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로 흘러가는 노래 - 11]

B 신부님,

5년 전 신부님을 처음 만났을 때 들은 강론이 마치 방금 들은 이야기처럼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때 신부님은 ‘참된 평화’에 대해 말씀하였지요.

“스위스에 가면 레만호라는 아름다운 호수가 있습니다. 어느 날, 그곳에서 지체장애를 가진 어린이들을 모아놓고 ‘평화’라는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 대회가 열렸습니다. 금상을 받은 작품은 잔잔한 호수, 한가로이 노니는 새들, 맑게 갠 파란 하늘에 두둥실 떠있는 흰 구름, 잔디밭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대상을 받은 작품은 상당히 의외였습니다. 호수 배경 전체가 회색빛이었고 하늘은 먹구름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장대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평화와는 너무도 거리가 먼, 절망적이고 암울한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것이 있었습니다. 호수 건너편의 절벽 위에 움푹 파인 바위 하나가 그려져 있고 그 속에서 어미 새가 비바람에 떨고 있는 작은 새 두 마리를 꼭 품고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여러 분은 어떤 그림이 참된 평화를 나타낸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날 신부님이 하신 강론처럼 지난 5년간의 생활은 잔잔한 물가에서 한가로이 노니는 새처럼 편안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당 건축을 위해 빌린 빚이 많아 신자들이 힘겨워하는 것을 보시고는 바자회, 비어 가든, 음악회 등을 지휘하며 그 많던 빚을 축제처럼 즐기며 갚아냈지요. 학업에 지치고 마음이 위축된 청소년들을 격려하여 지역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고 태백산맥의 등줄기를 걷고 백두산과 몽골의 대초원을 뛰어다니며 호연지기를 키우게 하였고 신앙으로 굳게 뭉치게 하였습니다. 또 한창 냉혹한 현실을 헤쳐 가며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거나 속절없이 세상의 유희에 빠져있을 중년의 남성들을 모아 중창단을 만들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발표하게 함으로써 손님처럼 미사에 참석하던 남자들을 교회의 주인으로 바꾸어 놓았지요.

그러나 무엇보다 당신이 우리에게 베푼 가장 큰 선물은 하느님의 정의에 대한 깨달음이었습니다. 평소에도 가난하고 외로운 가정들을 돌보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고 부모님 대하듯 연세 많은 어르신들의 손을 다정하게 잡아 주던 당신이었지만, 우리 사회의 잘못된 현실을 밝히 드러내고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가르치는 일에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지요. 덕분에 많은 신자들이 사회교리에 대해 알게 되고, 강정마을과 밀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이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삼권분립을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했는지, 대형 신문사와 방송들이 특정한 쪽의 입장만을 중점적으로, 때로는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보도하고 있는 현실의 결과가 어떠한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신부님이 하신 일을 모든 신자가 지지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박해시대를 거쳐 온 서구 선교사들이 일본 제국주의와 타협하여 정교분리(政敎分離) 정책과 성속이원론(聖俗二元論)을 주장하면서 한국 교회가 민족의 현실과 만날 기회를 차단한 이후, 그리스도의 복음 정신에 비추어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는 교회의 현실참여운동이, 초월적이고 내세적인 신앙 유형만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온 신자들에 의해 지탄의 대상이 되어왔듯이, 신부님도 보수적인 총회장의 차갑고 싸늘한 눈초리를 견뎌내야 했고 몇몇 신자들의 의도적인 비난을 등 뒤로 느껴야 했지요.

그러나 5년 임기를 마치고 떠나간 신부님의 빈자리에서 우리는 당신과 함께했던 시간이 얼마나 우리들의 삶을 풍요롭게 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당신과 함께 지내면서, 지금의 안락함이 무너질까봐 두려움에 떨며 현실을 외면하는 교회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향해 광야의 시련을 믿음으로 헤쳐 나가는 용기 있는 교회라야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신과 함께 우리는 비로소 두려움 너머의 세계를 볼 수 있었고 희망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신부님, 새로 발령받은 성당에서도 부디 용기 있는 신자들이 신부님과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세찬 비바람에 맞서 하느님의 나라를 지키려는 신자들을 꼭 품어주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거짓과 허세에 눌리지 않고 진리와 진실한 행동을 추구하는 하느님의 백성들과 참된 평화의 행진을 계속하리라 믿습니다. 그 따스했던 품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이장섭 (이시도로)
아산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주님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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