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별 이야기]

 

그 잡귀들은 어떠한 존재들일까

제사상에는 콩떡, 굿마당에는 팥떡이라는 옛말이 있다. 제사를 지낼 때는 콩가루를 올린 떡을 준비하고 굿을 할 때는 팥고물을 얹은 떡을 마련한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이러하다. 조상님들을 모시는 제사상에는 붉은 기운이 없는 콩떡을 놓아야 혼백이 편안히 오셔서 잡수실 수 있다는 뜻이고 굿을 하는 이유는 잡귀를 쫓아내야 하므로 붉은 팥을 이용한 떡을 해야 붉은 빛에 놀라 온갖 잡귀들이 물러간다는 것이다.

죽음으로 차원을 바꾼 존재에 대해서도 우리는 어쩌면 내 가족만의 밥상을 차리고 싶어하는 것인지 모른다. 도대체 그 잡귀들은 어떠한 존재들일까. 민속학에서는 죽었으되 세상에 품은 회한으로 인해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건너가지 못한 영혼들을 귀신(鬼神)이라 말하고 있다.

백련교(白蓮敎) 혹은 명교(明敎)는 사파의 무리인가

영화 <황비홍>은 중국이 서양세력과 접하며 그들과 관계 맺는 여러 층의 사람들을 보여준다. 황비홍은 서양의학에 관심을 가져 서양인들에게 다가가지만 백련교도들은 외세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며 서양식 학교와 교회를 약탈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황비홍은 그들이 진정한 적이 아님에도 부득이 이들 백련교도들과도 싸우고 서양인들과도 싸워야 한다.

그 중의 한 장면은 이러하다. 총을 든 한 사람이 서양세력을 배척하는 백련교도 무리에 에워싸여 곤경에 처해있다. 그는 총을 저어보이며 다가오면 쏜다고 물러가기를 소리치자 무리도 겁을 먹고 더 이상 다가들지 못하는데, 백련교도인 한 아이가 우리 백련교도는 죽지 않아요, 부적이 지켜줘요(?) 라는 말을 하며 총을 든 사람에게 다가간다. 이에 무리가 다시 총을 든 이를 압박하자 그는 방아쇠를 당기고 아이는 죽는다. 백련교도는 광명의 가피를 입어 총에 맞아도 죽지 않는다는 믿음을 보였던 아이였다.

영화, <황비홍>의 한장면


90년대 무협지나 무협지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들을 접하다보면 정파와 사파로 나뉘어 서로를 죽여야만 하는 숙명에 처한 고수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들을 정파와 사파로 나누는 기준에는 종교의 색채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는데 백련교(白蓮敎) 혹은 명교(明敎)가 바로 사파의 무리들이 정신적 양식으로 취하고 있는 세계였다. 백련교와 명교는 서로 공통되는 부분들이 많아 같은 무리들을 지칭하기도 하고 조금 색채를 달리하는 집단을 말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대중문화 속에서는 원나라 말기부터 명나라에 이르는 시기에는 명교라고 불리다 청나라로 들어서면서는 백련교도로 불리었다.

역사적으로 두 종교(?)에 대한 분명한 이해는 없지만 대중문화로 접하거나 개설서 속에서 읽혀지는 두 종교는 서로의 교리를 차용하여 내용을 풍부하게 하면서 거대한 중국인민들의 생각을 읽어내고 그들의 생각 속으로 파고들었던 것 같다. 백련교 혹은 명교로 불리는 종교적 감성은 중국이라는 땅에서 출몰했던 모든 사이비 종교(?)의 총합으로 보여진다. 중국 하층백성들의 하소연을 종교적 교리에 담은 이 백련교(명교)는 무협지에서는 사파의 무리가 마음과 의지를 붙이는 이념체계였고 한편 중국역사의 위기에는 농민들을 하나로 모아 농민반란군을 구성하는 중심이념으로 작용했다.

미륵불이 세상에 내려와

원(元)나라 말기, 농민반란군인 홍건군(紅巾軍)의 창설자 팽형옥은 ‘미륵불이 세상에 내려와(彌勒佛下生)’ 세상을 구원한다는 교리로 반란군을 조직하였고 이 무리에 명나라 태조 주원장도 합류하여 공을 세워 결국 명나라 개국 태조가 된다.

명(明)나라의 명(明)은 명교(明敎) 즉 백련교의 이상인 광명의 명(明)에서 따온 게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한다. 그러나 주원장은 황제가 되자 곧 명교도들을 순진한 민중의 마음과 의지를 홀리는 무리라고 규정하여 관군으로 하여금 소탕한다. 농민반란군이 주축이 된 홍건적을 이끌고 명나라를 개국했지만 개국 이후로는 무인들의 힘보다는 결국 유자(儒者)들의 도움이 필요했고, 그래서 그들과 손잡으며 농민반란군-명교도들의 처지를 외면한 것이리라.

백련교(명교)의 교리는 명(明), 암(暗) 두 세력의 싸움으로 설명이 된다. 명은 빛, 광명천지를 상징하는 것으로 참됨과 올바름이고, 암은 어둠으로 거짓됨과 무명, 무지를 나타낸다. 이 두 힘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하여 싸워나간다. 미륵불이 세상에 내려오면 빛이 어둠에 대하여 승리를 거두는 것으로, 이때가 되면 진리의 근원이신 무생노모(無生老母)가 하늘에서 내려와 천국같은 진공가향(眞空家鄕)으로 신도들을 이끌고 간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진공가향, 무생노모(眞空家鄕, 無生老母)"라는 8자 진언을 외우는데 그들의 메시아 무생노모는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 노불(老佛)이다.

영화, <의천도룡기> 의 한 장면

정통과 사이비와 이단, 명암이 꼭 그렇게 갈리는 것은 아니다

백련교도(명교도)들은 모든 사람이 가족이고, 교우관계를 부모형제자매관계와 같이 보도록 권했으며 신도들 상호간에 서로 돕고 남녀평등을 말했다고 한다. 이런 이념은 피폐한 현실에 시달리는 농민들의 마음에 들불처럼 번져나가 하나의 결사를 이루고 천하를 바꾸는 힘으로 작용했다.

유명한 무협작가 김용선생의 소설 <의천도룡기>에 나오는 주인공 장무기는 정파(正派)의 대표격인 무당파의 제오협 장취산을 아버지로, 사악한 사이비 집단 명교의 한 무리인 천응교의 교주 은천정의 딸 은소소를 어머니로 태어났다. 출생부터가 정파와 사파를 친가와 외가로 둔 셈이다. 이러한 장무기가 경험하는 강호의 세계는 정파가 이름 그대로 정의롭지만은 않았다. 정의를 수호한다는 문파들이 악한 짓을 서슴없이 하는 걸 목격하는가 하면 사파로 지목된 이들이 힘없는 이들을 도와 그들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걸 보며 강호에서 정파와 사파의 구별이 분명히 갈리는 게 아니라는 깨달음에 이른다.
장무기는 어머니 은소소의 친인척들이며 그의 외가인 명교의 교주가 되어 활동한다.

사이비, 이단으로 불리는 가르침에는 분명 진리를 외면하는 어두움이 서려있을 것이다. 그런데 백련교 혹은 명교로 불리며 중국역사 속에서 농민반란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 종교감성을 보면 그 교리에 있어서 기존의 성숙한 종교라고 불리는 집단의 가르침과 별로 다르지 않다. 오히려 백련교 무리들의 외침 속에는 개별 인간들의 구체적 소망이 펄떡거리며 하늘을 향해 외치는 생생함이 담겨있다.

이러한 하소연을 담고 일어선 농민반란이 새로운 국가를 열어놓으면 으례히 정통 유학자들이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는다는 명분으로 반란농민들의 의지처인 민중들의 종교감성을 사이비, 이단으로 몰아 산산히 흩어놓는 게 대다수였다. 명교의 무리들이 부르던 노래의 한 소절, ...해와 달을 품고 어둠속에 이 한 몸 던져 고통 많은 세상에 백련으로 피어나리라...

올 설에는 콩과 팥이 섞인 떡을 마련해 떠난 이들과 잔치를 벌여봐야

케이블 티브이로 <황비홍>을 다시 보면서 이연걸의 미소나 무예에서 시선을 돌려 거칠고 반문화적으로 그려진 백련교도들을 향한 연민에 젖어들었다. 길을 잃고 헤매는 영혼들은 어떤 삶을 살았기에 저승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살아있는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지 선명히 알 수야 없다. 그러나 조용히 새겨보면 체제에 흡수되지 못하는 사람들, 기존 종교의 울타리에서 안식을 얻지 못하고 사이비 집단(?)에 머물던 사람들, 누구에게도 그리움과 애태움을 받아보지 못한 영혼들이 아닐까 싶었다.

사람들은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이런 잡귀들이 훼방을 놓는다고 여겨 팥떡 을 해놓고 굿을 해왔다. 어둠으로 상징되는 이들이 정말 사람의 일을 훼방하였을까. 우리 모두의 어둠, 우리 인성의 나약함과 한계를 그들에게 짐지워 귀신이라고 부르며 그들을 우리 곁에서 떼어내고자 팥떡을 해놓고 굿을 하며 세속적인 성공을 빌어온 것은 아닐까.

올 설에는 제사상에 콩과 팥이 섞인 떡을 마련하여 우리 가족의 울타리 속에서 회한을 품고 떠난 이들과 잔치를 벌여봐야겠다. 귀신(鬼神)과 신명(神明)으로 나뉘어졌을 떠나간 이들을 생각해본다. 피폐한 현실에 쫓겨 백련교도 무리에 섞여 어린애다운 순전한 믿음으로 죽음을 자초한 영화 <황비홍> 속의 그 아이는 무사히 천국에 닿았을까... .


이규원/ 드라마와 소설 작가, 어린이 책읽기 교실 <글방집>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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