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추기경 서임에 대한 성염 전 주 교황청 대사의 조언

180개국의 교황청 주재 대사들은 매해 1월이 되면 국제문제에 관한 교황의 '가르침'을 듣는 신년하례식에 참석한다. 연설이 끝나면 대사의 부부들은 교황과 신년인사를 나누는 기회가 주어진다. 지난 2006년도 신년 하례식에서 아내는 당시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손을 꼭 붙잡고서 한참이나 얘기를 나누었다.

"교황님, 저 할머니 됐어요. 축복해 주세요."
"아기 이름이 뭐죠?"
"손자가 성탄전야에 태어나서 이름이 임마누엘이거든요. 아기 엄마는 마리아고요."
"임마누엘이라구요? 좋은 이름이네요. 아기에게 저의 축복을 보냅니다."

평소 웃음이 적은 베네딕토 16세가 환한 웃음을 짓자, 다른 대사부인들이 "술란, 무슨 얘길 드렸기에 저 노인이 그렇게 밝게 웃으셨어?"라며 호기심을 보냈다. 이에 내 아내는 "그건 국가기밀이야"라고 능청을 부렸다.

프란치스코 교황, 한반도의 평화를 빌다

지난 13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외교단과 신년하례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교황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여하한 부정으로도 평화는 상처를 받습니다'는 제목으로 연설했다. 연설문에서 그는 "대한민국과 외교관계 50주년을 기하여 한반도에 화해 선물을 주십사 하느님께 빈다"며 "한국민 전부의 이익이 되도록, 양편에서 회담과 가능한 해결을 모색하는 데 지치지 말도록 축원한다"고 했다. 국민의 마음에 이 구절이 와 닿을 것 같다.

앞서 지난달 19일 한-바티칸 외교관계수립 50주년을 맞아 주교황청 한국대사관(김경석 대사) 주최로 성대한 종교행사가 열렸다. 교황청 국무장관인 파롤린 대주교(지금은 추기경)가 미사를 집전하고 강론을 통해서 남북한 "두 한국 사이에 평화의 선물을, 그래서 어느 날엔가 한반도의 모든 영역에서 인간 권리에 대한 완전한 존중이 이루어졌음을 두고 기뻐할 수 있는 선물을 하느님께 간청코자 한다"며 (남한의 인권 상태도 포함해서) 북한의 인권 문제를 언급했다.

또 파롤린 대주교는 두 한국 사이에 "대화의 길이 다시 열리도록 축원하며, 갖가지 기근으로 시달리는 백성들에게 제공하는 인도적 지원이 중단되는 일이 없기를 기원한다"는 말로 지난 6년간 단절된 대북식량원조의 재개를 호소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는 표현이 남북화해와 인도적 지원을 봉쇄한 채로 북한정권의 붕괴만을 기다리는 "도박 통일"로 이해되는 일 없도록 점잖은 종교적 언어를 써서 충고하는 말이었다.

국민에게 잊힌 성당, 정부 종북몰이로 돌아오다

▲ 지난 11월 3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 시티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알현 행사 말미에 피부병에 걸린 사람을 껴안고 있다. ⓒ EPA-연합뉴스

서울의 명동 성당은 한때 한국에서 '민주화의 성지'로 통했다. 명동성당에서 농성하는 학생들을 체포하러 경찰이 진입하려고 할 적에 "나를 밟고 신부들을 밟고 수녀들까지 밟아야 학생들과 만난다"면서 버틴 김수환 추기경의 항거는 역사에 길이 남았다. 그 뒤 정진석, 염수정 대주교 시절의 대성당에서는 사회 정의를 설교하는 성직자도, 사제단의 시국기도회도 없었다. 지난해 말, 철도 노동자들은 불교의 조계사로 피신하였다. 국민에게 잊힌 성당이었다.

그 성당이 되살아났다. '2007년 남북정상회의록'으로 소란을 피워 정권도 잡고 보수도 집결시킨 정권은 지난해 11월, 박창신 신부의 강론 일부를 꼬잡아 언론을 총동원해 '종북 사제'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그보다 닷새 전에는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이용훈 주교)가 "국가 권력의 불법적 선거개입과 은폐축소 시도, 밀양 송전탑 건설 강행,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설 강행 등의 공권력의 과도하고 부당한 행동에 대하여 우려"를 표하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이에 성직자의 정치 개입이라는 공격과 더불어 '종북 주교'라는 말까지 생겼다.

그러다 곧 이어 교황 프란치스코가 새 교서를 발표해 "성직자들은 인간 개개인의 전인적 발전에 해당하고 특히 사회질서와 공동선의 성취에 필요하다면 인간 생활의 모든 면에서 의견을 개진할 권리가 있다"고 선언하자 집권여당과 언론들이 잠깐 머쓱해지기도 했다.

그러자 고맙게도, 저 교서를 발표하면서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낙인찍히던 교황도, 한국의 '종북 주교'도, 소위 '종북 사제단'도 단 한 방에 공중으로 날려버린 핵폭탄이 터졌다. 그 핵탄두는 11월 24일 '신앙의 해'를 마감하는 대미사가 거행되던 명동대성당에서 염수정 서울대교구 대주교가 날려 보낸 것이었다.

염 대주교는 "사제들의 정치참여는 잘못된 일"이라며 "대주교는 정치구조나 사회생활조직에 개입함은 사제가 할 일이 아니다"고 했다. 또 "교황님은 성직자가 정치나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써 교회적 친교의 분열을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언론에 보도된 대주교의 말대로는 교황도, 주교도 사제도 정치 사회 문제에 관해 발언한다면 "자신이 하느님처럼 행동하려는 독선"이었다.

11월 25일부터 KBS, MBC, SBS, YTN 텔레비전 방송 뉴스들과 라디오, 조·중·동의 지면들이 거의 한 주간 동안 서울교구장 염수정 대주교의 말씀을 홍보하는 데 열을 올려 외국인들은 저 모든 방송국과 신문사가 가톨릭 재단의 운영매체인 줄로 착각했을 것이다.

한국 언론사에서 한 성직자의 발언이 이토록 환영받고 이토록 크게 보도되고 이토록 폭넓게 다루어진 적이 없었다. 때문에 염수정 대주교는 성직자의 정치적 중립을 내세워 한국 가톨릭교회 역사에서 가장 강력하고 가장 효과적이고 가톨릭 교회의 사회교리를 가장 정면에서 타도한 정치적인 발언을 한 셈이다. 4대강의 문제점을 지적한 주교회의의 결정과 문서를 혼자서 뒤집어엎은 서울대교구의 정진석 추기경을 뒤이어 사실상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의 담화문과 사제단의 미사 강론을 성직자의 '직접적' 정치개입으로 단정해 버린 것이다.

신의 한 수에도 실수가 있지 않을까

▲ 성호경 긋는 염수정-정진석 추기경 염수정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오른쪽)과 정진석 추기경이 13일 서울 명동 서울대교구청 주교관 앞마당에서 열린 염 대주교 추기경 서임 환영식에서 성호경을 긋고 있다. ⓒ 이희훈

지난해 3월 13일 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장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으로 교황에 뽑히자 서구 언론은 '신의 한 수'라고 격찬했다. 교황이 되자마자 가톨릭신자들더러 "밖으로 나가라", "가난한 사람들을 편드는 정의구현이야말로 교회가 새로 하는 복음 선교다"라고 외쳤다. 타임지가 프란치스코 교황을 '올해의 인물'로 뽑으면서도 선출 명분은 '가난한 사람들의 아버지'였다.

그리고 지난 12일, 바로 그 교황 프란치스코가 바로 그 염수정 대주교를 추기경으로 서임했다. 벌써 몇몇 언론은 염 대주교의 추기경 서임이야말로 현 교황 프란치스코가 가톨릭 사회교리에 관한 대주교의 발언이 옳았음을 인정한 것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보도를 시작했다. '신의 한 수'로 뽑힌 교황이 염수정 대주교에게서 '신의 한수의 실수'로 인구에 회자되지 않고 오히려 아닌 '신의 한수의 묘수'라는 결과를 내기 바라는 가톨릭신도로서 다음 몇 가지를 당사자에게 환기시키고 싶다.

첫째, 앞서 언급한 지난달 19일자 파롤린 대주교의 마지막 권고를 유념할 만하다.

"주님의 현존을 두고, 주님의 말씀을 두고 두려움을 품는 일 없도록 주님께 기도합시다. 복음을 무서워하지 말도록 기도합시다."

▲ 성염 전 교황청 한국대사
40년에 걸친 언론의 매도와 투옥과 심지어 '종북 사제', '종북 주교'라는 욕까지 먹으면서 교회의 사회교리를 펴온 성직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예언자다운 발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온유한 권고였다. 한국교회의 양적 성장은 용감한 발언을 감행하던 김수환 추기경의 어르신다움, 이태석 신부 같은 삶 그리고 가난한 이들을 편들어 온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외침 등에서 비롯하고 있으리라는 것이 필자의 신념이다.

둘째, 서울대교구장은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한다. 보수정권이 회귀한 지난 6년간 경색된 남북관계에서, 머지않아 시성될 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가 공식석상에서 무려 일곱 차례나 권고한 남북대화와 대북식량원조에 정진석, 염수정 두 평양교구장 서리는 과연 무엇을 해 왔는가? 이번의 추기경 서임에도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는 교황의 의중이 들어 있지 않을까 헤아려 봄직하다.

셋째, 이번 1월 5일자 <평화신문>과 <가톨릭신문> 신년호를 받아본 필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호소와 활동이나 사회복음에서 영감을 받은 글들을 찾아 읽었다. 그중 <평화신문>에는 단 두 꼭지, <가톨릭신문>에는 열다섯 꼭지가 실려 있었다. 그의 추기경 서임 뉴스에 누가 먼저 환호작약하고 축하를 보내왔는지 살펴본다면 그가 누구를 편들어 서 있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가톨릭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사랑'을 선택했을 뿐이다.

21세기 가톨릭교회의 명운은 사회복음 전파의 성패에 달렸다는 교황청의 신념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교서에 이렇게 나타나 있다.

"누구도 우리 성직자들에게 사회생활과 국가생활에는 아무 간여를 하지 말라고, 사회생활의 제도적 건전성을 언급하지 말라고, 시민들에게 관련되는 사건에 의사표현을 하지 말라고, 종교를 개인의 비밀한 내면에만 결부시켜 달라고 요구할 수 없다."(복음의 기쁨 183항)


성염 전 주 교황청 한국대사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3년,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시티에 한국대사로 부임해 2007년까지 근무했다.

<기사제휴/오마이뉴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