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성 바오로, 안드레이 루블료프. 15세기

En Cristo
8년 전 이맘 때 엘살바도르의 뉴에바 에스뻬란사 마을에서 호세 콤블린 신부를 만났다.

브라질에서 왔다며 벨기에 출신 베드로 신부가 우리에게 소개하였다. 작은 마을의 기초 공동체를 위해 초청하였던 것이다. 내심 놀랐다. 내로라 하는 신학자인 그가 이 보잘것없는 마을까지 와서 찌그러진 의자에 앉아 단 몇 사람을 위해 강의를 하는 것이었다.

아마 우리나라에 왔다면 꽤나 알려진 신학자로서 대학 강의실이나 멋진 성당에서 수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관심이 집중되었을 텐데 이 보잘것없는 마을의 몇 사람을 위해서 왔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그것도 이틀을 너무도 편한 자세로 빠르지 않은 말투와 꾸밈없이 자유롭게 말하는 모습, 그리고 그의 반짝이는 눈속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어우러져 마치 한 장의 사진처럼 느껴졌다.

말로만 '가난한 자와 가까이'가 아닌, 실제로 형편없이 가난한 그들과 함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먹고 안고 다독거려 주는 게 바로 선교사의 모습이었다. 그의 책들은 읽지 않았지만 학자라기보다는 옆집의 어느 아저씨와 담소를 나누는 광경이라고나 할까!

그의 강의 내용은 대부분 사도 바오로의 선교와 성령에 관한 것이었다. 자유와 행동, 힘 있는 말, 마을, 삶(생명)이 있는 곳에 성령은 현존한다는 것을 각 단어의 의미를 들어서 설명하며 하느님의 일을 시작하는 데는 불가능이란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모두가 움츠리고 있을 때 세상 어디엔가는 퍼덕이는 날갯짓이 있고, 모두가 폭력이 두려워 정의를 외면하고 있을 때 어딘가에는 목숨 걸고 외치는 이의 소리가 있듯이 하느님은 모든 것을 도구로 쓰신다는 것. 그것에 우리는 순명할 수밖에 없고 그것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만약 그를 다시 만난다면 질문도 많고 나눌 것이 많을 것 같은데... 그러면 그는 그때처럼 느긋한 말투로 자신이 전해주고자 하는 것, 내가 알고자 하는 그 모든 것을 성실하게 답해 주겠지!

자! 이콘을 바라보니 사도 성 바오로이다.

안드레이 루블료프가 그렸다. 대부분 사도 바오로를 작은 키에 대머리로 표현한다. 아마 외경의 기록 때문일 것이다. 그가 키가 작든 대머리든 상관없이 그의 눈을 바라보았으면 한다.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이콘이기에 역시 사도 바오로의 눈빛은 참으로 절묘하다. 옷의 색깔이나 표정에서도 느껴지듯 강인함이 보이지만, 고개 기울임의 각도는 그리스도께 온전히 순명하는 자로서의 겸손함이 흘러나온다.

이 이콘은 구세주 그리스도와 성 미카엘 대천사와 함께 헛간에 버려진 채 긴 세월동안 침묵 중에 있었다. 이 이콘들이 발견되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숨어 있는 표정과 고요한 침묵의 언어를 보고 듣고는 감탄하였을까!  실제로는 문짝 크기만 하다니 놀랍지 않는가.

파손된 부분에 잠시 시선을 두자.

우리는 늘 완전한 것, 완벽한 것을 보는 데 익숙해 있다. 무언가가 비어 있으면 채워 넣어야 하는 불안감을 가진다. 너그럽게, 여유롭게 바라보는 것을 힘들어 한다. 여유로움이란 있는 자만이 누리는 휴식이라고 생각한다. 천만의 말씀!!! 여유는 삶을 삶으로 바라보는 사람만이 누리는 여유다. 삶을 일로 여기는 사람은 여유도 일로 본다.

이 이콘이 만약 얼굴이 파손되었다면 누구인지도 가름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왼손에 쥐고 있는 복음서도 끝자락만 남았고 거기에다 바로 오른손의 부분이 심하게 파손되었다. 옷자락의 길이나 모양을 보아서는 어쩌면 오른손도 복음서를 소중히 감싸고 있는지 모른다. 삶의 지침서가 되었던 그리스도의 말씀! 어찌 소중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간구하는 자의 오른손으로 바라보고 싶다.

자! 지금 이 이콘의 파손된 부분에 그대의 손을 대어 보는 것이다. 그대를 제외한 다른 모든 이들의 희망과 간구와 기도를 담아 보자. 늘 자신만을 위한 기도를 바쳤다면 적어도 오늘 만큼은 다른 이들을 위해 간구하는 바오로의 오른손이 되어 그리스도께로 향해 보는 것이다.

언제 우리가 다른 이를 위해 간구의 손을, 기도의 손을 주님께로 내밀어 보겠는가?!

살아가면서 많은 시간을 자신을 위해 소모하는 데 단 몇 분만이라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생각해 보는 것. 바로 참다운 여유를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내어줌이다. 어쩌면 이 이콘의 파손된 부분은 사랑의 행함을 채우라고 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 사도 못지않게 열정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파한 사도 성 바오로! 그리스도가 삶의 중심이었던 그!!
가지고 있었던 것은 오로지 그리스도뿐 다른 모든 것은 쓰레기로 여겼던 사도 성 바오로!!! 선교사라면 적어도 이 사도에 대한 열정에 매료되어 한번쯤 사랑에 빠졌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으니깐. 웃을지 모르지만 난 열병을 앓을 정도로 사랑했었다. 선교사로 파견되기 전에 필독을 권한다면 성경에서의 사도 바오로의 글들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아니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 모두에게도 마찬가지겠다.


임종숙/ 루시아 수녀,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수원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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