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힘이 세다―김근태 할아버지의 인권 이야기>, 우현옥 글 · 이욱재 그림, 꿈꾸는꼬리연, 2013

내 귀여운 아이들아,
너희들하고 놀아 주지도 못하고 애비가 어디 가서 오래 못 와도
슬퍼하거나 마음이 약해져선 안 된다.
외로울 때는 엄마랑 들에도 나가 보고
봄 오는 소리를 들어 봐야지.
바람이 차거들랑 옷깃 잘 여며 감기 들지 않도록 조심하고.

―김근태, ‘항소 이유서’(1986. 5. 3) 중에서

너는 햇살이었다. 내가 네 이름을 불렀다. 신새벽 뒷골목에서 숨죽여가며 몰래 적었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지칭하듯이 간절하면서 조심스럽게 불렀던 민주주의. 민주주의자 김근태! 이 말에 참으로 힘겹게 이 땅에 뿌리내려왔던 민주주의를 위해 평생을 헌신했던 인간 김근태의 생애가 오롯이 압축되어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만신전으로 들어선 김근태의 생애가 우리를 벌떡 일으켜 세우는 한 편의 동화로 그려졌다.

이 동화는 해맑게 자랐던 어린 시절, 반독재 투쟁에 몸담았던 시절을 그려내는데, 특히 체포되어 끔찍한 고문을 당하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인간적 가치, 인권의 소중함을 위해 싸우는 장면에서 절정을 이룬다. 동화란 대체로 아이들에게 세상을 아름답게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지 모른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에게 참혹한 고문의 풍경이 담긴 동화를 읽힐 수 있을까?

솔직히 선뜻 내키지는 않을 만하다. 그럼에도 단언컨대 아이들에게 읽혀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참으로 소중한 것은 거저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절감한다면 그걸 하찮게 여기지 않게 될 것이다. 특히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일깨우는 데에는 가슴 깊이 파고드는 섬세한 배움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 점에서 이 동화가 읽혀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단 그냥 아이에게 읽히기 전에 한 장 한 장 같이 넘겨가면서 꼼꼼한 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김근태는 전태일의 사망 소식을 접한 후 경제학자의 꿈을 접고 학교에서 세상으로 나간다. 아, 전태일. 자신의 몸을 불사른 이 청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이의 삶이 바뀌었는가. 이후 수배생활로 점철된 생활을 한다. 수배 중 부평의 작은 설렁탕집에서 인재근(현 국회의원)과 결혼했고, 첫아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도 도망 다니는 신세였다. 1980년 5월 광주항쟁, 이후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을 결성하고 초대 의장으로 선출되어 활동한다. 그러다가 1985년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끌려가 23일 동안 10여 차례에 걸쳐 온갖 잔인한 고문과 집단폭행을 당한다.

김근태는 혹독한 고문으로 파괴되지 않고 그에 맞서 싸워 이겨냈다. 그리하여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상징이 되었다.

김근태는 아내 인재근과 함께 국가가 한 사람을 파괴하는 폭력, 고문의 실상을 세상에 알리는 데 앞장섰다. 힘든 싸움 끝에 남영동 사건과 관련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이기고, 이것이 씨앗이 되어 한국은 마침내 1995년 유엔 고문방지협약에 가입한다. 김근태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아내 인재근과 함께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수상한다.

▲ <진실은 힘이 세다―김근태 할아버지의 인권 이야기>, 우현옥 글 · 이욱재 그림, 꿈꾸는꼬리연, 2013
고문, 고문. 생각만 해도 끔찍한 만행이다. 독재정권 시기에 정부는 부정하고 은폐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고문이 성행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동네에 있는 사회과학 서점에서 살짝 들여다본 두터운 고문사전은 참으로 끔찍했다.

지금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는 먼 시절의 유물처럼 느껴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고문의 잔흔은 아직도 우리에게 깊게 남아 있다. 언젠가 여럿이 산을 오르는데 그리 가파르지 않은 길에서 갑자기 아찔해 했던 한 선배. 고문의 후유증이라 했다. 이제는 예전과 같은 끔찍한 고문은 사라진 듯하다. 그렇지만 한국 사회가 인권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회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을 갖게 된다. 여전히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이 만연해 있다.

인권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과 관심이 절실한 이유다. 그것은 비단 타인의 행복뿐만 아니라 자신의 행복과도 직결되는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에 더욱 절실해진다. 김근태의 삶은 고통스러웠지만 새로운 희망과 자유의 씨앗이 되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그 희망과 자유의 씨앗을 남겨주고 떠나간 분들이 많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씨앗도 방치해두면 썩어 문드러지고 아무런 싹도 틔우지 못한다. 그 씨앗을 틔우고 키우는 심정으로 우리 아이들과 이 책을 읽어보자. 우리 아이들이 참으로 사람 소중한 세상에서 살아가게 할 힘을 줄 것이다.
 

김지환 (파블로)
마포에서 나서 한강과 와우산 자락의 기운을 받으며 살아왔다. 역사를 공부했고 그중에서도 라틴아메리카 역사를 한참 재미있게 공부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이 지역 이야기는 가슴을 뜨겁게 한다. 현재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여전히, 좋은 책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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