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협동조합의 권리와 피터 모린의 인격주의[사회적 경제와 교회 - 3]

안성의료생협에서부터 출발한 의료생협의 역사는 올해로 20년을 맞습니다. 올해 커다란 축하 행사가 있을 예정입니다. 지난번 아이쿱에서 받았던 교육에서는 아이쿱의 역사가 25년이라고 하였습니다. 한살림도 1986년 시작했으니 스물여덟 해가 되나 봅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생협의 나이가 20~30년 사이로 청장년층에 해당됩니다. 저희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은 올해로 12년째를 맞이하고 있으니, 형들에 비하면 아직 사춘기에도 돌입하지 못한 나이입니다.

돌이켜보면 민들레의료생협을 세울 당시에는 생협이라는 개념이 일반 사람들에게는 아주 낯선 개념이었습니다. 몇 만원 출자금을 내어 1차 의료기관을 만든 것이 의료생협인데, 일반 의원과 의료생협이 어떻게 다르다는 것인지 정확히 알고 가입하는 조합원들은 많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대부분 지역에서 열심히 활동하던 당시 30대의 젊은이들이 지역에서 좋은 일을 한다고 하기에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돕기 시작한 것이 함께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국제협동조합연맹에서 정의하는 협동조합은 “공동으로 소유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를 통하여 공동의 경제, 사회, 문화적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자율적인 결사체”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업체’는 어느 정도 알겠는데 ‘결사체’는 그 말부터 어려워 이해하기도 이해시키기도 힘들었습니다.

더구나 당시 의료생협은 여느 생협과 마찬가지로 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입니다. 생협에서 소비자의 권리가 강조되는 것처럼, 의료생협 또한 환자의 권리가 강조되는 것이 당연한 이치였습니다. 그래서 마을에 계신 주민들에게 신뢰할 수 있는 병원, 우리의 손으로 운영되는 병원이라는 취지로 강조하고, 환자의 권리를 앞세우는 환자권리장전을 병원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비치하고 협동조합의 ‘주인 됨’을 강조하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스스로 운영하고 조직하는 주체로서의 조합원의 권리 자체가 낯선 개념이었고, 사회 전반에 걸친 소비자운동을 통해 소비자 의식이 자리 잡힐 때였던 거 같습니다.

   
▲ 대전 둔산동에 자리잡은 민들레 둔산의원. 2012년 3월 개원한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 두 번째 병원이다. ⓒ정현진 기자

십여 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날, 세상은 변해도 많이 변했습니다. 지금은 권리나 주인이라는 말이 정말 넘쳐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한편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불안정한 권리를 위해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고, 거의 대부분의 서비스 업종 노동자들이 감정노동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반면에, 소비자의 주권이 거대자본의 마케팅 도구로 변질되어 끝없이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소비자의 권리만 남았습니다. 동일한 사람에게 노동자의 권리 축소와 소비자의 권리 확장이라는 모순을 통하여 거대자본은 끝없는 확장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생협이든 의료협동조합이든, 협동조합의 민주적이고 자발적인 운영을 위한 주인 됨은 이러한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늘 깨어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더욱이 의료생협은 사회적협동조합으로 거듭나면서 주인이라 할 수 있는 당사자들이 늘어났습니다. 병원을 찾는 환자뿐만 아니라, 의료인을 비롯한 모든 직원, 자원봉사자, 인근에 사는 이웃, 그리고 외롭고 소외당하는 의료취약계층까지도 의료협동조합을 구성하는 당사자라 하겠습니다. 이 관계 속에서 주체와 객체가 따로 없고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서로가 인격적이고 공동체적인 마음으로 만나려는 사람들로 구성됩니다.

도로시 데이와 함께 가톨릭일꾼공동체를 설립한 모린은 가톨릭 인격주의를 대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근대의 산업화로 인해 물질문명이 득세하고 도시화로 인해 공동체가 파괴될 때에도 모린은 인격적인 완성과 공동체적인 사회 변화를 회복하고자 전 생애를 투신하였고, 그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의 삶이었습니다. 20세기 중반까지 살았던 피터 모린의 전기를 보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남겼을 것 같은 말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분은 “이익을 중시하는 사회는 협력보다 경쟁을 강조하고, ‘온화한 인격주의자’보다 ‘단호한 개인주의자’에게 보상하는 가치가 전도된 사회”라고 지적합니다. 그런 “탐욕의 사회”에서는 “공적인 영역에 관심을 두었던 시민들도 사적인 소비를 조장하는 소비자가 된다”고 정확히 우리를 일깨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주도적이고 역동적인 “인격주의자”로 깨어 공동체의 사회적 역동성을 확장시킬 것을 촉구했습니다.

마치 오늘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음성이 80여 년 전에 사셨던 성인, 피터 모린의 글에서도 느껴집니다. 그분의 가르침은 결국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에 대한 말씀이지만, 협동조합을 통해 더욱 공동체적이고 인격적인 세상을 꿈꾸는 이들에게도 영감을 줍니다.

만일 우리가
혼돈의 시대에
올바른 결정을 내린다면
그 결정의 결과로
더 나은 질서가 올 것이다.
올바른 결정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질서는
탐욕적이 아니고,
기능적일 것이다.
사회주의적이 아니고,
인격주의적일 것이다.
집단주의적이 아니고,
공동체주의적일 것이다.
기계적이 아니고,
유기적일 것이다.
지금 올바로 한 일이
구시대의 껍질 속에서
새로운 철학으로,
새로운 사회를 창조할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철학이 아니라
아주 오래된 철학
너무 오래되어
새 것처럼 보이는 철학이다.

―피터 모린, <새로운 질서를 향하여>
 

 
 
조세종 (디오니시오)
대전 민들레의료생협 이사장
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조세종의 다른기사 보기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