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1일자 1002호 <평화신문>과 2631호 <가톨릭신문>

‘교회일치’가 아닌 ‘그리스도인 일치’

해마다 1월에 돌아오는 ‘그리스도인 일치기도’ 주간이다. 물론 ‘그리스도교’의 일치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말하는 것이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가 발행하는 <매일미사>에는 그 주간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을 통하여, 가톨릭 신자들에게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일치를 위하여 기도할 것을 권장하였다.

이에 따라 교회는 해마다 1월 18일부터 ‘성 바오로 사도의 개종 축일’인 1월 25일까지를 ‘일치 주간’으로 정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 특별히 올해 일치 주간에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와 개신교(한국 기독교 교회협의회)가 공동으로 준비한 ‘일치 주간 기도문’을 전 세계 교회가 교파를 초월하여 공동으로 바치게 되어, 한국의 교회 일치 운동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평화신문>은 이와 관련된 소식을 3면과 14면 전면에 실었으며, <가톨릭신문>은 2면과 3면, 23면 사설에서 다루었다. 두 신문이 기사본문에도 적어놓았지만 ‘교회일치 기도 주간’은 천주교회에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1908년 미국 뉴욕서 성공회 폴 와트슨 신부에 의해 거행되기 시작했고, 1930년대 프랑스 리옹의 폴 쿠튀리에 신부가 ‘그리스도인 일치기도주간’으로 바꾸면서 자리잡았다고 한다. 아마도 ‘교회일치’가 아닌 ‘그리스도인 일치’라는 용어의 변경에는 깊은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이후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가르침에 따라 이 운동은 본격적으로 시작된 바 있다. 금년 ‘일치주간’을 맞아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회’(위원장 김희중주교)는 “네 손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여라”라는 성서구절로 된 담화문을 발표했다. 담화문은 “한국 천주교와 개신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40여 년 간 서로 간의 오해와 불신의 장벽을 허물고,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위해 공동으로 노력해 왔습니다. 상호 교류와 만남, 신학자들 간의 대화, 일치를 위한 순례와 간담회, 학술적인 토론과 일치 기도회 등 다양한 형태의 일치 운동을 벌여 왔습니다. 올해는 이러한 일치 운동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말하며 한국 그리스도인들 앞에 펼쳐져 있는 많은 과제에 있어서 참된 일치와 화해를 요청했다.



‘공동번역 성서’는 눈에 보이는 하느님의 선물

돌이켜보면 한국의 천주교회와 그리스도교 타 종파들이 구조 혹은 교리적인 ‘교회일치’보다는 ‘그리스도인 일치’를 위해 함께 노력한 일들은 참으로 감동적인 일이었다. 무엇보다 현대인들에게 선명히 기억되는 것은 1970년대 박정희 유신정권시절 사회적 약자와 정의로움의 상실에 대하여 민주화 대열에 함께 서서 투쟁한 것이 눈에 보이는 활동이라면, 역시 같은 70년대에 개신교와 천주교가 함께 성서를 번역하여 한국의 모든 교회가 동일한 성서를 사용하게 된 것도 돋보인다. 양측이 동일한 번역본을 갖게 된 ‘공동번역 성서’는 눈에 보이는 일치의 산물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20세기 한국 그리스도교회에 주신 하느님의 선물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당시 유일한 교계신문이었던 <가톨릭신문>은 “한국 기독교 2백년 사상 가톨릭과 개신교 양 교회가 공동으로 이룬 사업 중 가장 뜻있는 일로 평가되어온 성서공동번역사업이 착수 2년 만에 결실을 보아 신약공동번역본이 3일 출간, 첫선을 보였다. 1969년 1월 양 교회 성서전문가들로 구성된 ‘공동번역전문위원회’가 번역에 착수한지 2년 3개월 만에 출간을 본 공동번역본은 대한성서공회 발행으로 시판에 들어가자마자 공동번역본에 큰 기대를 걸어온 기독교인과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 속에 판매되고 있다. 이로써 한국은 66년 바티칸과 세계성서공회 연합회가 공동번역을 각국에서 추진키로 한지 4년 만에 영국 불란서 네덜란드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공동번역을 완성한 나라가 되었다. 이번 신약의 출간으로 종래의 난해한 번역본이 기독교인 외엔 일반 대중에 어필하지 못했고 더욱이 성서를 통해 그리스도교의 구원의 진리에 접해야 할 젊은 층으로부터 외면당해 온 실정을 절감한 나머지 모든 이가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성서를 공급해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에서 비롯된 사업으로 교파를 초월한 공동협조의 결실이라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를 지니고 있다.” (당시<가톨릭시보> 1971년 4월11일자 3면)라고 그 의미를 짚어 보도한 바 있다.

‘그리스도인 일치’는 교파분열의 역사가 치열했던 만큼이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어렵게 성령의 도움으로 불어온 ‘일치운동’을 교회는 해마다 기념하고, 기도하고, 함께 자리하고 있다. 또한 교회의 여러 활동단체들은 실제로 많은 일치운동을 체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우리 손으로 이뤄놓은 위대한 업적인 ‘공동번역 성서’를 떠나보낸 것은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다.

매주일 주님의 말씀을 함께 읽는 의미를 일년에 한번 ‘일치’의 의미를 되새기는 주간에 비길 것인가? 이제 천주교회는 ‘새 번역’으로, 개신교는 대부분 ‘개혁성경’을 사용하고 있는 한국 교회의 전례 속에 언제 다시 ‘일치’의 날이 올 것인가? 참조로 ‘일치운동’을 처음 시작했던 이가 성공회 신부였는데, 한국성공회가 유일하게 공동번역 성서를 지금도 사용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아직도 아쉬운 그 때의 ‘일치’다. 아, 옛날이여!
 

김유철/경남민언련 이사, 경남도민일보 지면평가위원, 천주교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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