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새벽> 출간 30주년…티베트에서 인디아까지 ‘다른 길’ 사진전

▲ 인디아: 인디고 블루 하우스 (사진 제공 / 나눔문화)

<노동의 새벽> 출간 30주년을 맞이해 박노해의 사진전 <다른 길―티베트에서 인디아까지>가 2월 5일부터 3월 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개최된다. 박노해는 지난 3년간 아시아 전역에서 촬영한 7만 컷의 흑백필름 사진 중 엄선된 120여 점의 작품을 전시한다.

5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전시회 기획자인 이기명 대표는 박노해 사진의 특징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먼저 박노해는 줌렌즈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줌렌즈를 사용하는 작가는 피사체를 제 편의대로 끌어당기거나 밀어낸다. 철저히 작가 중심의 촬영 방법이다. 그러나 박노해처럼 단렌즈를 사용하면, 피사체를 자세히 보기 위해 작가가 그에게 직접 다가가야 하며, 배경을 함께 담고 싶으면 작가 자신이 뒤로 물러서야 한다. 피사체 중심의 촬영법이다. 타자를 배려하고 친밀감을 느끼고 응대하는 방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또한 박노해는 디지털을 거부하고 필름카메라를 사용함으로써 사진을 찍을 때마다 최선을 다해 한 컷 한 컷 찍어나간다. 인생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 박노해 (사진 제공 / 나눔문화)

박노해는 <노동의 새벽>을 통해 1980년대 권위주의 시대에는 민주투사이자 저항의 상징이었다.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결성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참혹한 고문 끝에 사형을 구형 받고 무기수가 되어 7년여를 감옥에 갇혀 있었다. 민주화 이후 석방되고 나서는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며 “권력과 정치의 길을 거부하고 스스로 잊혀지는 길을 택했다”고 박노해는 말한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박노해는 ‘실패한 혁명가’로서 “나는 슬프게도, 길을 잃어버렸다”고 말하며, 지난 15년 동안 ‘지구시대 유랑자’로 살면서 글로 마저 담을 수 없었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매체로 사진을 만났다. 그리고 세계의 내전지역과 오지를 넘나들면서 문명의 문제를 고민했다.

박노해는 우리 시대를 ‘비즈니스 문명의 시대’라고 말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삶의 모든 것을 ‘사고파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엄마 뱃속의 태아부터 가정, 학교, 종교, 사랑과 결혼, 우정, 인문학, 개성, 나의 내면까지 시장이 들어선 시대라 했다. 내 노동을 상품으로 파는 급여노동 상품 인간이 되어야만, 그래서 화폐로 모든 것을 구입해야만 먹고살 수 있는 ‘근원적 독점’ 시스템이 전지구적으로 체계화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어떤 시대보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었음에도 그 어떤 시대보다 지식과 정보가 내 손바닥 안에 들어와 있음에도 ‘살아가는’ 능력이 사라지고 ‘사는’ 능력만이 남아있자, 모든 것이 불안과 공포가 되었다”고 박노해는 말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이지만 가장 인간성이 쇠약해진 시대. 가장 지식이 많고 똑똑해진 시대이지만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시대. 가장 개인 자유와 권리가 많은 시대이지만 가장 무기력한 인간의 시대. 가장 편리한 첨단 기계 시대이지만 일자리마저 사라지는 시대. 가장 수명이 길어진 시대이지만 가장 외롭고 불안한 노후의 시대. 가장 세계와 연결된 시대이지만 정작 나 자신과는 가장 멀어진 시대.”

박노해는 이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보 · 보수의 이념과 진영 대립을 넘어서 문명전환의 ‘다른 길’을 사진과 짧은 경구 같은 글을 통해 제안한다. 이것을 “삶으로부터 시작된 혁명”이라 불렀다. 그는 사진을 찍으며 “무엇이 좋은 삶인가”, “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얻고자 했으며, 결국 아시아 토박이들을 통해 “진정한 나를 찾아 사는 것, 대지에 뿌리박고 자급자족하는 좋은 삶을 사는 것, 우애와 아름다움을 누리며 사는 것”의 중요성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 화산의 선물 (사진 제공 / 나눔문화)

박노해의 사진전은 ‘아시아의 토박이들’을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를 구원할 주체”로 호명한다. 박노해가 발견한 아시아의 정신과 삶은 ‘순환’, ‘순수’, ‘순명’이었다. 박노해는 기자간담회 강연에서 “아시아는 앞에서 읽어도 뒤에서 읽어도 똑같이 읽히는 ‘동그라미’”라고 말했다. 서구는 발전을 직선으로 인식하지만, 아시아의 사유 방식은 ‘순환’이라는 것이다.

“사진 속 몽골 초원의 여인은 말한다. 누구든 한 자리에 오래 머물면 이 초원은 황폐한 사막이 되고 말지요. 우리 모두는 영원한 거처를 지은 자가 아니라 이 땅에 한 시절 천막을 친 자이니까요.”

아시아에서 땅에 뿌리박고 살아온 토박이들은 “욕망은 끝이 없지만, 우리 삶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이만하면 넉넉하다”고 말한다.

박노해는 공식 지도에는 나오지 않는 지상의 가장 멀고 높고 깊은 마을과 사람들 속으로 걸어가, 70억 인류 중에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실제로 살고 있는 토박이의 삶과 일상과 대지의 노동을 사진으로 담아왔다. 그들은 우리의 눈에서 ‘사라진 사람들’이지만, 인류를 먹여 살릴 한 뼘의 대지를 늘려가는 전통마을 토박이들이다. ‘어찌할 수 없음’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어찌할 수 있음’은 최선을 다해 가면서, 우리 삶은 ‘이만하면 넉넉하다’고 서로 기대어 사는 사람들이다. 박노해는 “이들이야말로 그 누구보다 이 세상 깊숙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삶의 전위’”라고 말한다. 그들은 시장 만능의 산업기술 체제와 화폐원리주의 생활방식 속에서 “똑같은 길로만 질주하며 위기에 빠진 우리에게 ‘다른 길’이 있음을 가리키는 길라잡이가 되어준다”고 말한다.

▲ ‘티베트: 남김없이 피고 지고’. 이 사진은 박노해가 가장 추천하는 사진으로, 사진 에세이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야크 젖을 짜던 스무살 엄마가 아이에게 젖을 먹이러 천막집으로 들어간다. ‘나는 이 지상에서 잠시 천막을 친 자이지요. 이 초원의 꽃들처럼 남김없이 피고 지기를 바래요. 내가 떠난 자리에는 다시 새 풀이 돋아나고 새로운 태양이 빛나고 아이들이 태어나겠지요.’ 충만한 삶이란, 축적이 아닌 소멸에서 오는 것이 아니던가. 우리의 삶의 목적은 선물 받은 하루하루를 남김없이 불살라 빛과 사랑으로 생의 도약을 이루는 것이 아니던가.” (사진 제공 / 나눔문화)

인도네시아의 가파른 비탈 밭, 라당을 일구는 여인은 박노해에게 자신의 아이가 농부가 되기를 바란다며 “밭을 밟고 오르며 농사짓는 건 몸이 좀 힘들 뿐이지만 남을 밟고 오르는 괴로움을 안고 살아갈 수는 없지요. 늘 마음의 평화를 누리며 살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박노해는 이런 여인들의 삶을 ‘위대한 일상’이라 부르고, 그 헌신과 고결함을 사진으로 한 장 한 장 포착해내고 있다. “역사상 가장 풍요롭고 똑똑하고 편리해진 시대에 스스로 할 수 있는 인간 능력을 잃어버리고 모든 걸 돈으로 살 수밖에 없는 무력해진 세계에서, 그들은 내 안에 처음부터 있었지만 어느 순간 잃어버린 나 자신의 모습”이라고 박노해는 말한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