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5년, 지금은 – 2] 소유권 · 재산권을 넘어 주거권으로

우리는 매일 쫓겨나지 않기 위해 애쓰며 산다. 대부분의 세입자들은 2년마다 임대 계약을 해지당하지 않기 위해서,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해야 한다. 매달 월세를 지불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안정된 주거지를 보장받지 못하는 것은 비단 재개발로 인한 철거민, 홈리스, 쪽방촌에 살아가는 사람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살던 집에서 타의에 의해 쫓겨나지 않으려고 애쓰는 동안 느끼는 불안감은 그들과 다르지 않다. 

‘주거권’이란 살고자 하는 곳에서 살고 싶은 대로 원하는 시간동안 살아갈 권리다. 그러나 주거의 터전이든, 생계를 위한 터전이든 그 어느 곳에서도 우리는 너무 쉽게 쫓겨난다. 왜 우리는 늘 유목의 삶을 살아야 할까. 주거의 권리보다 소유권과 재산권이 우선이 되고 있는 현실이 과연 당연한 일일까?

2009년 1월 용산참사를 계기로 강제퇴거금지법, 세입자보호법 등 주거권에 관련된 법안이 상정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표류 중이며, 한국 사회에서 주거권은 아직 법률적 권리로 자리 잡지 못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헌법은 35조 3항에서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 용산참사 5주기 추모제가 열린 지난 18일, 참사 현장인 남일당 터를 둘러싸고 있는 펜스 위에 참가자들이 국화를 꽂았다. ⓒ정현진 기자

한국 정부가 이행해야 할 주거권에 대한 국제 조약도 있다. 1990년 7월 한국은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 가입했고, 이 규약 11조 1항에서는 “이 규약의 당사국은 모든 사람이 적당한 식량, 의복 및 주택을 포함하여 자기 자신과 가정을 위한 적당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와 생활조건을 지속적으로 개선할 권리를 갖는 것을 인정한다. 당사국은 그러한 취지에서 자유로운 동의에 입각한 국제적 협력의 본질적인 중요성을 인정하고, 그 권리의 실현을 확보하기 위한 적당한 조치를 취한다”고, 국민의 주거권 보장을 위한 국가의 의무를 규정한다.

이 규약의 해석 문건인 ‘일반 논평 4’에서 위의 주거권은 7가지 사항을 포함한다고 이른다. 즉 ▲점유의 법적 보장, ▲서비스, 물자, 시설, 인프라에 대한 가용성, ▲비용의 적정성, ▲거주 가능성, ▲접근성, ▲위치, ▲문화적 적절성 등이다.

이 7가지 사항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점유의 법적 보장’은 점유의 법적 형태와 상관없이 주거 자체의 중요성을 존중하고 현재 주거 상태를 우선시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미 살고 있는 세입자의 권리가 우선임은 물론, 주택이나 토지를 비공식적으로 점유하고 살아가는 경우도 포함된다. 또 상하수도와 같은 기본적인 시설을 포함해 학교, 병원 등의 공공시설을 누릴 수 있는가, 주택의 구입이나 임대 비용은 너무 비싸지 않은가, 주거 면적이나 용도별 공간 등 구조와 기능은 적합한가, 거주지를 둘러싼 지리적 · 문화적 환경은 적절한가 등으로 물을 수 있다.

주거권 보장은 법적 차원 이전에 사회적 합의의 문제
소유권 · 재산권의 절대적 행사…당연하지 않아

외국은 ‘주거권’을 어떻게 보장하고 있을까. 프랑스의 경우 임대차 계약 기간은 기본이 10년, 영국은 7년이다. 세입자는 이 기간 동안 최소한 임대료 상승이나 이주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다. 또 상가 임대의 경우 소위 ‘권리금’이라는 시설투자비나 상권 형성에 대한 권리는 ‘영업권’으로서 법적 보호를 받는다. 만일 임대인이 세입자의 계약갱신을 거부하려면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세입자가 형성한 영업권에 대한 가치를 보상해줘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주거와 영업의 권리를 보장하는 맥락에서 중요한 것은 법적인 차원 이전에 주거와 영업의 권리를 당연히 보장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다.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미류 씨는 주거권은 ‘인권’이며 법보다 상위 개념에서 이해하고 보장되어야 한다면서, “주거권이 왜 인권인지 이야기하고, 이런 논의가 보편화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 ‘집’이 살기 위한 곳이 아니라 ‘팔기 위한 것’으로 인식되고, 주거권보다 ‘재산권’과 ‘소유권’이 우선시된다고 지적하면서, 주거는 개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정부가 보장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주거권이 살던 곳에서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하고 쫓겨나는 모든 이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사진은 지난해 포클레인 앞을 지키며 밀양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모습 ⓒ정현진 기자

미류 씨는 “우선 건물주, 소유권, 재산권이 불가침의 영역이라는 인식이 문제다. 하지만 이런 권리는 자연스레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법이 보장해주고 내버려두니까 행사되는 것”이라며 “건물을 소유했다는 이유로 세입자들의 삶의 권리까지 가진 것은 아니다. 소유권과 점유권 사이에서 경계를 만드는 것이 법의 역할이고, 그 테두리 안에서 각각 보장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세입자들은 2년마다 주거지를 바꿔야 하고, 그 비용에 대한 불안감을 항상 갖고 있다. ‘나가라’는 말 한마디로 끝나버리는 상황에서 세입자들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주거 유지를 위해서 소득을 따로 배분하고 모아야 하는 것, 부동산 시장 향방에 따라 재산이 좌우되는 것도 모두 주거권의 문제다. 주거권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미류 씨는 ‘주거권’에 대한 인식은 누가 누구에게 설명해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시민들이 직접 겪고 있는 문제라면서, “중요한 것은 주거 문제와 관련된 걱정, 불만, 불안감을 개인 차원에서 겪고 마는 것이 아니라, 모아서 사회적 화두로 키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안정적인 주거를 보장받을 권리를 위해서 인식의 전환과 함께 소소한 권리를 주장하고 되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과 같은 법적인 문제를 촉구하고, 동네에서 부당한 소유주에 대해 주민들이 연대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또 집주인이 정하는 임대료에 대해 지자체 차원에서 적정 임대료를 정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미 삶의 문제인 주거권…사회적 화두로 키워야

미류 씨는 주거권이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만큼 살아갈 권리라면, 살던 곳에서 살지 못하고 쫓겨나는 모든 이들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밀양과 제주 강정마을 역시 주거권의 문제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인권을 여러 영역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고 있지만, ‘인권’은 내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서 함께 도모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 수 있는 권리다. 그렇다면 주거권은 내가 이 집에서, 마을에서 얼마동안,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계획할 수 있는 권리다. 그런데 밀양이나 강정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내 의지가 아닌 국가의 강요로 내가 살던 마을에서 살 수 없게 되고, 쫓겨나지는 않더라도 이전과는 전혀 다른 마을에서 살아야만 하는 것 역시 주거권의 박탈이다.”

미류 씨는 국민들의 주거권을 보장하고 내쫓기지 않도록 보호해야 할 국가가 헌법을 넘어 소유권을 옹호하고, 오히려 폭력으로 몰아내는 것은 “살고 싶은 대로 살고 싶은 의지를 꺾는 일”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삶에 대한 질문 자체를 무력화하는 국가폭력과 구조에 대해 물리적 폭력 이상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정말 이대로 쫓겨나는 것이 당연한가”라는 질문을 품고 그 부당함을 계속 이야기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