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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영성
본당을 넘어서는 평신도 운동2014년 천주교 평신도 운동 진단 좌담회 - 마지막 회
정현진 기자  |  regina@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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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1.16  10:3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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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석자들은 본당 중심의 신앙생활이 지닌 한계를 지적하며 ‘현장교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단기적 목표가 사라져도 지속적으로 평신도들이 모일 수 있는 구조와 교육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강한 기자

한상봉 : 평신도 운동이 1990년대 초중반 까지도 괜찮았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 이후로 급격히 주저앉은 느낌이다. 그런데 최근에 평신도 시국회의와 시국기도회, 미사가 진행되었는데, 여기에 기대를 걸어도 되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이 활동이 얼마 되지 않았고, 그 밑바탕이 된 것은 사제와 수도자들이 열어준 공간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평신도 활동은 용산참사 현장 미사에서 촉발되고, 4대강 사업 반대활동 등으로 관심이 계속 이어졌다. 여기서 만났던 이들이 뭔가 시작하고 싶다고 자각하게 된 것 같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다. ‘천주교 평신도 1만인 시국선언’을 준비하면서 왜 ‘신자’라고 하지 않고 굳이 ‘평신도’라는 말을 쓰는가 하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그만큼 평신도들의 의식이 많이 발전된 것이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평신도 운동의 흐름에 변화가 생긴 것인지, 아니면 변화가 생긴 것처럼 보이는 것인지 궁금하다. 또 한 번의 전환점에 우리가 와 있는 것인가? 교황도 바뀌고, 교회 분위기도 상당히 많이 바뀐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우리 평신도가 새로운 희망을 나눌 수 있는 전환기에 와 있다고 볼 수 있는가? 여러분의 견해는 무엇인가?

경동현 : 2008년에도 광우병 촛불에 맞춰 천주교 시국회의가 있었고 1년 넘게 매주 토요일마다 미사를 봉헌했다. 그때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는데, 꾸준히 주체적으로 참여한 사람은 70~80명 정도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변화 없이 반복되는 미사를 넘어서지 못했다. 중간에 토론회가 두 번 정도 있었지만 그것이 새로운 운동으로 확장되지 못했다. 아이디어가 없었던 것이다. 이번에 시작된 활동이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지만, 중요한 변화가 있다면,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 추진위원회에 20대 청년이 참여하고 아주 열심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청년들이 결합하는 것을 보면서 가능성이 보인다는 느낌이다. 2014년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5주년, 천주교여성공동체 20주년 등 새로운 전기를 맞는 일들이 있는데, 이런 시기를 통해서 천주교 사회운동 단체들도 전환을 시도하고, 흐름을 잘 이어가면 더 많은 가능성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을 갖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될지는 지켜봐야하겠지만.

본당을 넘어서는 연대, 본당 밖에 있는 교회에 희망 걸어
교회 제도권보다 ‘현장교회’ 더욱 중요해질 것

한상봉 : 최근에 보이는 평신도 운동의 양상을 보면, 평신도들이 본당을 넘어서, 본당 밖에서 모이는 것이다. 용산참사 때도 참사 현장을 ‘남일당본당’이라고 불렀고, 대한문 미사 역시 길거리 본당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출석부에 도장을 찍듯이 참여하는 분들이 많았다. 이러한 현상은 지역교회의 하나가 아니라 ‘본당 밖의 본당’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움직이는 본당’, 즉 ‘현장교회’라는 개념이 나오고 있다.

지금의 교회 시스템에서는 본당을 넘어서 연대하지 않으면 희망이 잘 보이지 않는다. 경동현 소장이 계속 이야기한 본당 구조와 시스템에 길들여지면 체제 순응적인 신자가 되어 가고, 어쩔 수 없이 평신도가 주체적으로 서기 어려워진다는 측면이 있다.

유정원 : 본당을 넘어서는 연대라고 했는데, 내심 반갑다. 젊었을 때, 학교 다닐 때의 느낌을 받는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예전에는 화염병 등 폭력적인 방법이 동반되었지만 지금은 아주 평화로운 방법을 구사한다. 어떻게 보면, 그런 모습에서 NGO의 세력화 같은 느낌을 받는다. 종교를 떠나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만한 세상, 하느님 나라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80년대 경험을 보면, 어느 순간 그것이 푹 꺼져버렸다. 뭔가 달성했다 싶은 순간에 사그라졌다. 지금 현상도 사회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 다시 꺼지지 않겠나, 하는 우려가 생긴다. 모두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니까. 그런 때가 왔을 때, 그리스도교 자체가 내면의 건강함을 찾지 못하면, 평신도 운동을 포함한 미래 자체가 그리 밝다고 보지 않는다.

   
▲ 좌담에 참석한 평신도 신학자 경동현 · 유정원 · 황경훈

한상봉 : 사실 본당에 남아있는 신자들도 일상에서는 교회와 유리되어 있다. 본당 신자들도 의식 안에서는 교회에 머물러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 ‘실천적으로는’ 교회를 떠난 것일 수 있다. 그 이야기를 시작하면, 우리가 지금 하는 말들이 무의미해진다.

유정원 : 교회를 분석해보면 중상층화, 노령화, 여성화 등을 이야기하고 사회적으로도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고 한다. 교회를 떠받치는 평신도들 중에 남을 사람들은 결국 상류층과 노인들뿐이고, 젊은 사람들은 사실상 교회에 남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평신도라고 칭할 사람들은 누구일까?

한상봉 : 결국 무의미해질 것이라는 뜻인가? 유럽 교회처럼 수도자, 성직자가 교회를 지키고, 평신도는 1년에 한두 번 성당 가서 인사드리고 오는. 이처럼 종교가 일종의 문화현상이 되어버린다는 말인가?

유정원 : 그래서 현장교회의 의미가 잘 존속되고, 거기서 복음이 발생하면 좋겠는데, 그걸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가 문제다.

한상봉 : 교회 안에서 교회와 더불어, 교회의 경계를 넘어서 세상에 복음을 전달하거나 나누고 있는 공동체, 이들의 집회로서의 현장교회도 중요할 수 있다.

유정원 : 현장에 젊은 친구, 새로운 얼굴이 등장했다고 하는데, 지금 본당에서는 젊은 얼굴이 거의 없다. 그렇다면 새로운 의미를 갖는 현장을 어떻게 잘 이끌고 만들어갈지 고민을 해봐야 한다.

한상봉 : 교회 제도권보다는 현장교회가 사람들을 이끌어내는 지렛대 역할을 한다는 것인가?

유정원 : 통계상으로 보면 그런 의미가 있다. 통계적으로 현장교회를 분석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현장에 나오는 분들은 어떤 관심을 갖고 있는가? 젊은이들이 왜 현장교회에 나오는가? 왜 그곳에 남아 있는가 등등.

단기적 이슈가 사라지면 현장교회도 사라지는가?
평신도 운동 미래 위해 자발적 소모임 만들어야

한상봉 : 본당 밖 구조를 생각할 때, 저는 여전히 희망 가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 든다. 다소 모호하지만, 평신도 운동이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했다는 징조로 요즘 움직임을 해석할 수 있을까? 나는 적극적 의지로 해석하고 싶다.

경동현 : 의지와 실천이 마주치면 되는 것인데, 보통 의지는 있지만, 실천이 따라주지 않았던 시간이었다. 옛날 독재 시절이 더 운동하기 좋았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일반 사회운동도 그렇고 평신도 사회운동도 활력을 찾는 때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계속 이어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유정원 씨와) 비슷한 생각이다. 단기적 목표에 따라 움직이고 그것이 사라지면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다.

단기적 목표, 이를테면 국가기관의 불법 대선 개입 문제 해결과 민주주의에 대한 접근이 달라야 하고, 평신도 운동은 또 다른 차원의 목적을 둬야 한다. 평신도 운동은 아직 막연하고 보이는 것이 없다. 같은 평신도끼리 이야기를 하면서,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 회원과 다른 평신도의 이야기가 다르고, 같은 복음을 이야기하면서도 서로 다른 개념으로 싸운다. 운동의 내공을 키워야, 단기적 이슈가 사라져도 지속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운동이 유지될 수 있다.

한상봉 : 요즘은 참여하는 이들의 외연이 넓어지고, 새로운 사람들이 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보면서, 친교에 의미 부여를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들 사이의 우정, 친교, 동지 의식이 확장되어야 운동의 질을 담보할 수 있다. 지금의 현상은 일종의 디딤돌인 것 같다.

황경훈 : 예전의 운동과는 분위기도 다르고 사람들도 다르다는 것을 갑작스러운 변화로 생각하기보다는, 변화 자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지난 6년의 세월 속에서 쌓였던 피로감으로 가라앉았던 이들이 지금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와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자꾸 ‘본당에 누가 남을 것인가’라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기보다는 본당 중심의 사고를 넘고, 경계를 넘어서 사람 중심, 현장 중심의 교회를 형성하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 유럽 교회도 제도교회 안에는 남아 있는 신자들이 별로 없지만 소모임 형태는 많아지고 있다고 들었다. 그런 소공동체 안에서 친교를 바탕으로 한 창조적이고 자발적인 모임을 만들어가면서 하나의 교회로 인정받고, 서로 성숙된다면 장기적 관점에서 긍정적이다.

직선제 쟁취, 독재 타도를 외치던 1987년 6월 항쟁의 혼을 다시 불러와서 승부하기는 어렵다. 이제는 ‘진지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과 천주교여성공동체, 우리신학연구소를 비롯한 교회 NGO들은 어떻게 그런 진지전을 잘 준비할 것인가? 장기적으로 진지전을 기획하고, 내용을 탄탄하게 만들어서 교육하고, 한편으로는 교회의 구조 개혁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동현 : 우리가 체험하는 지금 이 공간을 ‘교회’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신자들과 사제들은 본당 구조에 익숙하지만, 그 안에서도 고민하는 이들이 있다. 본당 구조 안에서 대안을 시도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변화를 두려워하지만, 고민하는 이들이 연대할 수 있다면 새로운 실험이 가능할 것이다.

한상봉 : 이 부분에서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사제들은 본당 신자들이 사적인 모임을 갖는 것을 환영하지 않는다. 신자들의 모임이 본당 신부의 관리 밖에 있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다. 하지만 본당 안팎에서 여전히 많은 모임이 산재해 있고, 그들이 어떤 형식으로든 느슨하게라도 연결되어 있으면 좋을 텐데, 본당 아니면 아예 밖으로 나가는 게 문제다. 그 중에서 어떤 이들은 대한문 미사에 참여하면서 그곳을 본당으로 삼기도 한다. 이른바 제도교회와 상관없이 신앙생활을 유지하는 이른바 ‘개별적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황경훈 : 1990년대에 그런 체험을 했다. 성서 교재를 만들어서 본당에 모임을 꾸렸는데, 인가받지 않은 것이라고 못하게 하기도 했다. 지금도 그런 배타성이 있다. 그것은 구조의 문제이지만, 당장은 성직자의 책임이 매우 크다. 사목자라면 신자들, 청년들이 뭔가 자발적으로 해보겠다면 도와줘야 하는데, 오히려 못하게 한다. 결국 기득권 유지 문제이고, 맥락상 성직자의 책임이다.

한상봉 : 그것은 사제의 경험에서 나온 책임일 수 있다. 사제들이 본당 부임하면 가장 힘든 것이 예전의 본당 내 기득권 세력이다. 신임 신부는 이전 그룹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너무 힘들고, 본당 사제 관리 영역 밖에 있는 집단에 대한 피해의식도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자연히 자기 관리 아래에 두고 싶은 것이다.

   
▲ 지난해 10월 30일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세 번째 천주교 평신도 시국기도회가 열렸다. ⓒ문양효숙 기자

“잠자는 교회도, 깨어 있는 교회도 평신도가 만든다”
평신도 운동, 기쁨 안에서 할 수 있는 방법 찾아야

한상봉 : 마지막으로 한 마디씩 정리하는 것으로 하자. 이런 고민을 하는 이들이 본당 구조에서 대다수는 아니겠지만, ‘의미 있는 소수’라는 생각이 든다. 함께 고민하고 있는 이들에 대한 격려, 위로, 제안 등이 있다면 편안하게 한 마디씩 해 달라. 다른 동료 평신도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해줘도 좋겠다.

유정원 : 사실 그런 말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까 대구대교구 정하권 신부님 인터뷰를 봤는데, 그분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강조했고 평신도 역할도 강조했다. 또 잠자는 교회도, 깨어난 교회도 평신도가 만든다고도 하셨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로 보면, 평신도는 본당이나 전체 교회에서 소외됐거나, 사제를 받쳐주는 협조자로만 생각되는데, 정하권 신부님은 평신도가 스스로 교회의 중요한 일원이라고 생각하고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충고한다. 평신도는 교회의 손님이 아니라 성직자, 수도자와 함께 교회를 일구는 동료다. 그런 의식을 갖고, 현장교회든 본당교회든 자기 개인생활이든 해나가는 게 중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황경훈 : 1953년 <교회 안의 평신도>(Lay people in the church)라는 책을 쓴 이브 꽁가르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어떤 추기경이 들었던 예화인데, 한 사제에게 평신도의 지위나 역할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사제는 두 가지라고 답하면서, 하나는 제대 앞에 무릎 꿇고 있는 것과 강론대 아래에 앉아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전하던 추기경은 이 사제가 하나를 빼먹은 것이 있다면서, “앉아 있되 손은 안주머니 지갑에 대고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항상 돈을 꺼내 교회에 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게 평신도’라는 의미인데, 아주 유명한 농담이다.

이브 꽁가르는 결국 이런 평신도의 지위나 역할은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신도들은 예전처럼 무릎 꿇고, 강론대 아래에 앉고, 안주머니에 손을 넣고 돈을 꺼낼 준비를 하더라도 이제 다른 식으로 할 것이다. 다른 식이 아니더라도 생각은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50년이 지나도 평신도 지위는 그때와 달라지지 않았지만, 조금 다른 방식으로 현존하는 모습을 본당 안팎에서 조금씩 만들어나가야 한다. ‘본당을 그만두자’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우리 생각이 여전히 너무 본당 중심이니 거기서 좀 더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본당에서 벗어나도 그 사람 자체가, 그 모임 자체가 ‘교회’라고 여기는 성숙한 신앙관을 갖자는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힘들면 본당 생활을 좀 쉬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기가 지치고 힘든데 본당 활동이 기쁘겠나?

쉬는 신자를 ‘냉담자’라고 하는데 ‘냉담’이 아니다. 사람의 가슴은 항상 따뜻하다. 제도교회가 차갑게 만드는 것이다. 동료 평신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우리가 기쁘고 행복하다는 것, 하느님 안에서 모두가 평등하고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경이롭지 않은 순간이 없다고 생각한다.

경동현 : 지난주에 마산교구의 농촌복음화를 고민하는 사제, 수도자, 선교사 모임에 참여했다. 그 자리에서 기존에 해왔던 농산물 먹거리 운동을 하는 것이 농촌사목인가, 하는 질문이 나왔다. 그럼 농어촌에서도 기쁘게 할 수 있는 다른 운동이 뭘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기뻐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을 교회 안에서도 할 수 있다면, 그것을 찾아 집중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평신도가 갖고 있는, 상처받은 사람들을 치유하는 방법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새로운 평신도 운동도 그런 기쁨이 담겨있는 방법을 찾고, 제안하고, 접근하면, 우리부터 치유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참가자
경동현 (우리신학연구소장)
황경훈 (국제가톨릭지식인문화운동 신학위원회 위원장)
유정원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 종교학과 강사)

진행 : 한상봉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정리 : 정현진 기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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