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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희망을 건져 올리는 사람들[병자의 날 기획 1] 환자들과 원목봉사자를 만나다

간간히 울리는 전화벨 소리가 정적을 깨는 유일한 소음일 정도로 적막한 일산 백병원 7층 신경외과 병동. 복도 끝 6인실에 입원 중인 김진수(가명, 루카) 씨는 2주일째 계속 누워만 있었다. 마비된 하반신에 욕창이 생겼기 때문이다. 진수 씨는 작년 11월 추락사고로 척추 신경이 심하게 손상됐다. 욕창이 나을 때까지는 재활치료도 어렵다 했다.

그런 진수 씨를 찾아온 건 백병원 천주교 원목봉사자 신화수 씨다. 2주 전 진수 씨가 세례를 받던 날 찍은 사진을 현상해온 신 씨는 사진을 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두 사람 모두 편한 표정이다. 진수 씨는 “그나마 지금은 여유가 좀 생겼다”고 말했다.

“하반신 마비라니,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요. 그저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왔을 뿐인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도 모르겠고,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죽고 싶었죠.”

   
▲ 일산 백병원 원목봉사자 신화수 씨가 병실에서 환우의 손을 잡고 기도하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진수 씨가 병원 중환자실에 도착한 날, 천주교 신자였던 그의 부인은 원목실을 찾아가 기도를 부탁했다. 당시 원목실을 지키던 신화수 씨가 진수 씨를 방문했고, 이후 꾸준히 그의 곁에서 기도와 대화를 이어갔다.

“많이 나아졌어요. 옆자리 DMB 소리에도 몸서리칠 만큼 예민했었죠. 이젠 침대 커튼도 막 열어놓고 지내시네요. 얼굴 표정도 많이 편해졌고.”

원목봉사자에게 쏟아내는 마음의 응어리…가족들도 위로 필요해

신화수 씨는 일산 백병원이 생긴 2008년 원목봉사를 시작했다. 당시에는 일주일에 한 번, 환우들을 위한 병원 미사를 돕는 역할이었다. 그러면서 환자 파악을 돕기 위해 입원실을 돌기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힘들었어요. 낯선 사람에게 찾아가 말 붙이는 것도 그렇지만, 병원 관계자나 환자 보호자들이 잡상인 취급하면서 제재를 가할 때도 있었거든요. 원목실이 생긴 건 2012년이라 그 전에는 정말 그냥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이었다고나 할까요.”

교우회나 간호사실과 인사를 나누면서 꾸준히 환자들을 찾아가자, 서서히 원목봉사자들의 존재와 역할이 병원에 인식되기 시작했다. 환자들은 봉사자들에게 마음 속 응어리를 쏟아내기도 했다.

환자들은 가까운 이들에게는 차마 하기 힘든 이야기가 많았다. 갑자기 찾아온 병으로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무너질 것만 같은 두려움도,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의 극심한 고통도 가족에게는 털어놓기 어려웠다.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든든한 사람은 보호자인 가족들에게도 필요했다. 봉사자들은 기꺼이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되어 주었다. 판단하지 않고, 공감해 주면서.

임상사목교육 받으며 자기 자신 발견해
“환우들 공감하려면 나를 더 잘 알아야 해요”

하지만 늘 듣기만 하는 사람이 되는 건, 그것도 몸과 마음이 모두 약해진 이들의 지지가가 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봉사자들이 지치지 않고 환우들을 만날 수 있었던 데에는 교육의 도움이 컸다. 봉사자들이 봉사를 시작하며 서울대교구 일반병원사목부의 원목봉사자 교육을 받았다. 한 회기에 4주씩 3차례, 총 12회의 교육에서 봉사자들은 환자에 대한 이해와 원목봉사자가 갖춰야할 기본 자질이 무엇인지 배웠다.

여기서 나아가 백병원 원목봉사자 7명은 모두 임상사목교육(CPE, Clinical Pastoral Education)을 받았다. 임상사목교육은 상처 입은 환우와 가족의 내면 치유와 영적인 돌봄을 체계적으로 배우는 전문가 양성 과정이다. 봉사자들은 일주일에 한 번 환우들과의 대화를 세밀히 기록해 그룹별로 케이스 스터디를 한다. 그룹원들은 서로 배우고 가르치며 자신이 환우들과 관계 맺는 방식을 깨닫고 나아가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환자의 두려움과 아픔을 잘 받아 안으려면 먼저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해요. 원목봉사자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자기 안의 불편함을 환우에게 전이시키지 않고, 방어하지 않으면서 아픈 분들을 수용할 수 있어요. 신뢰감도 중요하죠. 환우가 믿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만큼 진실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분들이 말한 사생활의 비밀을 지켜주어야 하니까요.”

3년째 원목봉사를 해온 이혜숙 씨는 “오히려 교육을 받고 난 지금이 더 어렵다”고 말했다.

“교육을 받기 전에 나눈 대화는 그저 일상적이고 사적이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환우들 만나는 마음가짐도 달라졌고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끊임없이 돌아보게 돼요. 만남과 대화에 깊이가 생겨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해요.”

   
▲ 일산 백병원 원목봉사자 신화수 씨(왼쪽)와 이혜숙 씨 ⓒ문양효숙 기자

“이 고통은 내 죄 때문이야”…죄책감에 대한 환자들의 성찰 도와야
큰 병에 걸린 환우일수록 지금 겪는 고통의 의미를 찾고자 해

누군들 병을 예상할 수 있을까. 자신의 몸에 닥칠 고통을 준비할 수 있었을까. 밥을 먹고 화장실에 가고 친구를 만나는 일상이, 지금까지 당연하게 가능했던 모든 것이 불가능해졌을 때, 그것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병에서 오는 신체적 고통은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고통스럽게 했다. 좌절에 직면한 환우들은 처음에는 당황하고 좌절하다가 ‘대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를 물었다. 그리고 많은 이가 고통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았다. 병은 자신의 죄에 대한 벌이었다.

신화수 씨는 “하느님은 벌을 주시는 분이 아니신데, 병원에 오면 무언가를 잘못해서 그렇게 된 거라고 생각한다”며 “더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아픈 몸에 죄책감이 더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백병원 원목사제인 현우석 신부는 “큰 병에 걸린 환우일수록 지금 겪는 고통의 의미를 찾고 싶어 한다”며 “삶을 해석하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다.

삶을 해석하고 싶은 마음은 때로 삶을 성찰하게 만들기도 했다. 현우석 신부는 “몸에 힘이 빠지고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태가 자기 성찰을 불러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환우들은 누워있는 시간이 많고 외부와의 접촉도 쉽지 않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생각이 많아지는 공간이었다. 그중 가족과의 관계에 대한 것은 더 특별했다.

금융업에 종사했던 김진수 씨도 “절대 예전처럼은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미친 듯이 일만 했어요. 가족이나 아이들과의 시간은 거의 없었죠. 잘 해보려고 달려온 건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몸은 완전히 바닥을 쳤고 아이들과는 오히려 멀어졌어요. 아직은 방법도 잘 모르겠고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다른 삶을 살고 싶어요.”

환우와 가족들 사이에 화해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가족은 대신해줄 수 없는 고통에 애가 타기도 했지만 때로는 싸우고 갈등했다. 원래 관계가 좋지 않았던 배우자나 관계가 소원했던 부모를 간호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갈등을 해결하기에 한쪽은 이미 너무 쇠약해져 있었고 전적으로 다른 한쪽을 의지했다. 보호자인 가족은 책임감을 떨쳐버릴 수도, 도망갈 곳도 없었다. 원망과 미안함이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원목봉사자들은 환자와 가족들 사이에 소통을 돕고 숨 쉴 틈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환우들은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요. 그런데 표현을 못해요. 저희는 ‘지금이라도 돌아볼 수 있고, 지금이라도 용서를 구할 수 있으니 다행이지 않냐’ 말씀드려요. 가족을 ‘내 옆에 당연히 있어줘야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있어줘서 감사한 존재’로 여겨야 해요.”

   
▲ 현우석 신부가 환자를 방문해 병자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신앙은 희망의 다른 이름…“기도는 위로이며 힘이다”

입원실 환우들은 한결같이 ‘희망’을 보고 싶어 했다. 나을 수 있다는 희망, 건강해져서 일상을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이들에게 신앙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우석 신부는 환우들이 “하느님의 부재를 경험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내가 이렇게 기도하는데 왜 들어주시지 않는가’, ‘이렇게 아프고 고통스러운데 왜 대답해주지 않는가’ 하는 절망의 시간을 거쳐요. 믿음이 흔들리기도 하죠. 게다가 몸이 아프면 마음의 여유도 줄어서 기도도 잘 안 되거든요. 그러니 누군가 옆에서 함께 기도해주는 게 좋아요.”

오후 5시 30분, 병원의 저녁 식사 시간이다. 현우석 신부가 방문할 이들의 명단을 들고 병실을 찾아간다. 명단에는 신자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다. 누구에게든 사제의 방문은 반갑다. 10층 내과병동에서 79세 박우현(가명) 씨는 신자가 아니다. 거동이 불편한 그는 현 신부가 기도를 시작하자 쑥스러운 듯 앉아 있다가 이내 자연스럽게 눈을 감는다. 기도를 마친 현 신부가 “더 좋아지시길 바란다”고 말하자 환자와 가족의 얼굴에 편안한 기운이 감돈다. 병실에서의 기도는 위로와 희망이고, 동시에 사랑이기도 했다. 현 신부는 “병원에서는 여러 가지 면에서 기도의 힘이 정말 크다”며 “병원사목에서는 ‘공감하면서 귀 기울여 잘 들어주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과 ‘기도의 힘’을 잊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8살 차현우(가명, 안드레아) 군은 신경외과 병동의 행복 바이러스다. 진수 씨가 세례를 받던 날 부모님과 함께 와 진수 씨를 축하하고, 병실에 온 이틀째 되던 날 환자 한 명 한 명의 손을 잡으며 “어서 나아서 집에 가야죠”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우 군은 3달 전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온 버스에 치여 머리를 다쳤다. 주변에서는 처음 현우 군이 병원에 왔을 때에는 몸도 가누지 못하고 사람도 알아보지 못했다며 ‘기적’이라 했다. 혼자서 저녁 식사로 나온 오므라이스를 씩씩하게 먹던 현우 군은 현 신부가 오자 주님의 기도를 따라 하고 성호를 긋는다. 같은 병실 환자들은 그런 현우 군을 보면서 잃었던 일상의 웃음을 찾기도, 알 수 없는 ‘희망’을 느끼기도 했다.

고통에서 희망이 시작될 수 있기를, 그 길에 동행하고 싶다

예수께서 병자들을 향한 연민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그들의 몸을 어루만져 고치셨던 것은 병자들이 누구보다 삶의 끝자락에 있는 이들임을, 몸을 입은 인간으로서 어찌할 수 없는 고통을 그대로 겪어내고 있는 이들임을 깊이 통감하고 계셨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고통은 그저 고통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비록 고통 속에 있는 인간이 그 신비를 모두 알 수는 없을지라도, 모든 것이 멈춘 것만 같은 지점에서 때로는 진짜 삶이, 희망이, 기적이 시작되기도 한다.

백병원 원목봉사자들은 입을 모아 “그 여정에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병원에서의 시간이 당장은 고통일지 모르지만 새로운 화해나 희망이 생기는 시간이기도 하거든요. 미흡하지만 그런 길을 저희가 도울 수 있다면 좋겠어요. 저희가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낼 수 있기를 늘 기도하고요. 몸의 고통은 의사가 고치지만 영적인 치료는 사목자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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