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모 신부, 씨알재단 강좌에서 유영모의 그리스도론 다뤄


‘맨발의 성자’ 로 알려진 이현필 선생이 활동한 광주 동광원에서 설교를 하고 있는 다석 유영모 선생



"사람을 숭배해서는 하여서는 안 된다. 그 앞에 절을 할 분은 참되신 한아님(하나님)뿐이다. 종교는 사람 숭배하는 것이 아니다. 한아님을 바로 한아님으로 깨닫지 못하니까 사람더러 한아님 돼달라는 게 사람을 숭배하는 이유다. 예수를 한아님 자리에 올려놓은 것도 이 때문이고 가톨릭이 마리아를 숭배하는 것도 이 까닭이다." (<씨알의 메아리 예수어록>, 278쪽)

"그런데 예수만 '외아들'입니까? 하나님의 씨를 타고나(요한 1서 3장 9절), 로고스 성령이 '나'라는 것을 깨닫고 아는 사람은 다 하느님의 독생자(獨生子)입니다…내가 독생자, 로고스, 하느님의 씨라는 것을 알면, 그러니까 이것에 매달려 줄곧 위로 올라가면, 내가 하늘로 가는지 하늘이 나에게 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하늘나라가 가까워집니다. 영생을 얻는 것이 됩니다. 사람마다 이것을 깨달으면 이 세상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습니다. 영원을 영(靈)으로 보면 참사랑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다석일지 848-849쪽)

정통기독교인들이 들으면 당장 이단이라고 비난할 이 글들은 다석 유영모 선생(1890 ~ 1981)이 <다석일지>(홍익제, 1990년), <다석일기>(현암사, 2006년) 등에 남긴 것인데 그의 예수 그리스도론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다석 유영모의 '그리스도론'에 대해 정양모 신부(다석학회 회장, 전 서강대 종교신학 교수)는 지난 11일 씨알재단 월례강좌에서 "(다석은) 서방의 지극히 사변적인 예수 신성교리와 예수가 (신이자 인간이라는) 양성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너무도 존경하고 사랑한 나머지 그를 신으로 추대했겠지만 다석은 지나친 공경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리스도인 절대 다수는 다석의 이처럼 대담한 예수 이해를 받아들이지 않겠지만 앞으로 세계 신학계와 종교학계는 그에게 주목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스도에 대한 혁명적 해석을 시도한 다석 유영모 선생은 그의 제자 함석헌이나 유달영에 비해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서양철학의 식민지인 한국 철학계에 우리말과 글로 철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선각자 중에 한 사람이다. 유불선(儒彿仙)에 기반을 두고 서구 기독교사상을 독자적으로 해석한 그의 철학적 업적은 2008년 7월 말 서울대에서 열린 세계철학대회에서 주목받았고 한국철학회도 별도의 분과를 두고 연구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예수의 인성에 주목한 역사적 예수 연구 활발

근래 들어 서구 신학계도 다석 유영모의 기독론과 유사하게 인간 예수(역사적 예수)에 주목하는 연구들이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역사적 예수' 연구는 자유주의 신학이 유행하던 19세기 말 20세기 초 활발하게 진행되었다가 1990년대 중반 미국을 중심으로 부활하기 시작했다. 역사적 예수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예수는 거룩한 곳에 앉아 사람을 심판하는 냉혹한 신에서 인간과 삶을 같이 나누는 따뜻한 심장을 가진 인간으로 복권되는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역사적 예수 연구를 통해 현대인들은 예수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예수와 제국>의 저자 리차드 호슬리는 예수를 이스라엘 북부 갈릴래아를 주 무대로 당시 사회모순을 극복하려고 했던 농민출신 메시야 운동가이자 새로운 사회비전을 제시하려 했던 예언자로 살다 정치범으로 십자가에서 처형된 것으로 그리고 있다.

마커스 보그는 그의 책 <예수의 의미>를 통해 예수는 세례요한의 영향을 받아 하느님과의 깊은 관계 속에 당시의 인습적 관습에 도전하는 지혜를 가르쳤고 구약의 예언자처럼 사회정의를 외친 예언가로 묘사하고 있다. 그는 또 예수가 당시사회를 넘어서는 새로운 유대사회 회복을 추구했던 선구자라고 말하고 있다.

<역사적 예수>를 쓴 도미니크 크로산은 문화인류학, 그리스·로마 역사와 유대역사, 문서비평, 본문비평 등 다양한 학제간 연구를 통해 역사적 예수의 실체를 복원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예수가 농민출신 견유철학자로 묵시적 예언자였던 요한과는 달리 현실 속에서 하느님나라를 건설하려고 노력했다면서 예수는 당시 정결법체계에서 벗어난 병자, 세리, 창녀, 장애인들과 식탁에서 함께 어울린 평등주의자였지만 사회혁명가는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이보다 앞서 1970년대 박정희 유신체제를 경험했던 민중신학자 안병무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철저히 압박당하고 소외된 계층이었고 예수는 당시의 정치사회적 현실을 변혁하고자 했다고 말한다. 예수의 제자들 역시 예수를 자신들과 별개의 존재로 여기지 않고 그의 운동에 역동적으로 동참했으며, 그리스도교는 예수와 예수의 제자들이 함께 이룬 사회변혁운동으로부터 출발했다고 말한다.

325년 니케아공의회, 예수의 신성과 인성문제로 분열

역사적 예수 연구와 더불어 예수가 어떻게 신이 되었으며 그것이 가진 의미는 무엇인지를 규명한 책도 출간되었다. 리차드 루벤슈타인은 <예수는 어떻게 하나님이 되셨는가>(한국기독교연구소, 2004년)에서 324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가 회의에 참석한 250여명의 주교들에게 압력을 넣어 강제로 신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당시 공의회에서 예수의 신성문제와 관련해 두 개의 안이 올라왔는데 예수가 신과 동일본질이라는 아타나시우스의 주장과 예수는 위대한 존재이기는 하지만 신은 아니라는 아리우스의 주장이 대립했다.

아리우스는 예수가 하느님의 뜻을 철저하게 따른 인간으로 가장 높은 경지에 오른 존재였기 때문에 하느님이 그를 자신의 아들로 입양해 속죄양으로 삼았다는 이른바 '양자론'을 펼쳤다. 그는 예수가 하느님보다는 낮은 존재이지만 그의 사명과 도덕적 자질로 볼 때 인간의 구원자이자 위대한 존재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다른 인간도 인간예수를 따르면 동일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아리우스는 하느님은 태어남도 시작도 없이 존재하시는 유일한 분이시지만 예수는 탁월하기는 해도 피조물 중 하나이지 결코 하느님과 같지는 않다는 주장을 했다. 예수에게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호칭을 쓰는 것도 성부와 성자가 동일한 존재나 지위를 공유한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은유로서, 그를 공경하기 위한 일종의 문학적 수사로 생각했다. 아리우스는 결국 예수는 단지 하느님이 아니고 피조물이며 "성자가 존재하지 않은 때가 있었다"는 입장에 도달했다.

이에 대해 아타나시우스는 예수는 우주의 창조자인 하느님이 인간이 되는 것은 굴욕적이지만 그것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이를 선택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유혹에 빠지기 쉽고 불완전한 인간이 인간을 구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의 논쟁은 콘스탄티누스의 지원을 받은 아타나시우스의 승리로 끝났고, 이때부터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신성을 공식화했고 아리우스는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유배당했다.

로마제국, 인간 예수를 섬기는 것은 정치·종교적 위험하다고 판단

루벤슈타인은 콘스탄티누스가 예수를 신으로 만든 것은 인간예수를 섬기는 것이 정치적으로 위험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사람들이 예수의 인성을 강조하면 예수는 단순히 예배대상이 아니라 삶의 모범으로써 스승이자 친구가 될 수 있고 궁극적으로 자신의 노력여하에 따라 같은 경지에 오를 수도 있는 것이다. 역으로 로마제국의 입장에서 정치범이었던 예수가 사람들의 모범이 된다면 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대로 예수를 신으로 격상시키면 신앙의 대상, 예배의 대상이 되면서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없는 무능한 존재가 된다. 결과적으로 일상에서는 황제(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고 종교적으로는 신의 대리자 역할을 자처하는 성직자들에게 의존하게 된다. 일반 신도들 역시 하늘 보좌에 오른 예수가 대신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에 자신들은 용서받았고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얻는 것이기에 예수처럼 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

물론 예수를 신격화하면서 얻는 장점도 있다. 예수가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부활함으로써 원죄와 죽음의 불안으로부터 해방되고 부와 영생, 건강을 기원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신앙은 로마의 다른 신이었던 미트라나 주피터를 통해서도 얻을 수 있는 것이기에 결국 정치와 종교적 이유로 예수를 다른 신들과 맞바꾼 것이나 다름없다. 

아타나시우스 등이 예수를 신격화한 것은 서기 1세기 말에서 2세기 초에 작성된 요한계 문서(요한복음, 요한 1,2,3서)를 참조한 것이다. 역사적 예수에 근접했던 공관복음서(마가, 마태, 누가)와 복음서 이전의 바울서신에서는 예수를 하느님과 동일 인격체로 묘사하지 않았다.

요한계 문서가 예수를 신으로 묘사한 것은 그리스도교가 지중해 세계로 영역을 넓혀가면서 아우구스투스이후 신으로 승격된 로마황제, 제국 내 다른 유력신들, 이미 예수를 신격화시켰던 그노시즘(영지주의)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다석, 예수처럼 살면 누구나 작은 그리스도가 될 수 있다고 설파

다석 유영모는 특별한 역사적 예수연구나 특별한 신학공부도 하지 않았음에도 이 같은 정통신학의 맹점을 간파하고 인간 예수처럼 누구나 자기의 천직에 매달려 살다 가면 그가 예수라고 말한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는 천직에 매달린 분입니다. 천직에 매달린 모범을 통해, 우리를 위한 대속을 보여주었습니다. 줄기로 천직을 다한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이건 어딘가에 매달려 가야 하는 것 같습니다. 자기의 천직에 임무를 다하는 것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와 같은 독생자가 되는 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는 하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될 리가 없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늘 말하듯이 그리스도교에서의 예수는 우리를 대표합니다. 천직에 순직한 자는 장소 여하를 불문하고 교리가 있건 없건 독생자로서 십자가를 진 사람입니다. 결코 편협한 예수 그리스도가 아닙니다"(다석강의 732-733쪽)

정양모 신부 역시 예수가 온 인류의 죄를 뒤집어쓰고 대신 속죄하기위해 예수가 죽임을 당했다는 신앙은 고대의 집단인격사상 때문이라면서 아담의 원죄이나 예수의 십자가 대속이 일종의 연좌제처럼 모든 인류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은 개성과 자기 책임을 주장하는 오늘날에는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정양모 신부에 따르면, 예수처럼 살면 누구나 그리스도가 될 수 있다는 다석 유영모의 그리스도론은 예수가 하느님의 영, 곧 성령을 받아 부자유친의 삶을 살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이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한 예수가 신의 양자가 되었다는 아리우스의 그리스도론과 일면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다석의 그리스도론은 곧 그의 신관과도 연결된다. 다석은 모든 존재는 없이 계시는 하느님에게서 비롯되고 그분께로 돌아간다는 귀일신관(歸一神觀)을 믿었으며 이는 오늘날 '신 중심 다원주의'와 맥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다석의 귀일신관은 세계화시대에 종교 간의 대화와 협력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예수가 신이 아닌 가장 모범적인 인간이자 스승이 된다면 다른 유일신 신앙을 가진 이슬람교나 유대교, 또한 불교 등 모든 종교와 대화가 가능하다. 과거 정통교회로부터 축출당한 아리우스파 일부가 이슬람신앙이 자기들의 입장과 유사하다고 생각해 개종하거나 협력관계를 맺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양모 신부는 "다석의 신론·그리스도론이 과거 신앙을 답습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단시되겠지만 우리 신학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이라면 다석의 가르침에 감읍하고 감사할 것"이라고 말한다. 미래의 어느 날 다석의 사상이 다수의 기독교인들에게 인정받는 날이 온다면 한국교회는 '개독교'에서 '기독교'로 복원되고 한국신학은 당당히 세계 신학계는 물론 사상계와 자웅을 겨룰 것 있을 것이다.


백찬홍/유영모, 함석헌을 선생을 기리는 재단법인 씨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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