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식의 삶과 노래]

 

  

세계적인 경제 불황의 쓰나미에 휩쓸려 IMF 때보다 더 힘들다고 하는 요즘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돈은 무엇일까? 지난 주말 방영된 특집방송의 내용이다. ‘젊은 사람은 돈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더 나이를

먹게 되면 돈이 전부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라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이 시대를 사는 한국인들은 행복의 제1조건으로 주저하지 않고 돈을 꼽는다. 방송은 여러 계층의 사람들과의 인터뷰와 직접취재를 통해서 이런 내용을 실감나게 전해주었다. 다단계부터 혼테크(결혼을 잘 활용함으로써 최대한의 이익을 내는 일), 10억 만들기 열풍까지 시대별 돈 모으기 풍속도는 그 방법도 기상천외에 가깝다.

일찍부터 돈에 눈을 떠 동급생들에게 사채놀이를 하고 있다는 한 초등학생, 460만 원 때문에 주유소를 습격 한 네 명의 고등학생, 어떻게든 로또 1등이 되어야 끝

난다며 로또가 직업이 된 로또연구자, 고급 외제차로 명품관을 드나들면서도 돈 없다며 세금을 내지 않는 이 시대의 가난한(?) 부자들과 고급 빌라에 거주하면서 ‘우리 아버지가 서울시 체납자 1위’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10년째 노는 아들의 사례를 보았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통해, 돈에 대한 무한신뢰와 집착의 끝이 어디인지를 짚어볼 수 있었다.  

반면 중학교 때 훔쳐 먹은 소보루빵 값으로 천만 원을 낸 사람과, 돈이 없어 수술비를 내지 못하고 도주했다가 수십 년이 지난 후에 양심의 몫까지 더하여 갚았다는 따뜻한 얘기들도 있었다. 1주일 파지를 주워 모아야 만 원을 번다는 할머니는 아들이 떼먹은 병원치료비를 갚기 위해 50만 원을 모아 병원을 찾았다. 그런가 하면 ‘돈은 사람(이웃)과의 관계다’라고 말하며 돈 대신 이웃과의 관계를 찾아 나선 지역화폐 운영자들의 얘기는 한여름더위 속에서 만나는 시원한 바람 한줄기였다. ‘600가구의 혁명’을 일구어낸 사람들은 ‘이자를 낳지 않는 돈’이라는 이 지역화폐는 필요할 때마다 찍기 때문에 부족하게 되는 일도 없다고 말한다. 죽도록 내 돈을 벌어서 나 혼자 살아가려는 생각을 버리고, 기쁨을 잃지 않은 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서, 가난하더라도 이웃과 함께 살아갈 마음만 있으면 돈을 극복할 출구가 영 없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많은 사례 중에서 가장 내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은 시간이 없어 컵라면을 먹으며 쉴 새 없이 주식을 사고파는 억만장자의 삶의 모습이었다. 어둑하고 좁은 사무실에 매일 붙어 앉아 여러 대의 모니터에서 잠시도 눈길을 떼지 못한 채 삶의 모든 것을 맡긴 대가로 이미 수십억을 벌어 모았지만, 아직도 매일 그 일에 묶여 힘들어 하는 이유를 묻자 ‘시장이 거기 있기 때문이고, 돈이란 벌 수 있을 때까지 벌어야 되는 것 아니냐?’ 라고 답했다.

슬로우 라이프에 관한 얘기 하나가 생각난다. 한 젊은이가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서 쉬고 있는데, 지나가다 그 모습을 본 노인이 말을 걸었다.
“훌륭한 젊은이란 게 뭐겠어, 어서 벌떡 일어나서 계속 열심히 일을 하라구, 일을!”
“계속 일만 하면 어찌 되는데요?”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고 부자가 될 수 있지.”
“부자가 되면 어찌 되는데요?”
“부자가 되면 쉬면서 지낼 수 있지.”
“지금 제가 뭐하는 걸로 보이세요?”

지난해 연말에 미국의 부시행정부가 통화량을 늘리기 위해 달러를 다시 찍는다는 보도를 접했기에 우연히 만난 후배인 신부에게 말을 걸었다.
“달러를 자꾸 찍어내서 어떻게 되려고 그러지? 가뜩이나 해결책이 없어 끝이 안 보이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는 금융위기에 그런 식으로 막수를 둘까? 사실은 지금의 어려움도,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 달리 방법이 없다는 이유로 계속 달러통화량을 늘렸기 때문에 생겨난 당연한 결과라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잖아. 미국의 평화학자들 얘기로는 2020년이면 미합중국이 필연적으로 붕괴하게 되어 있다던데 더욱 앞당겨지는 거 아냐? 원래는 2025년이라고 예견되었는데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침공을 하는 바람에 5년이 앞당겨 진거라고 했거든.”
“부시 형님이 언 발에 오줌 누고 계시는 거지요.”

스스로 자초하였고, 그래서 필연적으로 붕괴해가는 일을 막을 수 없기에 막수를 두는 사람이나, ‘돈이 저기 있기에 그저 벌어들일 수밖에 없다’며 삶의 모든 것을 돈 버는 일에 올인 하는 사람이나, 언 발에 오줌 누고 있기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얼어올 것을 빤히 알면서도, 지금 시린 발에 더운 오줌발을 쏟아 붇기보다, 쉽지는 않겠지만 다른 방법은 없는지도 한 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이것저것 가릴 여유 없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해야 먹고사는 사람들의 입장이나, 주어진 재물로 편히 놀고 먹기보다는 땀 흘려 노동을 하는 대가로 기쁨을 얻고 싶은 생태적인 삶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얘기이다. 이미 쓰고 남을 만큼 충분하게 벌었는데도 벌 수만 있다면 더 벌어들이기 위해 물불 안 가리고 정신과 육체를 학대한다거나, 더 나아가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해치기까지 해야 한다면 한 번쯤 멈춰서 생각해보자.

돈은 대체 무엇인가?
돈이 우리에게 가하는 무차별 횡포를 그저 당하고 있어야만 하는가?
그렇게 모든 것을 바쳐 죽도록 벌어대는 돈을 어딘가 에서는 맘만 먹으면 콩콩 찍어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적은 없는가?
삶의 가치를 물질이 아닌 영적인 곳에 두고 살 수는 없는가?


새해가 온 지도 두 주일이 지났고, 21세기가 시작 된 지도 어언 10년이 되어간다. 2020년이면 미합중국이 붕괴된다고 하고, 2050년이면 평균수명이 150살이 되며, 저출산국가인 우리나라는 출산율이 지금보다 높아지지 않는다면 300년 후 인구 제로가 되어 없어지는 국가가 된다고 한다. 옥스포드 인구연구소 인구전문가인 데이빗 콜만 박사가 영국정부의 지원을 받아 2006년 발표한 '코리아 신드롬'이라는 보고서에서, 한국은 저촐산 고령화로 사라지는 세계 최초의 나라가 될 것이라는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이렇게 급변해가는 세상을 바라보면서 코 앞 만이 아니라 좀 더 멀리 내다보는 삶을 살 일이다. 그 자리에 선 채 언 발을 녹이기 위해 오줌을 누기보다, 할 수만 있다면 몸과 마음을 움직여 보자. 발을 녹일만한 따뜻한 곳은 없는지, 처음부터 얼지 않게 할 방법은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깨달음의 삶을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돈에 매이지 않기 위해 돈을 번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는 데 어려움이 없는데도 돈 버는 일에만 혈안이 된다면, 다시 돈 버는 일에 매이게 된다. 시작과 끝이 꼬인 채 연결 되어 영원히 끝나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혹은 다람쥐가 쳇바퀴를 도는 것처럼. 성경에서는 하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거나 재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권고하고 있지만, 더욱 가슴에 와 닿는 말이 있다.

돈은 똥이다.
쌓이면 악취를 풍기지만
흩어지면 땅을 비옥하게 한다.

2009년 1월 15일

(*모든 사진은 인터넷 검색에서 퍼온 것임)

 

김정식/가수 겸 작곡가로 생활성가의 개척자이며, 파리국립음악원에서 그레고리안과 지휘법을 공부하였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돕기위한 자선음악회와 환경보전과 인권회복을 위한 사회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으며 어린이들을 위한 노래와 예술가요 및 연주곡 등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만들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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