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편지-지요하] ‘정의구현사제단’ 언급한 인터뷰는 사려 깊지 못한 일입니다

추기경 서임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바티칸에 가 계신 염수정 추기경님께 축하가 아닌 불편한 글을 드리게 되어 무척 마음이 아픕니다. 추기경 서임을 받으러 먼 길을 가셔서, 서임미사를 이틀 앞둔 시점에서 참으로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더군요.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순간을 앞두고 왜 그리 조악한 말씀을 거칠게 하셨는지 매우 안타깝습니다.

저는 염수정 추기경님께서 로마로 떠나시는 모습을 보면서 불안한 느낌이 없지 않았습니다만, 그러면서도 축복의 기도를 하고 싶었습니다. 한국교회의 영광이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하였습니다. 추기경님이 한국교회 모든 신자들의 축복 속에서 새롭게 사랑과 포용, 갱신과 일치를 추구하며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리스도교는 갱신과 희망의 종교이기에 그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 저와 한국 천주교회의 수많은 신자들에게 추기경님은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추기경 서임미사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그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순간을 마주하고 있는 자리에서 왜 스스로 재를 뿌리는 말씀을 하셨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 염수정 추기경은 지난 1월 14일 <평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입장을 대변하며 가난한이들을 위한 교회로가야 한다고 전했다. ⓒ문양효숙 기자

염수정 추기경 발언, 대단히 비이성적이다

바티칸 교황청이 발행하는 일간지 <로세르바토레 로마노>와 한 인터뷰에서 추기경님이 하신 말씀 하나하나를 되씹어보자니 너무도 사려 깊지 못한 것이어서 ‘조악’과 ‘천박’이라는 단어를 절로 떠올리게 됩니다. 추기경님은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 대해 “대단히 비이성적”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오히려 추기경님이 ‘대단히 비이성적임’을 절감합니다.

“나는 사제단 신부들의 주장이 완전히 비이성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는 민주주의 안에서 살고 있다. 통치자가 지지를 잃어버릴 경우 대중은 5년에 한 번씩 이를 바꿔버릴 기회를 가지고 있다. 민주정부가 수립되기 이전인 1987년까지만 해도 정의구현사제단은 충분히 공감할만 하고 굉장히 중요한 싸움을 이끌었다. 나도 그 이전까지만 해도 그들과 연대했다. 비록 그들과 함께 무슨 직책을 수행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오늘날 정치적 환경은 완전히 바뀌었다. 맞서 싸워야 할 독재권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 시기에 그들이 한국사회와 한국을 위해 중요한 일들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은 더 이상 정부에 맞설 때가 아니다. 그보다 대중의 필요에 자신들의 에너지를 쏟아야 할 때다. 그리고 사회를 진전시키기 위해 좀 더 복음적인 방법론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만일 지금 이대로의 방법론을 고집할 경우 그들은 사회의 변두리로 밀려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지금 교회에 대해서 행하는 분열의 이미지는 분명히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다.”

일단 대중들이 5년에 한 번씩 대통령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다는 말씀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랜 동안의 눈물겨운 투쟁으로, 수많은 국민들의 피와 땀으로 민주주의의 기틀을 만들었습니다. 추기경님 말씀처럼 국민의 손으로 5년마다 대통령을 새로 뽑을 수 있는 직선제도 수립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민주주의의 외형일 뿐입니다. 그런 외피와 함께 민주주의의 속살을 잘 갖추어야 우리는 제대로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저 외형만 민주주의일 뿐 속내는 오히려 민주주의를 능멸하고 훼손하는 역리, ‘자기파괴’ 현상을 겪으며 살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추기경님은 외피만을 보셨습니다. 외형만이 전부인 것으로 착각하고 계십니다. 그 외형 안에 있는 심각한 병리 현상들을 꿰뚫어볼 수 있는 ‘통찰의 눈’을 추기경님은 갖지 못했습니다. 너무도 안이한 눈이십니다. 어쩌면 오랜 세월 무겁고 화려한 고위 성직자의 복장 안에서, 신자들이 다투어 바치는 존경과 공대 속에서 평온하고 근엄하게만 사셨기에 그런 협소하면서도 편향된 눈을 가지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2009년 6월 19일 용산참사 현장에서 사제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당일, 도로 앞에서 농성을 하던 사제들과 시민들. 사진 중앙에 앉아 있는 전종훈 신부와 그 뒤에 회색 한복차림의 이강서 신부가 보인다. ⓒ한상봉 기자

‘용산참사’도 민주주의 안에서 벌어진 일이라 침묵하셨나요

추기경님 말씀처럼 우리는 1980년대 후반 이후로 ‘민주화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민주주의는 매우 위태롭습니다. 정치적 맥락의 민주주의도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이제는 자본의 압제를 겪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정치와 자본이 결탁한 민주주의 훼손 현상은 우리 사회에 갖가지 참혹한 풍경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추기경님께 몇 가지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추기경님의 말씀처럼 ‘민주주의 안에서 살고 있는 오늘’ 우리들에게 민주주의에 반하는 참혹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우선 조물주 하느님의 작품인 대자연을 망가뜨리는 4대강 파괴사업이 있었습니다. 수십 조 원의 국민혈세를 쏟아 부어 환경파괴를 자행한 일도 민주주의 안에서 벌어진 일이라서 침묵을 하셨습니까?

‘용산참사’도 민주주의 안에서 벌어진 일이라서 침묵을 하셨습니까? 처절한 아픔을 겪는 유족들이 비통하고 억울한 마음을 위로 받기 위해 면담을 요청했을 때도 민주주의 안에서 살고 계시기에 거절을 하셨습니까? 4년 동안 24명의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가족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참혹한 일이 벌어지는데도 민주주의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어서 침묵을 하셨습니까?

하느님 안에서 정의와 평화를 위해 힘껏 노고하는 사제들, 전국의 각 교구와 수도회 소속 사제들이 추기경님께서 관할하시는 서울대교구의 한복판인 용산과 여의도와 대한문에서 매주 또는 연일 미사를 봉헌하는데도, 그들이 ‘비이성적인 신부들’이어서 한 번도 찾아보지 않고 위로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습니까?

국정원과 국방부와 보훈처 등 정부 기관들이 개입하여 불법 부정선거를 자행했는데도 민주주의 안에서 벌어진 일이어서 두둔을 하십니까?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검찰의 소임을 다하려는 검찰총장과 담당검사를 찍어내고 수사팀을 와해시킨 가운데 요식적인 재판이 이루어지는 상황인데도 그게 민주주의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어서 눈감아주십니까?

30~40년 전 유신독재의 기틀을 만들고 떠받쳤던 사람들이 다시 등장하여 그 시절의 공작 수법을 동원하며 오늘을 과거로 되돌리려는 일들을 시도하는데도, 그것 역시 민주주의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니 문제가 없다고 보십니까? 갖가지 역리 현상이 벌어지는데도 아무도 제지하지 않고 눈감아버린다면,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길을 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 국민들이 5년마다 한 번씩 지도자를 제대로 뽑을 수나 있겠습니까? 5년마다 하는 투표의 의미가 온전히 살아날 수 있겠습니까?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지난 2010년 5월 17일 오후 3시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4대강사업 중단 촉구 전국사제단식기도회를 시작했다.(사진/김용길 기자)

화려한 추기경 복장에 안주하지 마십시오

저는 부모님 덕분에 젖먹이 시절에 세례를 받고 천주교 가정 안에서 자란 사람입니다. 가난한 소시민에 불과하지만, 하느님 신앙 안에서 늘 ‘양심’을 생각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추종하려는 자세로 살고 있습니다. 세상 사물을 볼 때 ‘예수님의 눈’을 생각하곤 합니다. 이런 문제를, 또 저런 현상을 예수님은 어떻게 보고 판단하실까? 라는 의문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런 ‘내적질문’과 예수님의 눈과 마음을 지니려는 태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필요하며, 그것을 뜨겁게 체화하려는 노력이 모두에게 요구된다고 봅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는 신자요, 복음정신을 구현하려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정의구현사제단 사제들이 봉헌하는 용산미사, 여의도 거리미사, 대한문미사 등을 차마 외면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이 땅에 계신다면 당연히 그곳에 가셔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시리라는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제 생각이 틀린 것일까요? 저는 사제들의 복장, 고위 성직자들의 화려한 복식이 온전히 예수님을 따르는 증표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너무 무례한 생각일까요? 이왕 무례를 저질렀으니 외람됨을 무릅쓰고 추기경님께 몇 가지 질문을 더 드려보겠습니다.

저는 지난해 3월 이후 저 바티칸에서 날아오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언행으로부터 큰 위안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우리 가톨릭교회에서 큰 희망의 빛을 보는 느낌입니다. 저뿐 아니라 수많은 신자들이(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교황님에게서 큰 힘을 얻고 있습니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첫 번째 권고 <복음의 기쁨>이 발표되었을 때는 정녕 큰 감격을 맛보았습니다. 그리고 염수정 추기경님에게서도 희망을 볼 수 있었습니다. 추기경님은 지난해 11월 29일 안드레아 축일에 명동성당에서 ‘영명축일 축하미사’를 봉헌하시면서 의미 있는 강론을 하셨습니다.

추기경님은 신자들에게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권고 <복음의 기쁨> 일부 내용을 소개하시면서 사제들을 향해 “세상의 부조리와 불평등을 용감하게 변화시키는 데 주저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추기경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황님은 ‘성전 안에만 안주하는 교회가 아니라 거리로 나가 멍들고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를 원한다’고 하셨습니다. 오늘의 교회가 물질주의 영향을 받아 교회의 본질을 잃어버리는 것을 경계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황님은 또 그리스도 공동체가 폐쇄적이어서는 안 되며 우리의 공동체 밖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우리 밖의 불쌍하고 힘없는 이웃을 위해 행동하고, 보살피라고 하십니다. 교회가 사랑과 나눔을 구호나 이론이 아니라 직접 몸으로 실천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교회와 사제들도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난한 이들, 소외받은 이들,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 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종전의 태도와는 180도 다른 추기경님의 이런 말씀에 많은 이들이 놀라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추기경 서임을 염두에 두고 기회주의를 선택했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그런 말들을 귀담아 들으면서도 저는 추기경님을 믿고 싶었습니다. 진심으로 하신 말씀이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추기경님의 ‘갱신’을 뜨겁게 소망하였습니다.

그런데 추기경님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너무도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난해 11월 29일 명동성당에서 하신 말씀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말씀인데, 그때는 무슨 의도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까? 추기경님은 사제단이 지금의 방법론의 고집할 경우 사회 변두리로 밀려날 것이라고 하셨지만, 제 생각은 반대입니다. 추기경님이 통찰력과 정의감을 지니지 못한 태도를 계속 고집한다면, 무겁고 화려한 추기경 복장과는 상관없이 믿음의 변두리로 밀려날 것으로 보는데, 제 생각이 틀렸습니까? 저는 추기경님께서 추기경의 체신을 도외시한 채 너무도 경박한 말씀을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왜 추기경님 스스로 교회 분열을 조장하십니까?

추기경 서임식 자리에서 교회공동체의 한편에게 적대감을 갖도록 하는 발언을 꼭 하셔야만 했습니까? 저 독재 권력에 빌붙어서 갖은 호사를 다 누리며 살았던 사람들, 가난한 이들의 피와 눈물의 심연을 알 리 없는 오늘의 저 부유한 '바리사이'들에게 둘러싸여 주님의 제단을 더럽히는 처신을 더 이상 하지 않으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지요하 (막시모)
소설가, 대전교구 태안성당 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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