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지요하]

어제(3일) 오후 3시 서울 예수회센터 대성당에서 봉헌된 시국미사에 참례하고 밤늦게 돌아왔다. 이번의 시국미사는 한국 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생명평화분과와 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정의평화환경전문위원회가 합동으로 주관한 ‘부정선거 불법당선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미사’였다.

보수단체 회원들의 계속적인 시국미사 방해

역시 예상했던 대로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이하 대수천)을 비롯한 보수단체 노인들이 근처 건물 앞에 진을 치고 있었다. 수많은 카메라들이 그들을 향하고 있어서 오히려 그들이 더욱 관심의 표적이 되는 듯한 양상이었다.

시국미사를 준비하는 쪽에서 먼저 예수회센터 건물 앞에 ‘집회허가’를 받아놓았기에 대수천과 보수단체들은 예수회센터 앞에서 소란을 피울 수는 없었다. 조금 떨어진 지점에 겨우 진을 치고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며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유인물을 배포하곤 했다. 그들은 ‘빨갱이 사제’, ‘종북사제’, ‘위장사제’ 등의 괴이하기 짝이 없는 말들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 3일 오후, 시국미사에 앞서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 회원 50여 명이 서울 예수회센터 입구에서 항의 집회를 열고 있다. ⓒ정현진 기자

그들 중 일부는 예수회센터 건물 안으로 들어가 소란을 피웠고, 또 일부는 성당 안으로 들어가려다 제지당하자 고함을 지르며 몸싸움을 하기도 해서, 미사 중 강론을 하던 예수회 조현철 신부는 잠시 숨을 고르기도 했다. 대수천 회원들 가운데는 일찌감치 성당 안에 입장하여 자리를 잡은 이들도 있을 터였다. 그러나 성당 안에서 미사 중에 소란을 피우는 이는 없었다. 어쩌면 미사 분위기에 압도되거나 동화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미사가 끝나고 사제들과 신자들이 성당 밖 로비로 나왔을 때 대수천 노인들이 외치는 구호 때문에 몹시 소란스러웠다. 미사에 참례한 노인과 대수천 노인 간에 말싸움이 벌어지기도 했고, 몸싸움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대수천 노인들 가운데는 신자가 아닌 이들도 섞여 있음을 나는 알 수 있었다. 거제도 고현성당에서 성호를 그을 줄도 모르고 사제들의 강복기도도 거부했던 이들의 얼굴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정진석 추기경과 염수정 추기경이 했던 말들을 들이대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고, 사제들을 향해 “사탄아, 물러가라!” 하고 외치기도 했다. “정의구현사제들은 거짓 예언자”라는 말에서는 정진석 추기경이 떠오르고, “성직자는 정치에 관여할 수 없다”는 말에서는 염수정 추기경이 연결되는 상황이었다. 두 추기경이 그들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고 있음을 확연히 감지하게 되는 대목이었다.

일부 천주교 신자들이 신자 아닌 사람들과 합세하여 성당 안팎에서 미사를 방해하며 소란을 피우는 행위에 대해 한국 교회의 가장 큰 위치에 있는 두 분이 깊은 성찰을 해보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절로 간절해졌다.

▲ 3일 오후, 서울 예수회센터에서 열린 시국미사에 참석한 신자와 수도자들이 기도하고 있다. ⓒ정현진 기자

고의적으로 독성죄를 저지르는 사람들

시국미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미사는 가톨릭교회의 가장 거룩한 핵심 예절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증거하고 부활을 기념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제물로 삼아 하느님께 예를 올리는 성제(聖祭)이기도 하다. 또한 하느님과 인간, 하늘과 땅이 함께 이루는 잔치이기도 하다.

그런 거룩한 미사 전례를 소란을 피워 방해한다는 것은 제대로 된 천주교 신자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미사를 방해하는 것은 그대로 독성죄(瀆聖罪)가 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시국미사를 방해하는 태도는 의도적으로 독성죄를 저지르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그들이 어떻게 천주교 신자일 수 있는가.

일부 신자들이 신자 아닌 사람들과 합세하여 시국미사를 방해하며 소란을 피우는 행위에 대해 정진석 추기경과 염수정 추기경은 통절한 책임을 느껴야 한다. 그동안 신자들을 잘못 가르쳐왔음을 깊이 인식해야 하고, 최근 자신들의 그릇된 정치적 발언들이 그들을 최대한 고무하며 그들에게 무제한적으로 이용되고 있음을 깊이 헤아려야 한다.

그들은 이미 여러 차례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시국미사를 방해해왔다. 그럴 수 있는 자금 여력도 있는 것 같고, 앞으로도 그런 행위를 계속할 의도인 것 같다. 치사하고 비겁하게 시국미사를 쫓아다니며 방해할 게 아니라 당신들끼리 따로 집회를 열어 당신들의 주장을 마음껏 펼치라는 일각의 권유도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본새다.

보수단체 회원들이 조직적으로 시국미사를 방해하는 행위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며, 저 유신 시대와 5공 시절에도 없었던 일이다. 세계에 부끄러운 일이다. 올해 초 또 한 명의 추기경이 탄생한 나라에서 자행되고 있는 일이라니, 더욱 수치스럽다.

염수정 추기경, 미사 방해에 대한 태도 밝혀야

이 시점에서 염수정 추기경은 분명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정진석 추기경이야 워낙 연로하신 분이고 오랫동안의 ‘조중동 편식’으로 말미암아 균형감각을 되찾기가 거의 불가능한 분이시라 기대할 수 없고, 염수정 추기경은 그래도 완전히 노회한 분은 아니시라 기대를 해보게 된다.

그가 추기경 임명 전, 성직자는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발언으로 정의와 사회공동선을 갈망하는 이들에게 큰 충격을 주면서 보수세력을 환호작약케 했음을 나는 잘 기억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 <복음의 기쁨>이 반포된 직후에는 교황의 말씀과 부합하는, 종전과는 180도 다른 발언을 한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게 추기경 서임을 염두에 둔 기회주의적 발언이라는 지적들도 있었지만 나는 염수정 추기경이 자신의 영명축일 축하미사(11월 29일 안드레아 축일) 때 행한 강론 내용을 진심이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염수정 추기경께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염 추기경은 이 시점에서 한 말씀 하셔야 한다. 보수단체 노인들이 계속적으로 미사를 방해하는 야만적인 현상에 대해 계속 방관적인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 통절한 책임감으로 미사를 방해하는 행위는 그 어떤 명분으로도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악임을 분명하고도 단호하게 표명해야 한다.

▲ 3일 오후, 서울 신수동 예수회센터 성당에서 사제, 수도자, 평신도 6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부정선거 불법당선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미사’가 봉헌됐다. ⓒ정현진 기자

천주교와 정의구현사제단이야말로 민주주의 희망의 요람

나는 삼류소설가, 보잘것없는 글쟁이 명색이지만 하느님 신앙 안에서 신앙의 힘으로 평생을 살아왔다. 오로지 하느님께 의지하며 정의와 평화, 참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태도로 삶을 일관해왔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하느님 안에서 ‘희망’의 실체를 본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기대할 만한 부분이 거의 없다. 철학도 없고 자기희생이 뭔지도 모르는 천박한 정치인들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을 걸 수가 없다. 언론도 죽어 있는 상황이다. 일부 양심언론들이 고군분투를 하고 있지만, 권력에 완전히 장악된 방송매체와 수구족벌언론들의 영향력 때문에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을 피워내기에는 역부족이다.

검찰과 경찰은 아예 믿을 수 없다. 권은희와 채동욱 같은 사람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경찰이나 검찰 조직은 정치권력에 철저히 예속된 집단이라 거기에서는 희망을 찾을 수 없다. 법원도 거의 마찬가지다.

유일하게 희망을 걸 수 있는 곳은 종교계이고 그중에서도 천주교가 희망의 요람이다. 천주교는 정의구현사제단이 있어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을 탄력적으로 일구어낸다. 나는 같은 천주교인이기도 하지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통해 하느님의 은총을 체감한다. 하느님께서 우리나라에 베푸시는 큰 은총임을 뜨겁게 확신한다.

이 세상에 나 같은 사람도 많음을 잘 알고 있다. 늘 고독감 같은 것을 안고 살지만 나 같은 사람들이 무수히 많음을 항시적으로 체감한다. 그들은 모두 정의구현사제단에 희망을 걸고 있다. 사랑과 존경심으로 함께 일치를 이루며 나아간다. 정의구현사제단에 참여하는 사제들도 서로에게 깊은 애정과 신뢰, 존경심을 지니고 함께 나아가리라 믿는다.

이제 한국 천주교회의 위상과 명예, 하느님의 소명을 두 어깨에 메고 나아가야 할 큰 책무를 지닌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정의구현사제단에 우호의 정을 지니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를 앞장서 실천해 나가고 있는 그들에게 확실하게 연대의 뜻을 표명해야 한다. 그것이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를 살려나가는 길이다.


지요하
(막시모)
소설가, 대전교구 태안성당 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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