26-43과 요한 복음서 19,17-27은 마르코나 마태오 복음과 크게 다르다. 루카와 요한 복음에서 예수가 처형 전에 술 마시는 장면은 나오지 않고, 다른 두 사형수의 처형 장면이 예수의 처형과 같이 기록되었다.

요한은 키레네 사람 시몬을 알지 못한다. 예수가 예루살렘 여인들에게 하는 말은 루카 복음서에만 보인다(루카 23,27-31). 십자가 명패에 기록될 구절 때문에 유대인들과 빌라도가 다투는 모습은 요한 복음서에만 나온다(요한 19,21-22). 키레네 사람 시몬의 두 아들 이름 알렉산더와 루포(마르 15,21), 예수가 못 박힌 시간이 아침 아홉 시(마르 15,25)라는 말은 마태오와 루카 복음에는 없다.

성당 안팎에 14개 장면으로 설치된 ‘십자가의 길’은 중세 후기에 유행한 ‘함께 고통을 느끼는 신심’(compassio)에 근거한다. 십자군 전쟁 이후 예루살렘에 대한 지리적 정보가 증가하면서 생겨난 모습이다. 예수 수난사 각 장면을 나무판에 그린 그림이 15세기 말부터 널리 퍼졌다. 예수의 옷을 만진 하혈하는 여인(마르 5,25-34)이 베로니카와 동일시되어 십자가의 길 6처에 등장하였다. 중세의 묵상서적에 십자가의 길에서 아들 예수와 만나는 마리아 모습이 나타났다.

십자가의 길은 빌라도가 예수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장면(1처)에서 시작하여 십자가에서 죽음, 십자가에서 시신을 내림, 무덤에 모심(12~14처)으로 끝난다. 어떤 현대적인 십자가의 길에서는 마지막 14처가 부활한 예수의 장면에서 끝난다. 예수는 세 번 땅에 쓰러진다(3 · 7 · 9처). 어머니 마리아와 만남(4처), 키레네 사람 시몬의 도움(5처), 베로니카와 만남(6처)으로 예수는 위로받는다. 십자가의 길은 17세기 바로크 시대와 19세기에 널리 유행하였다. 그러나 십자가의 길 14처는 성서신학이 발전되기 전에 생겨난 탓에 성서 본문의 보도와 거리가 먼 장면이 여럿 있다. 이제 14처는 성서 본문에 알맞게 고쳐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십자가 처형은 예루살렘 성 밖에서 행해졌다. 예수의 십자가는 T자 모양의 완성형 십자가(crux commissa)일까. 사형장에 세로 기둥은 이미 세워져 있어서 가로 기둥(patibulum)만 지고 가는 십자(十字) 모양의 조립형 십자가(crux immissa)일까. 보통 처형 장소에 세로 기둥은 세워져 있었다고 기록한 문헌이 많다. 십자가형은 실제로 그렇게 집행된 것 같다.

예수의 머리 위에 죄목을 쓴 명패가 붙어있다는 37절을 보면 예수의 십자가는 십자형(十字形) 십자가인 듯하다. 예수는 십자가의 가로 기둥만 지고 간 것이다. 가로 기둥을 뜻하는 라틴어(patibulum)는 있지만 그리스어 단어는 없다. 4복음서에 십자가를 가리키는 단어 stauros는 완성형 십자가를 가리킨다. 그러면 예수는 T자 모양의 완성형 십자가를 지고 갔다는 말인가. 그러면 37절의 보도와 모순된다. 예수가 어느 모양의 십자가를 지고 갔는지 32절에서 뚜렷하게 말하지 않았다.

다른 두 사형수가 십자가를 끌고 가고 군중이 길가에 모인 장면이 보도되어야 마땅하였다. 마태오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키레네 사람 시몬이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지 말하지 않는다. 키레네 총인구의 4분의 1은 유대인이었다. 로마 군대는 시몬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도록 강제노역을 시킨다. 로마 군대는 유대인들에게 그런 짓을 흔히 저질렀다. 예수가 심한 고문을 당해서 십자가를 지고 갈 힘이 부족했을까. 오리게네스는 시몬에게서 하느님께 ‘순종’하는 모습을 강조했다. 개신교에서 시몬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모범으로 여겨졌다. (그리스도교에서 흔히 쓰이는 ‘순종’이란 단어를 쓰지 않고 ‘존중’이란 단어를 쓰겠다. 순종이란 단어는 독재자들이 좋아한다. 존중은 우리의 자유의지를 강조한다.)

골고타가 어디를 말하는지 논란이 많았다. 헤로데 궁전에서 약 400미터 떨어진, 예루살렘 성벽이 보이는 바위산을 가리키는 것 같다. 오늘날 무덤성당이 있는 곳이다. 골고타 계곡에서 아담의 무덤이 발견되었다는 전승이 2세기에 생겼다. 예수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지만 예수는 마시지 않았다(마르 15,23). 예수에게 쓸개를 탄 포도주를 주었고 예수는 맛만 보고 마시지 않았다(마태 27,34). 죽을 때 죽더라도 주당 예수는 자기 취향이 아닌 술은 사절하였다.

35절에서 예수의 처형은 딱 세 단어로 보도되었다. 예수를 고문한 장면, 처형장으로 가는 모습을 상세히 묘사한 것과 아주 다르다. 예수의 옷을 군인들이 나눠 갖는 이야기 같은 중요하지 않은 내용을 자세히 보도하는 것과 다르다. 4복음서 어느 저자도 예수가 어떤 식으로 처형되었는지, 십자가가 어느 방향을 보고 설치되었는지 말하지 않았다. 대체 왜 그랬을까.

사형수는 십자가에 묶여 있거나 못에 박힌 채 매달렸다. 4복음서는 예수가 못에 박힌 것으로 기록하였다. 손바닥이 아니라 손목에 못이 박힌 것 같다. 십자가를 땅에 뉘어놓고 예수를 못 박았는지, 먼저 십자가를 세우고 예수를 묶고 그 다음에 못 박았는지 말하지 않는다. 사형수가 아래로 미끄러지지 않도록 받침대를 다리 쪽에 만들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사형수는 나체로 못 박혔다. 십자가에서 예수에게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씌운 것은 후대에 생긴 관습이다. 사형수의 옷을 나눠 갖는 것은 마태오가 70인역 시편 21,19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35절에서 군인들이 예수를 지킨 것은 예수의 죽음에 대한 그들의 반응을 준비하는 대목이다(마태 27,54). 예수의 머리 위에 죄목을 써 붙인 보도는 의아하다. 그런 사례가 로마 측 문헌에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죄목이 적힌 명패를 사형수의 목에 걸게 한 예는 있었다.

38절에서 강도로 번역된 lestai는 독립투사를 가리킬 수도 있다. 예수가 정치범임을 강조하기 위해, 정치범 중에도 거물임을 나타내기 위해 로마 군대는 예수를 가운데에 배치한 것으로 나는 추측한다. 두 아들이 주님의 나라에서 오른편과 왼편에 앉게 부탁한 제베대오의 어머니 이야기(마태 20,20-21)를 이 장면과 연결하는 루츠의 의견에 나는 찬성하기 어렵다. 제베대오의 두 아들이 정치범도 아니었고 십자가 아래에 앉아 있지도 않았다. 예수 옆 두 사형수와 제베대오의 두 아들은 내용상 연결고리가 희박하다.

초대교회의 신심은 한마디로 부활절 신심이었다. 요한 복음의 영향을 받아 예수의 십자가 길은 승리의 길로 여겨졌다. 십자가에서 고통은 아예 주제도 아니었다. 중세 후기에는 완전히 달라졌다. 예수의 고통이 자세히 묘사되고 강조되었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에서 꼭 기억할 내용이 있다. 첫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에서 처형되었다. 예수만 십자가 처형을 당한 것이 아니다. 둘째, 십자가 처형은 노예들에게 해당되는 형벌이었다. 예수는 로마 군대에게 노예 취급을 받았다. 셋째, 예수는 가난하게 죽었다. 마지막 재산인 옷도 빼앗겼다. 고위급 종교인들의 거창한 장례식에 나는 씁쓸하다. 무덤도 비석도 꽃도 조문객도 십자가도 없는 쓸쓸한 죽음이 이 세상에 그 얼마나 많은가.

본문에 수많은 묵상 재료가 담겨 있다. 십자가는 고통 없는 승리라는 값싼 가르침이 아니다. 고통의 찬미라는 자기 학대를 뜻하지 않는다. 고통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참으라는 노예 윤리를 말하지 않는다. 세상의 고통을 없애는 저항의 길에서 얻는 고통을 기쁘게 여기라는 말이다. 그리스도교는 인생을 고통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본문에서 마태오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예수의 저항과 고난과 죽음의 역사에 하느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이다. 예수와 하느님 사이의 대결이나 갈등을 마태오가 강조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심리적 묘사는 흥미로운 소설적 주제겠지만 마태오의 의도와 별로 관계없다. 그래서 몰트만의 ‘십자가에 매달린 하느님’이란 표현은 내게 설득력이 부족하다. 십자가에 매달린 하느님보다는 ‘역사의 희생자들과 함께하는 예수’가 마태오의 의도에 더 가깝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에게서 ‘십자가에 매달린 가난한 사람들’을 보아야 하겠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묵상하기 전에 십자가에 매달린 가난한 사람들을 먼저 보아야 하겠다. 가난한 사람을 모르면 예수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의 승리자 곁에 예수는 없다.
 

 
 

김근수 (요셉)
연세대 철학과, 독일 마인츠대학교 가톨릭신학과 졸업. 로메로 대주교의 땅 엘살바도르의 UCA 대학교에서 혼 소브리노에게 해방신학을 배웠다. 성서신학의 연구성과와 가난한 사람들의 시각을 바탕으로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마르코 복음 해설서 <슬픈 예수 : 세상의 고통을 없애는 저항의 길>이 있으며, 마태오 복음 해설서 <행동하는 예수 : 불의에 저항한 예수>가 최근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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