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열의 음악과 나 - 18]

일을 하다가 잠시 머리도 식힐 겸 음악을 듣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듣게 된 음악이 레나타 테발디가 불렀던 푸치니의 오페라 <쟌니 스키키(Gianni Schicchi)> 중에 나오는 아리아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O mio babbio caro)’였습니다.

그런데 곡을 듣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테발디가 아니고 마리아 칼라스라면 이 곡을 어떻게 불렀을까. 이 곡은 길이가 3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곡이기 때문에 다른 가수들이 부른 곡도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이름이 많이 알려진 가수들과 유튜브 상에 조회수가 많은 가수들이 불렀던 곡을 차례로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가수들의 명성이나 인터넷 조회수만으로도 그들의 인기도나 역량을 알 수 있었지만, 짧은 한 곡을 가지고도 그들은 개성에 걸맞게 불렀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음색이 서로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치더라도, 템포나 음역대, 표현 등에 있어서 똑같은 가수가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은 아주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테발디가 불렀던 곡을 들었을 때는 목소리가 소프라노 치고는 저음이었고, 하나로 죽 연결해서 노래를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마 나이가 40대 중반에 들어서 불렀던 곡을 듣다보니, 그녀가 데뷔할 때 토스카니니가 붙여준 ‘천사의 목소리’라는 별명이 좀 빛을 발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반면에 칼라스가 불렀던 곡은 소리가 맑고 중음역과 고음역 모두에서 소리에 여유가 있었지만, 녹음 상태가 좋지 않아서 그런지 왠지 모르게 좀 아쉬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칼라스와 테발디를 합쳐 놓은 것 같다’는 평가를 받았던 몽세라 카바예가 불렀던 곡은 곡 전체에서 긴장감과 간절함이 느껴졌고, 특히 고음역에서의 메차 보체(mezza voce, 고음에서 음량을 줄여 여리고 부드러운 음으로 노래하는 것)는 들으면 들을수록 또 듣고 싶은 중독성이 있었습니다.

안젤라 게오르규가 불렀던 것도 조회수가 150만을 넘었는데, ‘가창력과 미모, 카리스마를 모두 갖춘 소프라노’라는 평가가 실감날 정도로 매력적이었습니다. 고혹적인 음색에 서두르지 않는 여유, 고음에서의 긴 여운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탈리아 최고의 리릭 소프라노’라는 찬사를 들었던 미렐라 프레니가 부른 것도 들어 보았는데, 무리하지 않는 음역 내에서 풍부한 성량을 바탕으로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열창하는 것이 듣기에 좋았습니다.

‘디바 이상의 디바’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레나타 스코토가 연기한 동영상도 보았는데, 누구라도 이 동영상을 보게 되면 아마 이 곡에 대한 이해가 더 빠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곡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 수 없다면 차라리 죽어버리겠다고 딸 라우레타가 아버지 쟌니 스키키를 붙들고 도와달라고 매달리는 노래입니다. “아빠, 저희는 결혼반지를 사러 가기로 약속했어요. 하지만 리누치오와 결혼할 수 없다면 저는 베키오 다리로 달려가 아르노 강에 빠져 죽어버릴 거예요. 그러니 아빠, 제발 저희를 도와주세요!”

스코토의 연기 또한 노래 못지않게 일품이어서, 유산 상속의 기대가 물거품이 되었다고 생각한 리누치오의 친척들이 라우레타의 아버지를 보고 비웃자, 이에 분노하여 뒤돌아서서 가는 아버지의 팔을 붙들고, 아버지의 등 뒤에서 아버지의 반응을 슬쩍슬쩍 훔쳐보며 미소를 지으며 노래를 부르다가, 아버지가 돌아보면 금세 심각한 얼굴이 되어 아버지의 손등에 연신 입을 맞추며 애절하게 노래하는 모습은 정말 연극배우 이상의 리얼한 연기였습니다. 목소리도 중음역과 고음역 모두에서 안정적인 톤을 유지한 채 여유와 호소력을 가지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여러 가수들이 부른 것을 들은 뒤에 떠올랐던 생각은 이 곡은 짧은 곡이긴 하지만 극 중 이야기의 전개와 관련지어 보면, 서두르지 않고 여유 있게 불렀을 때 극이 가진 분위기를 더 잘 살릴 수 있고, 또 그만큼 가수가 가진 자질과 개성을 더 잘 드러낼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에서 열거했던 가수들 외에도 여러 가수들이 이 곡을 불렀지만, 이 한 곡을 가지고 가수들의 이모저모를 평가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가수마다 구별되는 개성과 역량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가수에 따라 자신의 목소리와 맞지 않는 오페라의 주연은 맡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웠던 가수(카라얀이 프레니에게 <투란도트>의 타이틀 롤을 제안했을 때 그녀가 거절했던 것처럼)도 있었지만, 2분 30초에 지나지 않은 짧은 아리아에도 그녀들만이 가지고 있는 개성과 역량, 표현력이 여실히 드러날 수 있는 것을 볼 때, 듣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이 또한 나름대로 오페라 공부와 재미라고 할 것입니다.

이처럼 같은 곡에 대해서도 가수들의 해석과 표현이 각기 다른 것을 보면,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두고 사람들의 생각과 반응이 각기 다른 것은 그 또한 어쩌면 당연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음악을 즐겨듣다 보면 특정 가수에게 집착할 수도 있지만, 같은 곡을 이처럼 달리 부르는 가수들이 있어서 음악이란 세계가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가수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 있는 것을 생각하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고 삶을 살아가는 이치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이광열
학교 졸업 후 건설회사에 입사해 줄곧 국내외 현장에서 근무했다. 저서로 <종교와 나>, <건설 현장과 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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