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티노 추기경, 가자 지구를 ‘거대한 강제 수용소’로 비유


중동 위기는 언제나 이스라엘에 대한 교황청의 비평으로 끝나는 것 같다. 주말 연속극처럼 이번 주에도 한바탕 그런 입씨름이 일었다. 수요일 이스라엘 당국자는 교황청이 ‘하마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고 불평하였다. 이것은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위원장 마르티노 추기경이 가자 지구를 ‘거대한 강제 수용소’로 비유한 발언에 토를 단 것이었다.

이스라엘의 외무부 대변인 이갈 팔모르는 "하마스의 수많은 범죄는 간과하면서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 같은 발언은 사람들을 진리와 평화에서 한층 더 멀어지게 한다."고 반박하였다.

노련한 관측자들은 마르티노 추기경에게 관심이 집중되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것이다. 교황청 외교단은 대부분 무대 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처럼 주목받기를 싫어하는 것 같은데, 마르티노 추기경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재능이 있다. 독자들은 기억할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 2003년에 마르티노 추기경은 미군이 구금된 사담 후세인을 ‘마치 한 마리 암소’처럼 대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전 이라크 지도자에게 ‘동정’과 ‘연민’을 느낀다고 말했었다. 이러한 발언은 후세인 정권의 희생자들은 물론 일부 미국인들의 구미에도 맞지 않았다.

공평하게 말해서 가자 지구에 대한 마르티노 추기경의 논평 전문은 이와 같은 이스라엘측의 신랄한 반박과는 달리 형평성을 잃지 않고 있다. 여기 지난 1월 7일 그가 이탈리아의 한 웹사이트와 인터뷰한 것이 있다. “이기주의의 결과는 증오와 빈곤, 불의입니다. 희생자는 언제나 비무장 민간인들입니다. 가자 지구의 상황을 보십시오. 점점 더 거대한 강제 수용소를 닮아가고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양측의 의지입니다. 양쪽 다 책임이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같은 땅의 자손들이지만 떨어져 살아야 합니다. 두 형제가 있다면 누구나 그렇게 할 것입니다. 만일 둘이서 합의를 보지 못한다면, 다른 누군가가 합의를 이끌어줄 의무가 있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습니다.”

이러한 말을 살펴볼 때 마르티노 추기경은 그렇게 고지식하지 않다. 그는 국제연합에서 교황청 옵서버로 16년이나 일했다. ‘강제 수용소’라는 자신의 언급이 아랍과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이 이스라엘을 독일의 나치에 비유할 때 즐겨 사용하는 노골적인 상징을 떠올리게 하리라는 것을 몰랐을 리 없다. 만화들을 보면 한결 같이 다윗의 별이 갈고리 십자형 안에 끼워져 있고, 이스라엘 수비대는 SS 돌격대원의 복장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추기경의 언급은 외교적으로 정곡을 찌른 것과 같다(이것은 물론 한 지혜로운 교황청 당국자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강제수용소를 상기시킨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홀로코스트를 묵인한 문제는 그리스도인과 유다인의 관계에서 아직도 매우 예민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일은 이스라엘과 그 지지자들이 이른바 ‘성지’를 대하는 교황청의 편견에 대하여 불평한 최근의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성지’라는 말 자체가 언어적 중립성을 유지하려는 관례에서 나온 말이지만, 대다수 이스라엘인들은 유다인 국가의 합법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교묘한 발상으로 여기고 있다,

사진출처-동아일보

예를 들어 지난 2002년 봄, 이스라엘군이 서안 지구의 베들레헴을 에워쌌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가 예수탄생 대성전을 점거하였기 때문이었다. 전통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성전을 예수의 출생지로 여기고 있다. 40일의 대치 기간 동안, 교황청 공식지 로세르바토레 로마노는 이스라엘의 ‘점거’를 강력히 비난하였다. 물론 팔레스타인이 총부리를 겨누며 성전을 강탈하지 않았더라면, 이스라엘이 먼저 공격할리는 없었겠지만 말이다. 한술 더 떠서 로마노지는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드는 공격’을 퍼붓는 이스라엘을 비난하면서, 이스라엘군이 ‘거룩한 곳을 총과 대포로 더럽히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가자 지구의 현 위기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에 대한 교황청의 접근과 관련하여 올바른 기록을 위해 4가지 사항을 주목하여야 한다.

첫째, 교황청 외교의 주요 목적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쪽 모두에 안정을 가져다주는 양국간 해결책을 지지하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교황청의 논평은 지금까지 양쪽 모두에 비판적이었다. 예를 들어 1월 1일 삼종기도 연설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인이나 팔레스타인인이나 대부분 평화로이 살고자하는 깊은 갈망을 마음속에 품고 있습니다. 가자 지구에서는 폭력에 맞선 또 다른 무참한 폭력으로 그러한 갈망을 다시 한 번 위태롭게 하고 있습니다.” 1월 4일에도 교황은 “양측의 권위자들과 책임자들에게 비극적인 상황을 즉각 종식시킬 것을” 촉구하였다.

둘째, 과거 교황청의 지나친 반이스라엘 노선은 대체로 그 출처가 이탈리아인 평신도 마리오 아녜스가 편집장으로 있던 로세르 바토레 로마노지였다. 교황이 바뀌면서 요즈음에는 교황청 매체의 어조가 좀더 균형을 유지하게 되었다. 지난 12월 바티칸 라디오에서 방송된 교황청 대변인 예수회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의 진술이 그 예이다. 롬바르디는 “하마스는 증오의 논리에 얽매여 있고, 이스라엘은 증오에 대한 최선의 대응책은 폭력이라고 믿고 있는 논리에 얽매여 있다.”고 말했다.

셋째, 베네딕토 16세는 요한 바오로 2세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고 공개적으로 무슬림 지도자들에게 폭력과 테러를 거부할 것을 촉구하고, 나아가 ‘호혜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이는 대다수 이슬람 국가에게 종교 자유의 권리를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넷째, 마르티노 추기경의 말속에서 모두가 교황청의 반이스라엘의 경향을 감지해내는 것은 아니다. 1월 6일 베네딕토 16세가 가자 지구 폭력을 비난하자, 저명한 사우디 논평가가 이렇게 썼다. “교황은 좀 더 분명히 했어야 했다. 레바논에서 그랬던 것처럼, 가자 지구 시노드를 소집했어야 했다. 그러나 교황은 유다인들이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그들에게 아첨하기 바쁘다.”

말이 나온 김에 이스라엘인들을 화나게 하는 것은 이것이다. 곧 대체로 교황청은 이스라엘이 성지를 선제공격할 때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그들을 비난했다는 것이다. 물론 여러 가지 진술은 상당히 공평하지만, 소식통들을 부추겨 이스라엘의 공격을 전 세계가 비난하도록 한다. 이탈리아의 가톨릭 저술가 산드로 마지스터가 지적한 것처럼, 하마스가 가자 지구를 점령하고 이스라엘에 폭탄을 퍼붓는 동안에는 교황청에서 그 어떤 고압적인 논평도 하지 않았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중세의 반유다주의의 유물을 들먹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또한 1948년 이스라엘 국가 건립에 대한 교황청의 이중 의식도 마찬가지다. 팔레스타인인들이 당하고 있는 정치 사회적 불의가 문제의 근원이라는 굳은 믿음과는 별도로, 두 사회학적 세력이 작용하고 있다.

첫째, 특히 나이 많은 교황청 외교단은 유럽 외무장관들과 동일한 배경의 출신들이다. 모든 것들이 동등하기 때문에 그들은 대체로 팔레스타인을 편드는 동등한 견해를 공유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유럽의 매체들이 팔레스타인의 선제공격보다는 그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응에 더 많은 신문 지면을 할애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다.

둘째, 교황청은 물론 성지에 실제로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그리스도인들로 이스라엘에 대해 극히 비판적이다. 요즘 또 다시 지역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이 이스라엘의 정책에 대하여 거세?항의하고 있다. 예루살렘의 라틴 총대주교 포아드 투알은 이스라엘의 ‘부당한’ 대응에 대해 비난하였다. 예루살렘 총대주교좌 전 대변인이자 성지에 있는 유일한 가톨릭 라디오 방송국장 아부샬리아 신부는 한 층 더한 어조로 “하마스는 괴물이 아니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에 반대하는 저항 단체일 뿐이다. 그 어느 때보다 대화를 통해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간의 비극적인 갈등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예루살렘의 마르쿠조 보좌 주교는 이스라엘에 하마스와 협상할 것을 호소하면서, 아부샬리아 말대로 하마스는 ‘합법적이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당이라고 말했다. 성지 관리자로 봉사하는 프란치스코회 회원들은 이스라엘을 가자 지구 침입에 항의하는 표시로, 베들레헴에 성탄절 불빛을 밝히지 않았다.

하마스에 대한 이러한 명백한 동조를 외부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그리스도인들은 계속해서 성지를 빠져나왔다. 대부분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압력에 이기지 못하고 쫓겨난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성지는 세상의 모든 것이다. 팔레스타인 국가에서 그리스도교가 미래를 보장받으려면, 팔레스타인 국민들과 온전히 운명을 같이하여야 한다고 그들은 믿고 있다(같은 논리에서 아랍의 그리스도인들은 민족주의와 범아랍주의의 선봉에 서왔다. 예를 들어 바스당의 이념적 창시자 마이클 아플락은 시리아의 그리스 정교회 가족에서 태어났다).

끝으로 교황청은 언제나 지역적 편견에 거리를 두고 있으며, 이는 이론적으로 좀 더 균형잡힌 평가를 가능하게 한다고 자랑해 왔다. 온건한 이스라엘인조차 그러한 공평성을 찾아보기 힘든 한, 교황청이 중립적인 양심의 대변자로 바람직한 역할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베네딕트 16세는 종교간 관계의 차원에서 가톨릭이 더욱 확고한 자세로 종교를 앞세운 폭력을 단죄하도록 이끌어왔다. 이는 실제로 가톨릭-무슬림간 대화에서 좀 더 도전적인 노선을 의미해 왔다. 지금까지 이러한 새로운 태도가 아직 교황청의 외교 정책에는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비평가들은 말하곤 한다.

가자 지구의 위기로 제기되는 한 가지 의문은 모두가 고대하고 있는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5월의 성지 방문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 여행에 대해 교황청은 공식 확인을 미루고 있지만, 지역 교회 당국자들은 교황이 5월 8일에 요르단에 도착한 다음, 5월 11-15일에 이스라엘에 가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한다. 잠정적으로 교황은 예루살렘과 나자렛, 베들레헴에서 미사를 집전한 다음, 야드 바셈에 있는 홀로코스트기념관을 방문하고, 이스라엘의 대통령과 대담하기로 되어 있다(당국자들은 교황이 하마스 대표단과는 회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최근의 폭력에 비추어볼 때, 교황청 당국자들은 교황의 여행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였다. 롬바르디 신부는 최근 교황의 방문이 확정되지 않았다고 강조하였으며, 마르티노 추기경은 가자 지구의 위기가 필요한 계획의 추진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체로 지역 교회 당국자들은 5월쯤 평화가 회복되어 교황의 여행이 이루어지리라고 낙관하고 있지만, 평화 협정 전에는 어떤 공식적인 발표도 없을 것 같다.

2009.1.9. 존 알렌

번역/김미경

(출처-NC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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