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옥순 · 소희숙 수녀 (툿찡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원)

한국 수도자들에게 2013년 한 해는 특별하고도 뜨거웠다. 대한문, 밀양, 강정…… 내동댕이쳐진 이들이 모인 자리에는 언제나 수도자들의 베일이 있었다. 그들은 미사를 봉헌하고 묵주 알을 굴리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노동자들의 손을 잡았고, 할매들과 함께 경찰 앞에 주저앉아 밤을 지새웠다. 1970년대 중반,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의 현장에 있었던 사진 속 수도자들의 모습이 40년 후 그렇게 재현되고 있었다. 그날을 기억하는 수도자들은 데자뷔처럼 마주하고 있는 오늘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살고 있을까.

두 노수녀를 만나러 가던 날, 굽은 언덕길을 올라 만난 서울 돈암동 툿찡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원 마당은 고요하고 차분했다. 마당 하나를 건너 들어선 수녀원은 발 디디기도 조심스러울 만큼 다른 세상인 듯 했다. 안내를 받아 작은 방에 들어서자 최옥순 수녀와 소희숙 수녀가 앉아 있었다.

최옥순 수녀와 소희숙 수녀는 1960년대 중반 2년 차이로 베네딕도 수녀회에 입회한 선후배 이자, 50여 년의 세월을 함께 지나온 이른바 ‘절친’이다. 참 다르지만 ‘두둑한 배짱과 열정’만은 닮았다는 이들은 서로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숨기지 않았다.

▲ 같은 듯 다른 두 수도자. 서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소희숙 수녀(오른쪽)는 최옥순 수녀를 “감성적이고 열정적이며 이타적인 사람이면서도 유쾌한 사람”이라면서, “그에 반해 나는 게으르고 이기적인 사람”이라며 웃었다. 2년차를 두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입회한 두 수도자는 이제 50년의 세월을 건너 서로 존경과 감사를 표하며 우정을 나눈다. ⓒ정현진 기자

“나이가 드니까, 무서운 것도 없고 배짱도 더 생기더라”

선배인 최옥순 수녀가 강정 해군기지 싸움에 열심히 참여하는 소 수녀가 무척 고맙다며 애정 어린 눈길을 보내자, 소희숙 수녀는 “불의를 참지 못하는 것은 최 수녀님도 마찬가지”라며 거든다. 최옥순 수녀는 직접 현장에 나가지는 못하지만 늘 세상 소식에 귀를 기울인다. 얼마 전 대전교구 김유정 신부가 SNS에 ‘신앙인의 사회참여’에 대한 글을 올려 화제가 됐을 때는 식사 전 독서로 그 긴 글을 읽어 내려갔다고 한다.

1960년대 수녀회에 입회해 교회 안에서 살았다면, 사회 문제와 부조리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것이 자연스럽지는 않은 일이다.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것일까?

▲ 최옥순 이레네 수녀
최옥순 수녀는 그 자신도 처음에는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있었지만 수녀회 소임을 통해 그런 계기가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성남에서 소임을 할 때, 우연히 장기수를 만나게 됐어요. 그리고 당시 ‘성남 만남의 집’에서 활동하던 이영숙 수녀님도 만나게 됐죠.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요. 장기수들이 재판을 받는데, 궁금한 것이 생겨서 판사에게 손을 들고 질문 있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면서 부천서 성고문 사건 재판에도 가게 됐고, 천주교인권위원회 위원으로 10여 년 활동하면서, 공부도 많이 하고, 현실도 접하고, 글도 쓰고…… 그렇게 되더라고요.”

최옥순 수녀는 당시 처음으로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부조리한지 다른 눈으로 보게 됐다면서, “불의 앞에 무력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점점 더 열리고 새롭게 세상을 보는 계기가 됐다”고 고백했다. 최 수녀는 어떻게 하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복음의 가치로 설명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면서, “무엇보다 수도자의 역할이 ‘화해’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나는 특별한 계기는 없었어요. 그냥 원래 반골 기질이 있어. (웃음) 1970년대에 우리 수도회가 목소리를 많이 냈었고, 나 역시도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하면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에요. 천주교 도시빈민운동 조력자로 활동하면서 그냥 사람들이 불러주고 좋아해주는 게 나도 좋았고. 다만 강정은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우연히 알게 됐지. 처음 공사장 앞에서 기도하다가 연행됐을 때, 형사가 또 올 거냐기에 또 온다고 했지만 사실 경비가 걱정이었거든. 그런데 돈도 생기고 시간도 생기더라고요.”

“나는 원래 이랬다”고 고백한 소희숙 수녀는 안 되는 일은 안 되는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면서, “나이가 드니까 무서운 것도 없고 배짱도 더 생기더라. 허락되는 한,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자, 천상의 시간이 아니라 늘 세상 한복판으로 나가는 사람들

50여 년의 수도생활. 그 긴 시간을 걸어온 이들에게 ‘수도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 소희숙 스텔라 수녀
소희숙 수녀는 “수도자는 천상의 시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늘 세상의 한복판으로 나가야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수가 기도한 뒤 제자들에게 “일어나 가자”고 했던 것처럼 좋은 곳에서 머무르지 않고, 아프고 힘들고 고달픈 이들 가운데로 가야 한다면서, 그렇게 가기 위해서 또 기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 수녀는 하느님의 자녀로 사랑을 사는 것, 이웃 사랑은 곧 사회 정의 구현이며 그것이 수도자의 삶이라고 했다.

“기도하고 일하라는 것이 우리 수도회의 가르침입니다. 기도와 일, 삶이 다르지 않고 하나라는 것이지요. 어떤 일을 하면서도 하느님의 나라가 지금 여기에서 실현되기를 지향하며 일하는 것. 기도가 삶이 되고, 삶이 기도가 되는 것이죠. 어떤 상황이나 사건 안에서 가슴 뜨겁게 살기를 지향하는 것이 수도자의 삶이 아닐까요.” (최옥순 수녀)

최옥순 수녀는 그에 더해,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나누는 것이 또한 수도자의 삶이라고 말했다. 수도자이지만 감추지 않고 자신의 삶과 체험을 공유하고, 만나는 이들에게 용기와 열정을 전하는 것이 ‘수도자의 몫’이라고 했다.

수도자가 거리로 나서야 하는 현실, “굴욕적이고 비참하다”

지난 1년, 한국 천주교회가 시국의 중심에 있었고, 수도자들은 큰 동력이 됐다. 정의와 평화를 바라는 이들에게는 큰 힘이 되었지만, 수도자들이 나서야 하는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두 수녀는 수도자까지 거리로 나서야 하는 시대가 비참하고 힘들다고 토로했다. 소 수녀는 “이런 상황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기쁜 소식을 투쟁적으로 전해야 하는 안타까움을 털어놨다. 그는 “하느님과 닮고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수행하는 수도자로서 밖의 사람들이 부르고 요청하는 것에 응답하고 있지만, 솔직히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수도자가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너무 비참하다”고 말했다.

“시국미사도 나가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지. 이 세상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때까지는 해야지. 이 세상은 정말 가치관도, 수치심도, 양심도, 상식도 없는 세상입니다. 오로지 돈이죠. 권력마저도 돈에 복무하는 세상입니다.”

소 수녀는 “적은 양의 누룩이 빵을 만드는 것처럼 소수의 깨어있는 이들이 어떻게 세상을 볼 것인가에 따라 세상은 달라진다”면서 “마음 아프고 힘들지만 함께 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비정상적으로 살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 툿찡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서울 수녀원 성당에 걸린 십자가 ⓒ한상봉 기자

“기도나 하라”는 말은 “그저 복이나 빌어주라는 말”

최근 사회문제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는 수도자, 성직자들에게 심심찮게 들어오는 요구는 “기도나 하라”는 것이다. 교회 밖은 물론, 교회 안에서도 똑같은 비난을 받는다. 그들이 강요하는 ‘기도’에 대해 어떻게 답할 수 있을지 물었다.

“물론 성경에도 기도는 조용한 곳에서 하라는 말이 있지요. 하지만 기도는 하느님은 물론, 우리 주변의 다른 이들에게도 울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느님의 역사가 이뤄지는 것이지요. 기도는 조용히 홀로 할 때도 있지만, 우리의 간절한 소망, 바람, 희망을 하느님께 전하는 모든 것이라면, 그것을 담는 모든 행위가 곧 기도입니다. 틀에 갇힌 생각을 깨야 해요.”

최옥순 수녀는 “기도나 하라”는 말 속에 있는 삶과 신앙의 이분법적 사고를 깊이 우려했다. 그는 “고통 받는 이들과 연대하는 것과 신앙이 별개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깨야 한다”면서 “그것은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웃을 생각하지 말라는 말”이라고 꼬집었다.

소희숙 수녀는 좀 더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소 수녀는 “기도나 하라는 것은 축복이나 빌고 제사나 드리는 무당이나 되라는 말”이라며 “이것은 우리 교회가 참으로 잘못 가르친 탓이다. 오히려 예수님이 질타했던 현실과 신앙을 분리시키는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성전의 거룩한 미사와 자선에 머무르는 모습을 총체적으로 뒤집어야 한다. 타성에 젖은 신앙은 힘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지막으로 교회와 세상에 대한 당부를 부탁했다. 죽을 때까지 수도자로 살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큰 행복일거라고 고백하는 두 노수도자가 그토록 사랑하고 연민하는 교회와 세상에게 건네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교회, 권위주의 버리고 이분법적 신앙에서 깨어야

생각보다 강한 직격탄이 날아왔다. 두 수도자는 교회를 향해 “권위주의를 버리라”고 요청했다.

최옥순 수녀는 여전히 교회 내에 성차별과 같은 인권 문제, 노동자들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문제 등이 있다면서 “수도자들조차 교회 내 소임이 기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할 때 마음이 아프다”고 전했다.

“교회 용어로부터 많은 문제를 볼 수 있어요. 우리가 어떤 신앙의 틀을 지니고, 어떤 신관에 갇혀 있는지 볼 수 있지요. 일례로 기도문에서 ‘우리’를 ‘저희’로 바꾼다는 것에서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하고, 우리가 하느님을 어떤 분으로 보고 있는지 드러나지요. 또 하나는 용어와 같은 세부적인 것에 집착하면서, 더 큰 부분, 즉 복음을 구체적으로 살아내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최옥순 수녀)

소희숙 수녀는 권위주의와 함께 평신도들의 주인의식을 요구했다. 소 수녀는 “교회의 주인은 신자이며, 성직자와 수도자가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성직자와 나머지로 나누는 이분법적 구조를 스스로 깨야 한다. 우리는 모두 평등하고 직무가 다른 것뿐인데, 직무의 차등을 존재의 차등으로 인식하는 것을 깨지 않는 한, 결코 교회쇄신은 없다”고 단언했다.

또 성직자가 집전하는 미사도 중요하지만, 삶 중심으로 생각이 이동해야 한다면서, “신자들도 공부를 해야 하고, 무엇보다 성직자들도 그들의 직무를 통해 어떻게 하면 복음을 제대로 전할 것인지 연구하고 공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 인터뷰를 마치고 성당에서 기도를 드리는 두 수도자. 똑같이 감실을 향해 무릎을 꿇고 이들은 하느님께 어떤 이야기를 건네고 있을까? ⓒ정현진 기자

모든 이야기는 ‘기도’에 도달해
“기도야말로 밥이고, 영적 양식이며 삶의 동력”

두 수녀는 마지막으로 이 모든 생각과 말과 행위의 근원은 예언직 수행으로부터 오는 ‘희망’에 있다고 말했다.

“대안도 가치관도 없어 보이는 절망적인 세상에서 우리의 예언직은 세상의 빛이 된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모두 세례 때에 예언직을 받았습니다. 예언자는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을 선포하고 불의와 부정이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고 외치는 사람들, 그럼에도 사람을 내치지 않고 회개를 촉구하는 사람들, 그 시대에 존재하는 하느님의 징표입니다. 우리는 징표가 되고 깨어서 걸어가야 하며, 그 모든 것이 하느님과 함께 있는 기도의 시간입니다.”

수도자였다. 모든 이야기는 ‘기도’에 도달했다. 두 수도자는 “기도야말로 밥이고, 영적 양식이며 삶의 동력”이라면서,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라는 주님의 기도 한 대목을 읊었다.

그리고는 “사랑과 정의의 하느님 나라가 이 땅 위해서 강물처럼 흐르게 하는 것이야말로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앞으로도 무엇이 주어지든 그대로 해나갈 것이며, 깨어있기 위해서 늘 기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침 기도를 하기 위해 성당으로 향하는 이들을 보면서, 시구 하나가 떠올랐다.

누구의 아내도 아니면서 / 누구의 엄마도 아니면서 / 사랑하는 일에 / 목숨을 건 여인아
그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 부끄러운 조바심을 / 평생의 혹처럼 안고 사는 여인아
……

누가 뭐래도 / 그와 함께 살아감으로 / 온 세상이 너의 것임을 잊지 말아라
모든 이가 네 형제임을 잊지 말아라

(이해인,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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