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국수집 이야기]

 

자본의 힘과 폭력이 더욱 기세를 떨칩니다. 부자가 되기 위해, 경제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건 경쟁을 합니다. 그렇게 해서 놀랄 만한 경제 성장을 했고, 생활도 윤택해졌습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우리는 인간 존엄성을 뒤로 미뤄 놓았습니다. 경제를 살리자면서 해서는 안 될 일들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경제를 살리자면서 미뤄서는 안 될 일들을 너무 많이 미뤘습니다. 욕심 때문에 모두가 적으로 보이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경쟁에서 도태된 사람은 짐승 취급을 받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가장 귀한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는 형제자매를 잃어버렸습니다.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우선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힘없고 가난해서 세상에서 소외되고 고통을 겪는 짐승 같은 삶 속에서 하느님 나라의 씨앗이 움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발적 나눔으로 욕심에서 해방되어 하느님께만 매달릴 때 적으로 보였던 사람들 안에서 형제자매를 보게 됩니다. 잃어버렸던 형제자매를 만나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용진씨가 혜순씨와 손을 잡고 오는데 얼굴이 창백합니다. 왜 그런지 물어보았습니다.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다가 넘어지면서 난간에 부딪쳤는데 연골이 상했다고 합니다.  병원에서도 움직이지 말고 안정을 취하라고 하는데 쉴 곳도 없고 배도 고프고 그래서 왔다고 합니다.

지내는 곳이 어딘지 물어보았습니다.  서울역 근처인 동자동에서 지내는데 몸이 아파서 일을 못했더니 방세 낼 길이 없어서 쫓겨나서 빈집에서 노숙하고 있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이제는 연골까지 다쳤으니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울먹입니다. 방을 구해 볼 테니 오늘은 서울 가셔서 짐을 챙겨서 내일 오시라고 했습니다.

급히 방을 구을 구하러 다녔습니다.  요즘은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주머니 사정이 조금 여유가 있습니다.  보증금 100만원에 월 10만원 하는 사글세방입니다. 작은 방이 두 개나 됩니다.  용진씨는 59년생입니다. 죽도록 막노동을 하면서 살았는데 돈도 못 모았습니다. 일하다가 몸을 다쳐 몇 년 전부터 노숙자 쉼터에서 밥도 얻어먹고 봉사도 하다가 혜순씨를 만났다고 합니다. 혜순씨는 73년생인데 지적장애 2급입니다. 집을 나와서 거리를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함께 삽니다. 조그만 가방 하나가 이삿짐의 전부입니다. 집이 너무 좋다고 좋아합니다. 몸이 나아서 일 할 수 있을 때까지 옆에서 거들어주겠다고 했습니다.

인천교구 사회복지회에서 어려운 가정이 있는데 도와줄 수 없는지 물어봅니다.  기꺼이 돕겠다고 했습니다.  막노동을 하는 아빠와 고1 딸, 중2 아들이 몇 달을 집세를 내지 못해서 모든 물건을 차압당하고 입던 옷만으로 나와 있다고 합니다.  집달리에게 쫓겨나 찜질방에 함께 있다가 돈이 떨어져서 아이들은 딸의 친구 집에 있는데 곧 나와야 한답니다. 아이 아빠는 역 근처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방을 구하러 다녔습니다.  동네에 재개발 열풍이 불어서 외지인들이 집을 사 놓고 집세를 많이 올려놓았습니다.  방 두 칸이라도 있는 집은 500만원에 월 20만원이라고 합니다.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저녁 무렵에야 겨우 방을 하나 구했습니다.  단칸방입니다.  보증금 100만원에 월 16만원입니다.  도시가스입니다.  아빠와 딸과 아들인데 아무래도 방 두 칸은 있어야 하는데, 고민하다가 용진씨와 혜순씨에게 어려운 가족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방을 바꾸자고 했더니 좋다고 합니다. 자기들이 어려울 때도 도와줬는데 민들레국수집이 도와줬는데 당연히 해야 한다고 합니다.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 가족을 만났습니다. 아이들 아버지는 마흔네 살입니다. 딸이 6살 때 이혼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아이 둘과 함께 살았다고 합니다.  조그만 아파트에 보증금 천만 원에 월 40만원하는 사글세를 체납해서 보증금도 다 없어졌다고 합니다. 집주인이 법원에 압류 신청을 해서 가재도구를 압류 당했다고 합니다. 일주일 안에 200만원을 마련하지 못하면 가재도구를 경매 처분한다고 하는데 돈 마련할 길이 없다고 합니다.

아이 아버지는 비정규직으로 대우자동차에 근무할 때만 해도 사는 것이 힘겹지 않았는데 해고된 후에 하청회사에서 일용직으로 일을 죽어라고 해도 한 달에 칠십만 원 벌기도 어려웠답니다. 집세 독촉, 빚 독촉에 사는 게 죽는 것보다 힘들었다고 합니다.   

이삿짐이 하나도 없습니다.  민들레국수집에 있는 이불과 그릇 그리고 수저 등등을 챙겨주었습니다. 냉장고와 텔레비전 그리고 전기밥솥을 마련하러 중고 가게에 다녀왔습니다.  세탁기는 놓을 자리가 없어서 포기했습니다.  쌀과 라면 그리고 반찬도 조금 나눠드리고요.  슈퍼마켓에 가서 비누, 소금, 간장, 식용유, 냄비, 프라이팬, 화장지 등등을 샀습니다. 

수건을 가져다주면서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가족이 함께 잘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합니다.  찜질방보다 훨씬 편하게 잘 잤다고 합니다. 죽도록 일했는데도 살아갈 길 없이 벼랑 끝으로 내몰린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합니다. 가난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악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따뜻한 느낌이 벼랑 끝으로 내몰렸던 가족들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었습니다.  

서영남/ 인천에 있는 민들레국수집을 운영하면서 노숙자 등 가난한 이웃들과 더불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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