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고(故) 김훈 중위 아버지, 김척

▲ 25일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실에서 열린 고(故) 김훈 중위 16주기 추모미사 ⓒ한수진 기자

16년 동안 한 청년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25일 오후 서울 명동에 위치한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실에 모였다. 청년의 이름은 김훈. 그의 16주기 추모미사가 열리는 날이었다. 육군 중위로 군에 복무하던 그는 1998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241소초에서 의문의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 살아있었다면 이제 막 중년의 문턱에 들어섰을 그는 제대 위에 놓인 사진 속에서 여전히 20대의 싱그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미사가 준비되는 동안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 씨는 아들의 사건을 다룬 신문 기사와 사진을 제대 오른편 벽에 붙였다. 김 중위의 사인을 ‘자살’로 결론지은 국방부의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이었다. 김 씨는 플라스틱 모형 권총의 총구를 자신의 오른쪽 머리에 대보이며 자살이 아닌 타살인 이유를 설명했다.

“오른손잡이가 자기 머리에 총을 쐈는데 화약 흔적은 왼손바닥에만 남았다? 이건 다른 사람이 총을 쏠 때 막았다는 증거예요. 실험 결과도 그렇게 나왔고요. 그런데 군에서는 하다하다 안되니까, 왼손으로 총을 잡고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겼다고까지 주장했습니다.”

지난 2012년 8월 국민권익위원회는 김 중위의 사망 사건을 ‘진상규명불능’으로 순직 처리할 것을 육군에 권고했다. 유가족들은 권고가 받아들여지기를 기대했으나, 오히려 육군은 ‘자살자 순직 처리는 가능하다’고 국민권익위원회에 통보해왔다. 육군은 ‘진상규명불능자에 대한 자체 심사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현재까지 재심사 자체를 보류하고 있는 상태다.

김 씨는 “‘군의문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군의 입장”이라고 한마디로 정리했다. 군 당국은 군의문사를 “유족들이 자살이 아니라고 떼를 쓰는 것”으로 여기며, 따라서 군에서는 진상규명불능이라는 개념 자체를 없는 것으로 여긴다는 거다.

▲ 김척 씨가 아들 고(故) 김훈 중위의 16주기 추모미사에 앞서 타살 증거를 설명하고 있다. ⓒ한수진 기자

자살 인정 철회 없는 ‘순직 처리’는 받아들일 수 없어

지난해 3월 국방부가 ‘전공사상자 처리 훈령’을 개정해 사망 원인이 불명확해도 공무상 연관성이 있으면 순직을 인정하겠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서도 김 씨는 답답함을 토로했다. 규정이 바뀐다하더라도 새 규정이 김 중위에게 적용되려면 우선 국방부가 김 중위의 사인을 ‘자살 아님’으로 인정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4개월 전인 2012년 11월 국방부 조사본부는 ‘김 중위의 사인은 자살’이라는 재조사 결과를 유족에게 통보한 바 있다. 이는 사건 당일 최초 현장 감식이 이뤄지기 2시간 전부터 16년째 군 당국이 유지해온 일관된 입장이다. 초동수사 부실 논란으로 육군과 국방부가 수차례 조사를 벌였으나 결론은 늘 같았다.

“국방부 관계자가 ‘규정을 만들어 김훈 중위를 순직 처리하겠다’고 말해 언론에 보도됐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어요. 때문에 유족들은 두 가지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인터넷에는 ‘그나마 순직 처리라도 했으니 다행’이라는 글이 많더라고요. 얼마나 황당하고 답답한지 분노할 수밖에 없어요. 군 의문사 사건을 국민으로부터 잊히게 하고, 잠잠하게 만들려는 꼼수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날 추모미사를 집전한 박종인 신부(예수회)는 미사를 시작하며 김 씨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물었다. 김 씨는 “아들의 진정한 명예회복”이라고 답했다. 국방부가 “대법원, 국회 국방위원회, 대통령소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결과와 국민권익위원회의 순직 권고를 존중해 자살자가 아님을 인정하는 것”이 16년간 아들을 놓지 못하는 아버지의 바람이다.

김 씨는 그 자신도 젊은 시절 군대에 충성을 바쳤던 예비역 중장이다. 그는 “정의로운 군대를 만드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과 인권 확립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국민 대부분이 자녀를 군대에 보내야 하는 현실에서, 자녀가 군대에 있는 동안 어떤 상황이 생기더라도 군으로부터 올바른 대접을 받고 명예를 존중받을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 · 관이 합동으로 공정한 수사를 할 수 있는 구조와 부정한 수사에 대한 책임자 처벌 규정, 국회 국정감사 또는 특검을 통한 강력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김 씨는 강조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