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프란치스코의 권고 <복음의 기쁨> 25-33항 번역문

 
II. 사목 활동과 전환

25. 저는 오늘날의 문헌들이 과거와 같은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빨리 잊혀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제가 이 자리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실용적인 의의와 중요한 결과를 갖는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저는 모든 공동체가 사목에서 또 선교에서 지금처럼 남아있지 않고 전환의 길을 따라 걷는데 필요한 노력을 다하길 희망합니다. “단순한 경영”은 더 이상 충분할 수 없습니다. 전 세계에 어디든지 우리는 “항상 파견의 상태”에 있어야 합니다.

26. 바오로 6세는 쇄신을 심화시키라고, 또한 쇄신이 개인들뿐만 아니라 전체 교회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라고 초대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우리를 자극하는 기념비적인 텍스트로 돌아갑시다.

“교회는 통찰의 눈으로 자신의 안을 바라봐야 합니다. 교회의 신비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생생하고 또렷한 교회의 자기 인식은 마땅히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거룩하고 흠 없는 신부로서 바라보고 사랑하시는 교회의 이상적 모습(에페소 5:27)과 오늘날 세상에 보여주고 있는 교회의 실제 모습을 비교할 수 있게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교회가 지체하지 않고 용맹하게 쇄신의 길에 나서게 하는 원천입니다. 교회의 구성원들이 지닌 결점들을 교정하려는 투쟁, 그리고 교회 자신을 교회의 모범이신 그리스도에 비추어 검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의 전환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충실성에서 나오는 끊임없는 자기 쇄신에 대한 개방성으로 제시했습니다.

“교회의 모든 쇄신은 본질적으로 교회 소명에 충실성의 증대에 있다. 나그네 길에 있는 교회는 그 자체로서 또 인간적인 지상의 제도로서 언제나 필요한 이 개혁을 끊임없이 계속하도록 그리스도께 부름 받고 있습니다.”

복음화에 기울이는 노력을 방해할 수 있는 교회의 구조들이 있다. 좋은 구조들이라 하더라도 끊임없이 이것을 유지하고 평가하는 생명력이 있을 때야 비로소 이 구조가 우리에게 도움이 됩니다. 새로운 생명과 참된 복음 정신과 “부르심에 대한 충실성”이 교회에 없다면, 어떠한 새로운 구조들도 곧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미룰 수 없는 교회 쇄신

27. 저는 “선교의 선택”을 꿈꾸고 있습니다. 즉 모든 것을 변형시킬 수 있는 선교를 위한 자극 말입니다. 교회의 관습, 행동방식, 시간과 일정, 언어와 구조가 교회의 자기 보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날 세상의 복음화를 위해 적합하게 길을 열어줄 수 있는 그런 변형을 꿈꾸고 있습니다. 사목의 전환이 요구하는 구조의 쇄신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조들을 보다 사명 지향적인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 모든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일상적인 사목 활동을 보다 포괄적이고 개방적으로 만들려는 노력, 사목 활동가들에게 쉼 없이 길을 나서게 하려는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노력, 그리고 이런 방법으로 예수님께서 당신의 벗으로 부르신 모든 사람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 노력으로 말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오세아니아의 주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쇄신이 교회의 내부로 향하려는 미끼에 걸려들지 않으려면 그 목표로서 사명(mission)을 가져야만 한다.”

28. 본당은 구시대의 제도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본당은 엄청난 유연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당은 사목자와 공동체의 개방성과 선교의 창조성에 따라서 매우 다른 경로를 취할 수 있습니다. 본당이 복음화를 위한 유일한 제도는 아니지만, 만일 자기 쇄신과 끊임없는 적응을 할 수 있다면, 본당은 계속해서 “그 자녀들의 가정들 한 가운데서 살아 있는 교회”(26)가 됩니다. 이것은 본당 사람들의 생활과 가정을 만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거나 혹은 선택된 몇 사람끼리의 폐쇄된 무리에 불과한 불필요한 제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당은 특정 지역에 존재하는 교회입니다. 본당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그리스도교 생활의 성장을 위해, 대화와 선포와 사랑의 확장과, 경신례와 기념을 위한 환경입니다. 모든 활동에서 본당은 그 구성원들을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훈련시키고 격려합니다. 공동체 중의 공동체이며, 목마른 사람이 그 여정 중에 물을 마시는 거룩한 곳이며, 선교 활동의 중심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본당을 검토하고 새롭게 하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본당을 사람들에게 더 가깝게 만들고, 본당을 살아있는 친교와 참여의 장으로 만들고, 본당을 철저하게 사명 지향적인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29. 다른 교회 기구들, 기초 공동체들, 작은 공동체들, 사회운동들, 그리고 연합체들은 교회를 풍요롭게 하는 원천입니다. 성령께서는 서로 다른 영역과 분야를 복음화 하기 위해 이들을 자라게 한다. 그것들은 자주 복음화를 위한 새로운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교회를 새롭게 하는 세상과 대화할 새로운 힘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풍요로움을 갖고 있는 지역 본당과 결합하고, 지역 교회(a particular Church)의 전반적 사목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그들에게도 유익하다는 것이 드러날 것입니다. 이런 종류의 통합은 우리가 복음에만 혹은 교회에만 집중하지 않도록 막아줄 것이며, 뿌리가 없는 단자들이 되는 것을 막아줄 것이다.

30. 관할 주교가 이끄는 가톨릭교회로서 각 지역 교회도 마찬가지로 선교의 전환을 이루어야 합니다. 지역 교회는 복음화의 제1의 주체입니다. 왜냐하면 지역 교회는 어떤 특정 지역에 있는 하나의 교회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며, 그 지역 교회 안에서 “하나이며,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온 그리스도의 교회가 진정으로 현존하고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지역 교회는 특정 지역에 구체화된 교회로서, 그리스도께서 주신 구원의 모든 수단을 갖추고 있지만, 지역적 특성을 갖는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전달되는 지역교회의 기쁨은 그분을 모르는 곳에 그분을 전파하려는 관심으로, 동시에 새로운 사회문화적 배경을 갖는 곳이나 자기 지역의 변두리로 끊임없이 길을 나섬으로써 드러납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빛과 생명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나 지역교회는 그곳에 기꺼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선교 정신에 집중하여 활발히 결실을 맺기 위해, 저는 각 지역교회가 식별, 정화, 그리고 개혁의 적절한 과정을 밟기를 권고합니다.

31. 주교는 믿는 이들이 한 마음 한 영혼이었던 초대 그리스도 공동체의 이상을 따라서(사도행전 4,32 참조), 항상 자기 교구 안에서 이 선교의 친교를 발전시켜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주교는 자기 백성 앞에 나서서 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그들의 희망을 살려야 합니다. 때로는, 단순히 그들 가운데 겸손하고 자비로운 존재로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그들 가운데 뒤처지는 사람을 도우며 뒤를 따라야 합니다. 혹은 과감히 새로운 길로 접어드는 그들을 따라야 합니다. 역동적이며 개방적이며 선교적인 친교를 촉진해야 하는 사명에 따라, 그는 교회법이 제시하는 참여의 방법들과 다른 형태의 사목의 대화를 촉진하고 발전시켜야 합니다. 이 때 그는 그가 듣고 싶어 하는 것을 말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참여 과정의 주요 목적이 교회의 조직이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오히려 모든 이에게 다가가려는 선교의 열정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32. 제가 다른 이들에게 요구하는 것을 저 자신도 실천해야 마땅하기 때문에, 저 역시 교황권의 전환에 대해서 생각해야만 할 것입니다. 로마의 주교로서 저의 직무에 대해 제안한 것들을 개방적으로 검토할 것입니다. 그 제안들은 저의 직무 수행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직무에 부여하려 하셨던 의미에 보다 충실한 것이 되도록, 또한 오늘날의 복음화의 필요성에 보다 충실한 것이 되도록 하는 것들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수위권이 그 사명에 핵심적인 것임을 부정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상황에 개방되어 있는 수위권 행사 방법을” 찾는데 도움을 청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는 그다지 진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교황직과 보편교회의 중앙구조들 역시 사목 전환(pastoral conversion)의 요청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초기 총대주교좌 교회들(the ancient patriarchal Churches)과 마찬가지로 주교회의들(episcopal conferences)이 “단체정신(합의체적 정신 collegial spirit)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여러 많은 실질적 방법에 기여할” 위치에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런 바람은 온전하게 실현되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교회의의 법률적 지위가 아직은 충분히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주교회의의 법률적 지위를 교의의 권위(doctrinal authority)를 포함해서 구체적인 직권을 가진 주체로 볼 수 있는 정도로까지는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과도한 중앙 집중화는 도움을 주기보다 교회의 생활과 교회의 선교 확대를 복잡하게 합니다.

33. 선교의 핵심에서 사목 직무는 “우리는 이미 그런 식으로 다 했어”하고 말하는 자기만족의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저는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공동체에서 복음화의 목표, 구조, 스타일과 방법을 다시 생각하는 이 과업에서 과감하고 창의적이기를 바랍니다. 목표를 성취하는 수단을 자치적으로 찾지 않고 세운 목표는 필연적으로 환상임이 드러날 것입니다. 저는 모든 사람이 이 문헌에서 제시한 지침을 두려움이나 거리낌 없이, 그리고 용감하게 그리고 활발하게 적용하기를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현명하고 현실적인 사목적 식별 속에서 특히 주교들의 지도를 따라서 서로 형제로서 자매로서 서로 의지하며 행하는 것입니다.


번역: 박동호 신부
서울대교구 신정동 성당,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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