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등 심포지엄 개최.. 염 추기경, 연명의료결정법 반대

▲ 1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와 유재중 의원 공동 주최로 ‘바람직한 연명의료결정의 방향과 과제’ 심포지엄이 열렸다. ⓒ문양효숙 기자

“호스피스와 같은 완화의료가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정되는 ‘연명의료결정법(안)’은 의료비를 절감할 수 있을 뿐, 환자 개인의 존엄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위원장 염수정 추기경)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유재중 의원(새누리당)은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바람직한 연명의료결정의 방향과 과제’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발제를 한 가톨릭대 의대 홍영선 교수(한국가톨릭의사협회)는 “치료 중단 후 환자를 적극적으로 돕는 장치가 없다면 환자의 자기 존엄성을 존중받을 수 없다”며 연명의료결정법안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홍 교수는 연명의료결정법안이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중점을 둔 법안이라며, “환자의 자기결정권의 원래 의미는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치료를 환자가 거부할 권리인데, 이 용어가 본래 의미에서 벗어나 환자가 원하면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행위도 할 수 있는 것으로 오해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홍 교수는 “연명의료결정법은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치료를 받지 않도록 환자에게 무언의 압력을 가할 가능성이 있고, 특히 환자가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경우거나 자신의 소신을 피력할 정신적 · 육체적 상황에 있지 못할 때 그 위험성은 더 커진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환자가 미리 작성하는 사전의료의향서가 충분한 의학적 정보 없이 작성될 수 있으며, 이를 의사가 무조건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길 것을 염려했다. 또 “영양 및 수분 공급을 선택할 수 있게 만들어진 기존의 사전의료의향서는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다.

호스피스 제도화 · 생명 존중 사상 없는 연명의료결정법,
치료 중단 환자가 마지막 돌봄 받지 못할 수 있어

홍 교수는 바람직한 연명의료를 위해 연명의료결정법 시행보다 호스피스 등의 완화치료를 제도화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문화를 확산시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호스피스에서 임종하는 암환자 비율은 전체 임종 암환자의 10% 미만이다. 대부분의 암환자는 가족 면회가 제한된 중환자실에서 사망하는 것이 현실이다. 2008년 제정된 암관리법에는 말기 암환자에 대한 완화의료제도 도입이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홍 교수는 “전체 예산과 호스피스의 수가가 낮고 법적 절차가 정리되지 않아 요양기관의 참여를 이끌어내기에는 부족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불거진 연명의료결정 입법 움직임은 자칫 환자가 무의미한 치료는 중단한 뒤 마지막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임종 시까지 방치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연명의료결정 법제화는 작년 7월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이하 국생위)가 산하 기구인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제도화 논의를 위한 특별위원회’(이하 특별위)에서 제출한 ‘연명의료의 환자결정권 제도화 권고안’을 심의, 의결하면서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연명의료결정법안은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 권고안에 따라 환자의 명시적 의사, 의사 추정, 대리 결정에 따라 임종을 앞둔 환자의 특수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환자가 자신의 상태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이성적으로 판단한 사전의료의향서(유서 포함)를 담당 의사가 확인하거나, 가족 2인 이상이 환자의 평소 의사에 대해 일치하는 진술을 하고 이를 담당 의사가 확인할 경우 등에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등 전문적인 의학기술과 장비가 필요한 특수연명치료를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연명치료결정법안의 환자의 의사 확인 방법

“환자의 자기결정권, 스스로 죽음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로 확대해석은 잘못”
인간 존엄성 약화와 안락사 허용 가능성 문제로…염수정 추기경, 연명치료결정법안 반대

지정 토론자로 나선 단국대 법학과 이석배 교수는 이 법안이 마련된 국가인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예를 들면서 “이 국가들은 호스피스도 법제화되어 있고 병원비를 거의 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이란 의사가 환자가 원하는 것을 모두 해줘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의사가 제안한 치료를 환자가 동의해야 할 수 있다는 의미”라면서 “일정한 치료를 거부하고 스스로 죽음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잘못”이라 말했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서울대교구 조규만 · 정순택 주교를 포함해 수도자와 신자 200여 명이 참석해 연명의료결정법안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드러냈다.

한편,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는 위원장 염수정 추기경 명의로 발표한 담화문에서 “현재 정부의 법제화 움직임이 기대보다 우려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담화문에서 염 추기경은 죽음이 임박한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적절한 처치와 돌봄’이라며 “환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처치라면 신중히 결정할 수 있으나, 그것은 담당 의사, 환자, 보호자가 함께 의논하여 내리는 결정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영양 및 수분 공급, 통증 조절, 위생 관리 등 기본적 돌봄은 마지막까지 계속되어야 하며, “법제화 움직임에는 환자의 생명의 가치와 존엄성을 약화시키고 안락사를 허용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이를 반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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