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주간 맞아 화곡동 떼제공동체 탐방


매주 금요일 저녁 7시30분 떼제기도회 열려

2009년 1월16일 오후 6시30분. 서울 화곡동 105-51번에 위치한 떼제공동체를 찾았다. 떼제공동체를 찾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짧은 겨울해에 이미 주변은 어둑어둑 어둠이 내려앉았고, 내린 눈으로 골목길은 하얀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현관 옆에는 나무로 만든 '떼제'라는 표지판이 소박하게 붙어있다.

매주 금요일에 열린다는 떼제 기도모임은 오후 7시30분. 너무 일찍 온게 아닌가 싶어 주위를 한번 더 둘러본다. 하늘엔 초저녁별 하나가 떠서 반짝이고 있다. 어둠이 깊어지기 전에 나무 표지판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꺼내드는데 "무슨 일입니까?"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들어보니 외출에서 돌아오는 수사님이 열쇠로 문을 열면서 묻는 말이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서 떼제공동체 취재 왔다고 인사를 했다. 안선재 수사는 "사진은 안됩니다. 모임 참석은 괜찮아요. 그런데 너무 일찍 왔어요. 안에 계신 수사님과 둘이서 모임 준비를 지금부터 해야하고, 아직 방에 불도 넣지 않았어요. 그러니 일곱시 십분까지 오십시오"라는 말을 남기고 안으로 사라졌다.
조금 난감했다. 취재 약속을 할 때 한국말이 서툰 실바노 수사가 전화를 받아 제대로 소통이 되지 못해 일찌감치 찾아왔던 길이었다. 사전 취재를 하기 위해서.

그럭저럭 시간을 떼우고 다시 찾은 떼제공동체. 현관 바로 옆에 마련된 손님방으로 안내됐다. 답답하리만큼 작은 방에 동그랗게 방석이 놓여져 있다. 선반장 하나와 작은 책장 하나, 아주 소박한 방이었다. 손님방에는 여전히 나 혼자였다. 조금 있으니 오늘 처음 떼제공동체 기도 모임을 찾았다는 여성이 들어왔다. 아는 목사의 소개로 왔다는 그녀는 개신교 신자라고 밝혔다. 이어 사람들이 꽁꽁 언몸으로 손님방으로 들어왔다. 처음이라 쭈볏쭈볏 들어오는 이나 익숙한 몸놀림으로 들어 오는 이들 모두 눈인사를 하며 차분하게 자리를 잡고 내어놓은 따스한 물 한잔씩을 마신다.

곧이어 오늘 떼제 기도를 위해 성가 연습을 했다. 우리가 연습한 떼제 노래의 노랫말은 사랑의 나눔이 있는 곳에 주님이 계신다라든지, 자비와 일치를 구하는 기도말이었다. 쉽고도 편하게 따라 부를 수 있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주님이 계신다'란 노랫말은 한국말을 배운 떼제공동체 수사가 한국 신자들을 위해 한국말로 직접 지은 노래라고 했다.


몇차례 노래 연습이 끝나고 조용히 2층 기도방으로 올라갔다. 사람들이 모이고 노래를 했지만 정작 그 자리에서 쓰인 말은 몇마디 되지 않았다. 기도모임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침묵기도는 시작된듯 했다.

2층으로 올라가면서 잠시 갈등이 생겼다.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허락치 않으니 그냥 뒷자리에 앉아 있다가 기회를 봐서 한두컷 찍고 나중에 양해를 구할까? 사진은 자료 사진으로 대체를 하고 기도에 전념해야 하는건가? 등등. 떼제공동체를 방문한 목적이 일치주간을 맞아 일치와 화해를 향한 떼제기도 모임의 취재이니 사진도 당연히 필요한 것이었다.

계단을 오르는 짧은 순간의 갈등 속에서 오늘은 온전히 떼제기도에 참여하기로 작정했다. 떼제공동체의 허락을 받지 못했는데 사진을 찍는다며 기도모임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떼제 찬미의 노래와 기도, 침묵으로 하느님 만나는 여정

기도방 앞면 중앙과 양 옆에는 십자가와 성모자상 이콘이 걸려 있었고 촛불이 조용히 타오르고 있었다. 마음이 차분이 가라앉았다.

불이 꺼졌다. 침묵이다. 가만히 주님께 마음을 열어드린다. 떼제노래로 찬미를 드린 후 불이 다시 켜졌다. 떼제공동체 기도모임은 기도와 복음 낭송, 그리고 떼제 노래와 기도, 또다시 침묵기도로 이어졌다. 자유 기도를 할 때 가자 지구의 평화와 전쟁의 종식을 위한 기도, 갈라진 형제들의 일치를 위한 기도, 그리스도 교회의 화해를 위한 기도, 그리고 경제한파로 사회 진출이 어려운 젊은이들을 위한 기도 등이 이어졌다.

찬미와 기도, 그리고 침묵 뒤에 평화가 조용히 내려앉은듯 하다. 마지막 침묵 기도가 끝나고 참석자들이 동그랗게 둘러 앉았다. 참석자는 17명. 한가운데 십자가와 촛불을 놓고서 개인 나눔을 하는 시간이었다. 자연스럽게 기도모임 참석 동기라든지, 소감이 오갔다. 오래 떼제 기도모임에 참석했다는 개신교 목사, 처음 참석한다는 성당의 사무장, 직장인, 그리고 본당 떼제모임에 참여하고 있다는 젊은이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평화와 일치, 그리고 화해와 자기 쇄신을 위해 떼제기도 모임에 기꺼이 참여하고 있었다.

떼제가 좋아 프랑스 유학까지 갔다 온 목사의 추천으로 오늘 처음 떼제 기도회에 참석한 김수영씨는 "목사님께 하도 얘기를 많이 들어서 처음이지만 전혀 낯설지 않고, 찬미 노래와 침묵 기도가 너무 마음에 와닿는다" 면서 시간이 되는대로 자주 참석하겠다고 했다. 본당에서 떼제기도 모임을 시작하게 돼서 이곳에 왔다는 ㅎ씨는 "사실 본당 자매님들이 함께 오자고 했서 내키지 않은 발길로 왔는데, 와서 보니 너무 좋다. 마침 복음도 '와서 보시오' 라는 것이어서 나에게 주는 말씀으로 받아서 돌아가겠다" 라고 떼제기도의 기쁨을 얘기했다.

앉은 순서대로 얘기를 하다보니 내 순서가 마지막이었다. 취재 때문에 온 참석 이유를 솔직히 밝혔다. 너무 일찍 와서 문전박대 당했다는 말을 하니 참석자들이 모두 웃음으로 화답해 준다. 안선재 수사는 "이렇게 함께 기도하니 얼마나 좋습니까? 나눔이 끝나고 마지막 기도까지 하고나면 잠시 사진 찍을 시간을 줍시다"라고 말했다. 주님은 부족한 것을 채워주신다더니 기사에 필요한 사진을 찍을 수 있겠구나 싶어 고마운 마음을 쓸어내린다.


이어 안수사는 "주말에 개신교 교회에 가서 침묵 기도에 대해 강연을 해야 하는데, 시끄러운 이들에게 어떻게 침묵에 대해 말해야 할까요?" 라고 참석한 목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떼제 기도모임에 대한 강연 요청이 있다고 한다. 어쩌면 이 질문은 소음 공해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질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말을 듣기 보다 내 주장을 먼저 하고, 남의 고통에 귀기울이기 보다 내 이익이 더 앞서는, 그래서 침묵 속에서 주님의 뜻을 헤아리기 보다 인간의 뜻을 앞세우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내 본당, 내 교파를 내세우기에 주저함이 없는 현실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침묵기도가 아닐까 생각됐다.

안수사가 목사와 주고받는 말을 들으며 함께 부른 떼제노래 중에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 나와 함께 기도하여라" 란 말이 떠올랐다. 교회의 일치와 그리스도인의 화해를 위해 이보다 더 좋은 가르침이 있겠는가. 예수께서 겟세마니에서 기도할 때 제자들에게 "일어나 기도하여라" 라고 하신 것처럼, 현대를 사는 우리도 예수와 함께 깨어 기도한다면 일치와 평화, 그리고 사랑의 나눔은 멀리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진정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우리가 깨어 기도할 수 있다면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오신 그 분의 뜻을 좇아 가는 길이 무엇이 그리 힘겹고 어려울까?

"일치주간은 지금입니다만, 우리는 교회의 일치를 위해서 매일매일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만 하고 내일부터 하지 않아도 되는 기도가 아닙니다." 안선재 수사는 참석자들에게 일치와 화해를 위한 기도를 당부했다.

1940년 로제 수사가 프랑스 떼제마을에 초교파적 수도공동체 만들어

떼제의 로제 수사

프랑스 동부의 작은 마을 떼제에 둥지를 튼 '떼제(Taize)공동체'는 교파를 초월한 수도 공동체다. 처음부터 가톨릭, 장로교, 루터교, 성공회 등이 모이는 초교파적인 공동체였다. 수사들이 직접 작곡하는 떼제 노래와 묵상 기도는 영성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해마다 70~80개국에서 수 십만명의 젊은이들이 떼제를 찾고 있다.

한국에는 1979년에 들어와 조용히 뿌리내렸으며, 화곡동 떼제공동체는 올해로 30주년을 맞는다. 긴 세월동안 많은 이들이 떼제의 노래와 기도를 체험했고 응답에 따라 살고 있을 것이다. 각 성당에 떼제기도 모임이 확산됐고, 개신교 교회에서도 ‘떼제의 노래와 기도’를 하는 곳이 적지 않다. 한국에서 살고 있는 떼제 수사들은 '떼제의 노래와 묵상 기도법' 을 요청하면 어디든 달려가서 방법을 함께 나누고 있다.

1940년 로제 수사가 떼제공동체를 창립하기 위해 제네바를 떠난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인류 안에서 평화의 누룩이 되기 위해 그들 사이의 화해를 더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것을 꿰뚫어 봤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수년 후 로제 수사는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해 이렇게 썼다.

"내 할머니께서 삶으로 증거하신 것에 영향을 받은 나는 그분을 뒤따라 그 누구와도 친교를 단절함없이, 내 본래의 신앙과 가톨릭 신앙의 신비를 내 안에서 화해시키는 것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나의 정체성을 발견했다."

"로제 수사가 열어놓은 이 길은 간단하지 않고 지혜가 필요하며 우리가 아직도 미처 다 개척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속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갈라져 있으면 복음의 메시지가 들리지 않게 됩니다. 그리스도교 교회 모두에게 주어진 성령의 은사를 한 데 모으지 않고서 어떻게 세속화와 각 문화간 상호 이해 등 우리 사회의 새로운 과제에 응답할 수 있겠습니까? 갈라져 있으면서 어떻게 그리스도의 평화를 모두에게 전할 수 있겠습니까? 더 이상 그리스도인들끼리, 때로는 같은 교파안에서조차 서로 대립하면서 힘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합시다. 성경 말씀을 듣고 침묵하고 찬양하는 가운데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서로 만나는 기회를 더 자주 가집시다."

안선재 수사는 떼제에서 보내온 편지를 인용해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떼제에서는 공동 기도와 개인적인 만남들을 통해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이 더 깊어지고 그런 교류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나간다고 덧붙였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거저 베풀어 주신다. 은총도 거저 주신다. 하느님은 당신의 말씀을 통해 그것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은 누구나 만나 주신다. 신앙의 단순 소박한 신뢰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 자녀의 자유를 누리게 된다. 함께 찬양할 때 하느님 말씀이 우리 안에 스며들게 된다는, 이런 가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공통으로 중요한 것이다. 결국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하느님 안에 한 형제임에 틀림이 없다. 일치 주간은 단지 교회의 일치와 그리스도인의 화해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한 설정일 뿐, 그리스도인들은 매일매일 깨어 함께 기도하며 교회의 일치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상인숙/지금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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