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최근 열린 한 경제학 학술대회에서 한국의 국민행복지수가 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33위를 기록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자살률과 출산율, 주관적 행복도, 환경오염, 평균수명 등을 종합해 산출한 지표였다. 이 연구 결과는 당연 언론의 관심을 받았고 SNS를 타고 많은 이들에게 회자됐다. ‘행복’을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만나기 어려운 시대이기 때문일까.

그런데 행복의 전제조건으로 다름 아닌 ‘색깔’을 이야기하는 한 사람이 있다. 스스로 ‘회색에서 녹색’이 됐다고 말하는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다. 그는 최근 서형원 과천시의회 의원과 함께 <행복하려면, 녹색>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다. 서울 종로구 녹색당 사무실에서 하 위원장을 만나 그의 녹색 행복론을 들었다.

▲ “녹색은 행복이라는 단어와 떼려야 뗄 수 없다”고 말하는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한수진 기자

“변화는 풀뿌리의 지혜와 경험, 선한 동기에서 시작된다”는 믿음

그의 여정은 “공익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에서 출발했다. 대학 졸업 후 회계사로 일하던 그는 활용도가 높을 거라는 다분히 “실용적인 이유”로 변호사가 되었고, 참여연대 상근변호사로 시민운동을 시작했다. 소액주주운동과 사법개혁운동 등 참여연대에서의 활동은 공익을 위한 구체적인 변화를 만들고 싶었던 그의 생각과 잘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제도의 변화가 사회 공동체 구성원 개개인의 변화를 담보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은, 그의 관심을 풀뿌리 지역운동으로 이끌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작은 동네는 하나의 우주라고 할 수 있어요. 큰 사회문제는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과 연결되어 있는데, 그들의 일상을 보지 못하면 ‘수박 겉핥기’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같아요. 당시에 제가 살던 과천은 중산층 이상이 많이 거주하는 도시로 알려져 있었지만, 반지하와 비닐하우스 가구도 많았어요. 도시가 중산층이라는 정체성으로 규정되면서, 그 도시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의 존재는 없는 것처럼 취급되고 있었죠.”

하 위원장은 “지역운동을 하면서 우리의 생활 세계 자체에 소외와 배제, 차별이 뿌리 깊게 박혀 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공동체의 가치는 글이나 말 속에만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생활 속에서 실현돼야 하는 거였다. 과천에서 주민발의로 보육조례 개정을 이끌었던 주민들은 보살핌에서 소외된 저소득층 아동들을 돌보기 시작했고, 학교 운영위원회는 투표권이 없는 청소년들의 의견을 반영할 방법을 모색했다.

이런 과정에 동참하면서 그는 “큰 흐름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지역과 일상생활을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배움을 얻었다. 또한 풀뿌리들 사이 그 역시 하나의 풀뿌리가 되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면서 “변화의 힘은 특출한 엘리트가 아니라 풀뿌리들의 지혜와 경험, 선한 동기에서 나온다”는 믿음을 더욱 굳히게 됐다.

원전과 경제성장 자체가 문제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하 위원장의 관심을 녹색으로 확장시켰다. 그는 “후쿠시마 사건으로 새로운 운명을 만났다”고 말했다. 텔레비전으로 원전이 폭발하는 장면과 사고 수습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는 2003년 부안 핵폐기장 반대운동을 떠올렸다. 그가 참여했던 유일한 핵 관련 활동이었다.

“부안 앞바다에 있는 위도에 들어갔을 때, 주민들 사이에선 주민등록만 있어도 5억을 준다는 소문이 떠돌았어요. (사실이 아닌데도) 국가는 명확하게 부인하지 않고, 소문이 떠돌도록 방치하더군요. 부안에 설치하려던 것은 경주에 짓는 중저준위 폐기물시설이 아니라, 고준위 폐기물시설이었어요. 플루토늄이 포함된 사용 후 핵연료의 중간저장시설이었죠. 위도 주민들은 핵산업계 사람들이 퍼트린 이야기를 듣고 플루토늄은 먹어도 된다고 믿고 있었어요.”

후쿠시마에서는 핵산업계와 관련 공기업이 폐쇄적인 권력을 형성하고 정보를 독점한 채 국가와 공권력이 이들을 지원하는 구조가 부안에서처럼 그대로 실행되고 있었다. 부안을 계기로 핵폐기물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후쿠시마를 보면서 “원전 자체가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원전을 공부할수록 원전의 유지를 가능하게 하는 경제 구조와 정치 구조의 문제로까지 생각이 미쳤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그동안 과도하게 경제성장 중심으로 나가는 것은 문제이지만 경제성장 자체가 문제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우리 사회의 경제와 정치 전체를 돌아보면서 마지막에 내린 결론은 ‘경제성장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겠다’였어요. 원전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경제성장 논리잖아요. 경제성장 자체를 근본적으로 회의하고 성찰하고, 경제성장이 아닌 다른 것에 가치를 두지 않는 이상 우리가 원전에서 벗어나기는 힘들겠다고 생각했어요.”

▲ 서울 광화문에서 신규 원전 건설 중단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는 하승수 위원장 (사진 제공 / 하승수)

녹색당은 경제성장 성찰하고 문명의 전환 바라보는 ‘가치 정당’

하 위원장은 “그동안 지역에서 겪었던 빈곤과 차별의 근본 원인이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희생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 때문이 아니었을까”라는 물음을 던지면서, “회색에서 녹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또한 “거대한 권력이나 자본의 논리가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한 순간에 파괴하는” 과정을 목격하면서, 국가와 전 지구적 규모의 거대한 구조를 바꾸는 일에 풀뿌리 운동이 곧바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마침 하 위원장은 당시에 4년간의 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 교수직을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와 새로운 운동을 모색하고 있던 때였다. 확장된 고민의 결실은 ‘녹색당’ 창당으로 이어졌다.

“정치는 비판하고, 감시하고, 욕한다고 바뀌지 않아요. 시민운동은 여론과 압력으로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한계가 명확하죠.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는 시민운동이 큰 힘을 가진 것 같았지만, 그건 언론과 정치권이 시민운동에 우호적이었을 때였어요. 보수언론이 등을 돌리고 정치권도 시민운동의 영향을 크게 여기지 않으면서 시민운동은 힘을 많이 잃었다고 봅니다.”

그는 지역의 풀뿌리 생활 정치가 정책 결정에 보다 직접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그림을 그렸다. 당원과 지역 당원 모임이 기초가 되는 녹색당의 구조를 만들어가는 데 하 위원장도 자신의 생각을 보탰다. 동네마다 뿌리내린 당원 모임은 각자의 지역에서 정치를 하고, 하나의 녹색당으로 국가 정책 결정에 참여하고, 국제적인 녹색당 네트워크를 통해 전 지구적인 녹색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 이것이 하나의 풀뿌리가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녹색당의 구조다.

하 위원장이 지역에서 만난 당원들은 다양한 경로로 “녹색당의 뿌리”가 된 이들이었다. 탈핵, 농업, 먹을거리, 노동, 인권, 성 평등, 소수자, 평화 등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은 ‘녹색’이라는 하나의 가치를 공유했다. 그래서 하 위원장은 녹색당을 “가치 정당”이라고 설명했다.

“기존의 경제성장 중심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문명의 전환을 지향하는,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가치 중심의 정당이에요. 당원들이 정책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달라요. 교육 문제에 있어서 당원들 중에는 ‘대학 진학률이 83%에 이를 정도로 대학을 많이 가는 게 좋은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해요. 반값등록금 정책이 대학을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되겠지만 과연 대학에서 가르치는 지식이 녹색과 맞는 것인지, 오히려 대학을 가지 않고도 자립하고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게 아닌가 하는 고민이죠.”

“지방선거, 같은 가치 바라보는 사람들의 축제로”

하 위원장은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당원들의 움직임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이번 선거는 녹색당이 치르는 첫 지방선거이기도 하다. 특히 녹색당은 지난달 28일 정당 득표율에 따른 정당 등록 취소와 명칭 사용 금지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당명을 되찾으면서 본격적인 선거 준비가 한창이다. 녹색당은 2012년 4월 총선에서 득표율 2%를 얻지 못하면서 정당 등록이 취소돼 그동안 ‘녹색당’ 이름을 사용하지 못했다.

녹색당은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할 후보를 중앙당의 특별한 지침 없이 각 지역 당원 모임 총회에서 결정하고 있다. 경기도 과천시에서 시장 후보가 결정됐고, 경북 구미와 충남 홍성, 서울 서대문, 은평 등지에서 지방의원 후보가 결정됐다. 그 외에도 여러 지역에서 당원 총회가 열릴 예정이다. 서울과 경기도에서는 광역비례대표를 내기로 했다.

이번 선거에서 녹색당의 목표는 “그동안 당원들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하는 것”이다. 하 위원은 “노래를 부른다고 축제가 되는 게 아니라, 당원들이 후보 선출부터 선거운동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같은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들과 목소리를 내고, 선거 과정을 즐기는 것이 진짜 축제”라고 말했다.

요즈음 하 위원장은 충남 홍성으로 귀촌을 준비하고 있다. 인터뷰를 하던 날 아침에도 홍성에서 기차를 타고 2시간을 달려 당 사무실로 출근했다고 한다. 그의 꿈은 귀촌이 마무리되는 대로 녹색당 평당원으로 돌아가 사람들과 교류하며 지역의 시민운동에 보탬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다. 틈틈이 농사도 배우고 싶다고 했다. 그는 “녹색은 행복이라는 단어와 떼려야 뗄 수 없다”는 자신의 말 그대로 진정한 행복을 꿈꾸고 있었다.

<바로잡습니다>

기사 중 “경북 구미와 경기도 과천에서 시의원 후보가 결정됐고, 조만간 충남 홍성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당원 총회가 열릴 예정”이라고 보도된 것을 “경기도 과천시에서 시장 후보가 결정됐고, 경북 구미와 충남 홍성, 서울 서대문, 은평 등지에서 지방의원 후보가 결정됐다. 그 외에도 여러 지역에서 당원 총회가 열릴 예정”으로 바로잡습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