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열의 음악과 나 - 19]

▲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수년 전에 천재 음악가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끈 적이 있었습니다. <베토벤 바이러스>나 <다섯 손가락> 등. 이러한 음악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절대음감을 가지고 태어났으나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우연히 건반 여러 개를 동시에 누르는 소리를 듣고 무슨 음인지 구별해낸 일로 해서나, 어떤 곡을 한 번 듣고서 틀리지 않고 그대로 연주해낸 일로 해서, 자신에게 절대음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천재들이었습니다.

다른 아이들보다 늦게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먼저 악기를 배운 아이들보다 실력이 더 뛰어난 바람에 시샘의 대상이 되었다거나, 특별한 재능을 발견한 선생에 의해 강도 높은 훈련을 받게 되고, 음악에 대한 남다른 열정으로 노력을 거듭한 결과, 드디어 음악계의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는 여러 가지 핸디캡을 지닌 연주자들로 오케스트라를 급조하였지만, 수많은 역경과 갈등을 이겨내고 멋진 공연을 한다는 스토리로 드라마를 끌고나가기도 합니다. 시청자들은 드라마의 줄거리가 복선을 깔고 반전될 때마다 비상한 관심과 궁금증을 가지고 드라마의 진행 상황을 지켜봅니다.

드라마의 중간 중간에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장면을 지켜본 시청자들이 다음날 방송국에 전화해 어떤 곡인지 물어보는 일까지 있었다고 하니, 기획한 사람들로서는 상당히 고무되었을 법합니다. 드라마가 종영되고 나서도 드라마에 삽입된 곡들을 모아서 제작한 음반이 인기리에 팔렸다는 뒷이야기까지 있었지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음악을 전공하진 않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은 전공자들 못지않은 시청자들의 동경심과 기대가 드라마에 투사된 탓일 수 있다고 분석한 평론가도 있었습니다.

음악을 소재로 한 많은 드라마가 대개 해피엔딩으로 끝나곤 했습니다. 하지만 음악가를 다룬 영화는 드라마와 다른 속성을 지닌 탓인지 꼭 그렇진 않았습니다. <아마데우스>나 <슈베르트의 생애>, <미완성 교향곡>, <아베마리아>, <카핑 베토벤>, <불멸의 연인>, <에로이카> 등과 같은 영화는 음악가의 생애가 사람들에게 너무 잘 알려져 있었던 탓에, 영화의 결말을 어떻게 달리 해볼 수 없었던 예라고 할 수 있겠지요.

영화로 인해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곡이 널리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에, 음악을 소재로 한 영화가 미국에서 만들어져서 아주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오케스트라의 소녀>라는 영화인데, 우리나라에도 수입되어 상영된 적이 있었습니다만, 영화에서 소녀가 불렀던 노래, 모차르트의 ‘알렐루야’가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그때서부터 이 곡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는 일화까지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사건의 발단은 주인공이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부터 시작합니다. 절대음감은 다른 음을 전혀 듣지 않은 상태에서 어떠한 음만을 듣고 그 음의 계명을 말할 수 있는 능력으로, 유전적인 특징과 조기 음악 교육이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절대음감을 지닌 사람들은 거의 모두 6세 이전에 음악 교육을 시작한 사람들이었으며, 음악 교육을 받기 시작한 시기가 빠르면 빠를수록 절대음감을 갖게 될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 때, 아니 어쩌면 지금 이 순간도 한 번 일기 시작한 조기 음악 교육 열풍이 식지 않고 있는 것일지 모릅니다.

절대음감에도 여러 종류가 있고, 특별한 음색(또는 악기)이나 하나의 음에 대해서만 절대음감을 갖는 경우도 있습니다. 절대음감을 갖고 있지 못한 사람들은 절대음감을 가진 음악가들을 부러워하지만, 인지심리학자인 레비틴은 절대음감에 대해 좀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음악성의 지표로 여겨지는 ‘절대음감’도 실은 그렇게 드문 현상이 아니며, 누구라도 적절한 시기에 교육을 받기만 하면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언어능력을 타고났듯이, 음악능력도 모든 이에게 잠재되어 있는 본능에 속한다. 따라서 타고난 능력을 지닌 소수의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전문분야가 음악이라는 생각은 서구사회에서 산업화 과정이 시작되면서 생겨난 문화적 편견일 뿐이다.”

다시 말하면 “절대음감은 누구나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지만, 성장하면서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은 탓에, 적절한 시기에 음악 교육을 받지 못하면 피치(음의 높이. 음이 가진 진동수에 의해 결정됨) 보존 능력이 중요하지 않은 감각으로 되어 결국 절대음감을 잃고 만다”고 보는 것이지요. 또 절대음감이 음악가들에게 유리한 점이 있기는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고, 때로는 불리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즉 어떤 선율을 조바꿈해서 연주할 때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들의 경우 그것이 어렵다는 것이지요. 그들에게는 음정의 관계에 대한 즉각적 지각이 결여되어 있어 오히려 조성음악을 듣는데 불편함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절대음감과 같이 타고난 자질도 중요하긴 하지만,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서 위대한 음악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그너, 슈만, 베버, 베를리오즈, 라벨 등은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음악가로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음악가가 되었던 것을 보면, 절대음감이 위대한 음악가가 되기에 필요충분조건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위대한 음악가가 된다는 것은 좋은 스승 밑에서의 엄한 훈련과 스스로의 부단한 노력,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의 음악적 경험과 원숙미가, 타고난 음악적 자질에 보태어져야 가능한 일일지 모릅니다.
 

 
 
이광열
학교 졸업 후 건설회사에 입사해 줄곧 국내외 현장에서 근무했다. 저서로 <종교와 나>, <건설 현장과 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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