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태의 추적! 공자(追跡! 孔子) - 24]

예수의 짧은 생애에 걸쳐서 가장 의미 있었던 주변인은 누구일까 하고 묻는다면 답은 조금씩 엇갈릴 것이다. 그러나 다수의 사람들은 아마 세례자 요한을 거명하지 않을까 한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에 활동을 전개했고 예수는 그의 활동을 남달리 주목했던 것이 사실이다.

잘 알다시피 세례자 요한은 유대 광야에서 고고히 죄의 회개를 외치던 사람이다. 낙타 털옷을 입고 가죽 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남다른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의로움과 도덕적 순결을 주장하는 그의 곁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고 예수도 그 중 한 명으로 그로부터 세례를 받기까지 하였다.

헤롯 왕이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을 그가 비난하자 헤롯 왕은 그를 체포, 투옥하였다. 예수의 본격적인 활동이 그의 투옥을 계기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얼마 후 헤롯 왕은 결국 자신의 아내를 만족시키기 위해 요한의 목을 잘랐다. 그것이 예수의 발걸음에 심대한 영향을 주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공자의 긴 생애에 있어서 똑같은 질문을 해본다면 사람들은 누구를 거명할까? 혹자는 공자가 분신처럼 아끼고 사랑했던 제자 안연을 들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연이 공자가 가장 인정하고 아끼던 제자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공자의 삶에 크게 영향을 준 사람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안연은 공자와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면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공자마저 “안연은 나를 도와주는 자는 아니다”〔回也, 非助我者也〕라고 아쉬워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나에게 누가 묻는다면 나는 제자 자로(子路)를 얘기할 것이다. 그는 공자의 제자였지만 여느 제자와는 달랐다. 대부분의 제자들이 공자와는 30세 내지 40세, 혹은 그 이상의 나이 차이를 보였다. 그러나 자로는 공자와 불과 9세 차이였다. 다른 제자들이 공자와 이세대(異世代)였다면, 자로는 동세대(同世代)였다. 객관적 조건만으로 본다면 전형적인 사제 관계가 되기는 어려운 사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세월 동안 두 사람은 변함없는 사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자로는 무엇보다 용기로 특징지어지는 사람이었다. 공자도 자로에 대해 “용기를 좋아하는 것은 나를 능가한다”〔好勇過我〕고 인정할 정도였다. 또 그는 신의와 정의감에 충일한 사람이었다. 그가 어떤 경위로 공자의 제자가 되었는지는 어디에도 기록이 없다. 다만 논어에는 나오지 않지만 사마천의 <사기> 중니제자열전에 보면 공자가 “내가 자로를 제자로 얻은 이후부터는 남들로부터 나쁜 얘기를 듣지 않게 되었다”〔自吾得由, 惡言不聞於耳〕는 의미심장한 말이 나온다.

이 짧은 말은 몇 가지 사실을 암시해 준다. 무엇보다 자로를 만나기 이전에 공자는 사람들로부터 나쁜 이야기〔惡言〕를 많이 들었다는 사실이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무엇보다 공자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고 세류(世流)에 동참하지 않고 홀로 벗어나 있었으며 귀에 거슬리는 발언을 많이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자로는 신의가 있었고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점에서 사람들의 폭넓은 인정을 받고 있었던 것 같다. 오죽하면 그가 공자의 제자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공자에 대한 일반의 인식 개선이 이루어질 정도였을까?

많은 사람들이 자로를 신의가 있고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좋아하게 된 이유를 말해주는 일화 하나가 <좌전>에 기록으로 남아 있다. 애공 14년(기원전 481년)이니까 자로의 나이 62세 되던 해의 일이다. 노나라의 바로 아래에 인접해 있는 소주(小邾)나라의 대부 역(射)이 소주나라를 배신하고 노나라로 도망쳐 왔다.

그는 말하기를 “자로께서 보증을 서주신다면 맹세 맺는 일을 하지 않고도 제가 소유하고 있는 구역(句繹)의 땅을 노나라에 복속시키겠습니다” 하였다. 노나라로서는 횡재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자로는 이를 수치스러운 일이라며 거부하였다. 노나라의 사실상의 통치자였던 계강자(季康子)가 중간에 염유(冉有)를 넣어 “제후국의 맹약도 믿지 않고 당신의 보증을 믿겠다는 것인데 그게 어떻게 수치일 수 있느냐”며 설득하였다. 이에 자로는 “그 사람은 불충한 신하인데 그가 말하는 대로 해준다면 그것은 그를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해주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리할 수 없다” 하고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다.

자로의 사람됨은 이 한 가지 사건만을 보더라도 충분히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견고한 원칙은 자주 공자의 가르침과 충돌하였다. 이를테면 그는 군신간의 신의를 저버린 사람이라든가, 정치적 도의에 맞지 않는 행위를 한 사람과는 상종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공자는 종종 반란을 일으킨 적이 있는 문제의 인물이나 정치적 추문을 일으킨 사람의 부름에 호응하여 찾아가려 했고 실제 찾아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때마다 자로는 스승의 입장에 반대하고 심지어 스승을 성토하기도 했던 것 같다. 이런 것만 보더라도 왜 사람들이 공자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들을 했으며 또 왜 자로가 그의 제자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공자에 대한 비난을 철회하였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자로의 생각은 공자의 생각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수많은 의견 충돌에도 불구하고 자로는 그것을 알고 있었고 스승을 변함없이 존경했다. 참으로 희유한 사제 관계, 인간 관계가 아닐 수 없었다.

이제 이 모든 이야기를 일정한 원경에 배치해보자. 예수가 누구인가? 공자가 누구인가? 모두 인류의 성인들이다. 그들을 이해한다는 것은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 자신을 이해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그들에 뿌리를 두고 형성된 종교나 문화를 이해한다는 일도 종종 미궁에 빠지고 때로는 정치적 · 사회적 교란이나 아전인수격의 언설에 휘말리곤 한다. 그러므로 그들을 이해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 된다. 다수의 사람들이 그것은 자신에게 있어서는 쉬운 일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대개 자만일 뿐이다. 그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나는 한 가지 암시를 던지고 싶다. 그들 옆에 누가 있었던가를 보자는 것이다. 누가 있었던가? 세례자 요한이 있었고 자로가 있었다. 그들은 누구였던가? 두 사람은 모두 의인(義人)이었다. 그 시대의 가장 의로웠던 사람 세례자 요한과 자로가 바로 그들의 옆에서 그들의 성인됨을 뒷받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구도는 우연한 것이었을까? 그들의 가장 가까운 곳에 공통되게 의인들이 있었다는 것은 우연이었을까? 나는 그것을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500년이라는 시간의 차이, 문화적 물줄기의 완전한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똑같이 필연이었다. 푸대에 돌을 담아 흔들면 결국 큰 돌은 위로 가고 잔 돌은 아래로, 모래는 더 아래로 내려가는 것과 다름없는 이치가 그들의 가장 가까운 신변에 의인들, 세례자 요한과 자로를 각각 배치한 것이었다.

왜 그런 구도가 형성되었는지, 그런 구도가 형성된 것이 무슨 의미인지, 오늘날에 있어서 그런 구도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지 나는 이제 나 자신과 나의 독자들을 위해 화두로 남겨두려 한다. 단지 예수 이야기에는 으레 세례자 요한이 나오고 논어를 읽으면 당연히 자로라는 제자가 나오는 것 아니냐 하는 무감각한 타성은 걷어낼 필요가 있다. 그들이 예수와 공자의 곁에 있었다는 것, 그리고 두 사람 모두 그 시대 최고의 의인들이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만 다시 한 번 상기해 두기로 하자.

나머지는 우리 각자의 몫이다. 이 시대에 종교란 과연 무엇인가? 종교인은 누구며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 종교와 정치는 어떻게 관련되는가? 모든 것이 혼돈 속에서 근본적으로 되물어지는 때는 언제든 있다. 왜 성경을 읽고 왜 논어를 읽는가? 우리는 왜 교회당에 나가는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보러 나갔던가? 화두는 크고 만만치 않다. 진지하게 궁구해 보자. 우리가 그 화두를 어떻게 굴리느냐에 따라 어쩌면 너무나도 많을 것들이 그 화두 속에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이수태
연세대학교 법학과 졸업 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32년간 공직생활을 했다. 평생의 관심은 철학과 종교학이었다. 그 동안 낸 책으로는 <새번역 논어>와 <논어의 발견> 외에 에세이집 <어른 되기의 어려움>, <상처는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다> 등이 있다. 제5회 객석 예술평론상, 제1회 시대의 에세이스트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퇴직 후 현재는 강의와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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