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회 생명평화
"마을이장도 모르는 송전탑 공사 합의, 이런 일이"밀양 산외면 보라마을 이종숙 이장 등 주민 분개... 한전 "30가구 합의"

"죄송하고 부끄럽다. 마을에서 이런 사태가 일어나리라고 상상도 못했다. 설마 했는데…. 며칠 전 도장을 찍어준 친척이 왔길래 '아재만큼은 믿었다'고 하면서 한참 이야기를 했더니 미처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고 하더라.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도 참 부끄럽다. 그래도 어떻게 하든 송전탑을 막아야 한다."

10일 오후 밀양 산외면 보라마을회관. 70대 할아버지가 마이크를 잡고 길게 설명했다. 한국전력공사가 지난 7일 보라마을 주민들과 송전탑 공사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는데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 '반박 기자간담회'를 연 것이다.

   
▲ 이종숙 밀양 산외면 보라마을 이장. ⓒ윤성효

   
▲ 한국전력공사가 밀양시 산외면 보라마을 주민들과 송전탑 공사에 합의했다고 발표한 가운데, 보라마을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 10일 오후 마을회관에 모여 입장을 발표했다. 사진은 이종숙 마을이장이 설명하고 있는 모습. ⓒ윤성효

한전은 보라마을 39가구 가운데 30가구가 합의했으며 마을이장을 제외하고 주민대표를 통해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마을 전체 보상금은 4억9000만 원. 이중 40%가 개별보상금으로 가구당 평균 500만 원 안팎이다.

보라마을에는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102번 철탑이 들어서는데 한전은 아직 공사에 들어가지 않았다. 2012년 1월 한 주민(당시 74살)이 송전탑 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분신자살했던 마을로 한때 송전탑 반대의 대표적인 마을로 알려졌다.

보라마을이 한전과 송전탑 공사에 합의했다는 소식은 밀양 4개면 송전탑 반대 주민들한테도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에 이날 기자간담회에는 다른 마을 주민들도 와서 보라마을 주민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이종숙 이장은 이날 오전 마을회관 방송으로 기자간담회 한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는 한전과 합의서에 도장을 찍어준 주민들도 나와서 이야기를 듣거나 말을 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이날 모임에는 합의해 준 주민들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마을 모든 일은 총회 통해 다수결로 결정"

먼저 이종숙 이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부끄럽다"는 말부터 했다. 그는 "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이장도 모르게 한다는 말이냐"며 "주민대표라는 사람 5명이 협의를 해서 반대 주민들이 2차 '밀양 희망버스'(1월 25일)를 준비하는 어수선한 속에 진행했다. 보상금을 두 배로 준다는 말을 듣고 도장을 찍어준 주민도 있었다. 너무 원통하다"고 말했다.

송전탑 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분신했던 주민의 두 형제도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숙 이장은 "그 분들은 일가고 이웃에 살고 있다"며 "말을 들어보니까 한전과 주민대표라는 사람들이 밤낮으로 전화를 해서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시달리다 해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종숙 이장은 녹음했던 한 주민과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그 주민은 이장한테 "보상금으로 2200만 원을 준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한전은 마을 개별보상금으로 500만원 안팎을 지급했는데 이 주민은 2200만 원이라고 증언한 것.

   
▲ 한국전력공사가 밀양시 산외면 보라마을 주민들과 송전탑 공사에 합의했다고 발표한 가운데 보라마을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 10일 오후 마을회관에 모여 입장을 발표했다. 이종숙 이장이 한 마을주민과 한 대화 내용을 들려주고 있다. ⓒ윤성효

김응록 산외면대책위원장은 "자의든 타의든 송전탑을 막는 것을 포기한 사람도 있지만, 숫자가 아니라 얼마나 단결해서 최선을 다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지난 해 10월 2일 공권력이 투입된 속에 공사를 벌이면서 주민들은 현장에도 가보지 못하는 상황이 되다보니 '막을 수 없다'거나 '될대로 대라'고 여기는 주민들이 도장을 찍어준 것인데, 이것은 합의가 아니고 '좌절'의 표현이다"고 말했다.

그는 "송전탑을 막아야 한다면서 주민이 분신한 마을인데 앞으로 어떻게 할지 난감하다"며 "현재 9가구가 남았다고 하는데 최후까지 싸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 주민은 "사회 모든 갈등 문제를 개인면담 하면 안 넘어갈 사람이 없다, 한전은 그런 점을 노린 것 같다"며 "오래 전 주민대표라고 하는 사람이 서류를 들고 와서 도장을 찍어달라고 하기에 '우리 마을은 오래 전부터 문제를 공개적으로 토론해서 다수결로 정해왔는데 개별적으로 만나서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더니 '그 말이 맞다'고 하면서 가버렸다, 한참 뒤에 와서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안된다고 하기에 치워버리라고 했다"고 말했다.

"한전 발표는 왜곡"

주민 이상훈(70)씨는 "합의 내용을 보도한 <오마이뉴스> 기사를 보니 한전 설명이 들어 있던데 제가 볼 때 그것은 잘못된 것이고 왜곡이다"며 반박했다.

한전은 '마을이장 제외'하고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이씨는 "주민들은 마을총회에서 이장을 선출했는데, 처음에는 사양하는 것을 애원하듯이 부탁해서 맡게 되었던 것"이라며 "지금까지 송전탑 문제뿐만 아니라 마을 모든 일은 공개되었고, 합의가 되지 않으면 다수결로 결정을 해왔는데, 어떻게 이장도 모르게 할 수 있다는 말이냐"고 따졌다.

이어 "오늘 이 자리도 사전에 주민들한테 방송으로 알렸는데, 합의서에 도장을 찍어준 사람들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며 "한전은 이번 일을 누가 추진했는지, 누가 도장을 찍어주었는지 공개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민대표 5인에 대해, 이씨는 "주민대표를 뽑기 위한 회의도 열리지 않았다, 누가 그 사람들을 주민대표로 뽑았느냐"며 "이번 일로 주민 갈등이 깊은데, 한전이 주민 편 가르기를 하고 있다, 이것이 정부에서 내세우는 법과 원칙이냐"고 말했다.

   
▲ 한국전력공사가 밀양시 산외면 보라마을 주민들과 송전탑 공사에 합의했다고 발표한 가운데, 보라마을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 10일 오후 마을회관에 모여 입장을 발표했다. 사진은 주민 이상훈(74)씨가 "마을에서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 벌어졌다"며 발언하고 있는 모습. ⓒ윤성효

그는 이어 "한전은 전체 39세대라고 하는데 세대수를 파악해 보니 33세대 밖에 되지 않는다"며 "현재 마을에 상주하는 주민은 26세대이고 7세대는 펜션 등을 두고 한 달에 두세번 오는 사람들로 그 분들은 별로 마을 일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주민대표라고 하는 사람들이 떳떳했다면 왜 공개적으로 하지 못하고, 철저하게 비밀공작원이 사람 포섭하듯이 했느냐. 어떤 설명으로도 용납될 수 없다"며 "몇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른 사람들은 다 찍었고 내만 안 찍었다고 해서 도장을 찍어주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번 사태로 주민들 간에 골이 깊어졌다, 배신자라는 소리까지 나온다"며 "산으로 가든 바다로 가든 주민 전체가 공개적이고 떳떳하게 결정했어야 할 일을 골만 깊게 만든 결과를 정부와 한전은 어떻게 설명을 할 것이냐"고 따졌다.

또 한 주민은 "송전탑 막아내기 위해 진짜 열심히 싸운 사람들은 그대로 있는데, 잘 나오지도 않던 사람들이 돈은 먼저 받아간 꼴"이라며 "우리는 돈 많이 받자고 싸운 게 아니다. 이제 몇 안되는 주민이지만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마을사람들은 2012년 1월 16일, 그 날을 잊은 적 없다"

보라마을 이종숙 이장을 비롯한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성명서를 통해 "2012년 1월 16일, 우리 마을 앞 논 102번 철탑 부지로 용역 깡패들이 들어온 날 이장을 지낸 노인이 분신했다"며 "마을사람들은 하루도 그 날을 잊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주민들은 "지금까지 우리는 서울에 누가 올라갈지, 농성장 당번은 누가 설지 아주 작은 일까지 마을 주민 총회를 통해 결정해 왔다, 그것이 마을 전통이다"며 "그런데 다른 일도 아니고 송전탑 보상 합의라는 엄청난 일을 유일하게 협상권한을 위임한 마을이장은 물론이거니와 부녀회장, 개발위원도 모르게 합의하는 경우가 어디 있나"고 밝혔다.

   
▲ 한국전력공사가 밀양시 산외면 보라마을 주민들과 송전탑 공사에 합의했다고 발표한 가운데, 보라마을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 10일 오후 마을회관에 모여 입장을 발표했다. ⓒ윤성효

또 주민들은 "분명 '애초에 이야기된 500만 원에서 두 배를 더 올리겠다' '누구는 4배인 2000만 원을 받기로 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결국 실제 입금은 2000만 원도, 1000만 원도 아닌 500만 원이 들어와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있는 주민들이 있다"며 "우리는 돈을 더 받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든 온 힘을 다해 마지막까지 진실을 위해 싸우고 버티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자리를 함께 한 대책위 대표인 김준한 신부는 "한전이 막장으로 가고 있다. 지금까지 송전탑 경과지 마을 주민들은 총회를 열어 대표자를 뽑고 대화도 해왔다"며 "자기들 마음대로, 법과 원칙도 없이 하는 것은 우리가 잘 싸우고 있다는 증거"고 말했다.

   
▲ 밀양 산외면 보라마을 입구에 송전탑 공사 반대 펼침막이 내걸려 있다. ⓒ윤성효

<기사 제휴 / 오마이뉴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