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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영성
양성되지 않는 평신도 리더십2014년 천주교 평신도 운동 진단 좌담회 - 3
정현진 기자  |  regina@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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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1.15  11:3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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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면, 우리 교회 안에서 ‘사제가 사제답다’, ‘평신도가 평신도답다’는 것은 어떤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가?

요즘은 하다못해 사회 참여도 신부님들이 하시고, 뭘 해도 수녀님들이 하시고, 평신도는 늘 뒷전에서 따라가는 입장이다. 하다못해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 같은 사회 참여 반대자들도 그런 얘기를 한다. 일선에 나와서 싸워야 하는 이들은 사제가 아니라 평신도들이라고. 오히려 평신도들이 싸움에 나서고, 사제들이 뒤에서 영적 지지와 지원을 하는 게 맞다. 그런데 지금은 위치가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이다.

유정원 : 그런데 사실, 평신도가 그냥 뒷전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평신도는 각자 자기 삶의 자리가 있다. 밀양과 제주도 얘기를 했는데, 사람들이 그곳으로 가지 않더라도 현지 신자들이 여기에 참여한다면 평신도들이 늘 뒷전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소수이기 때문에, 그들만으로는 국가나 기업에 대결하기 어려운 안타까움이 남지만 말이다. 여기서 밀려나는 사람들을 지지하기 위해서 사제들이 나오는 것이다. 대부분의 평신도들은 활동가가 아닌 이상, 가정과 직장 생활이 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것이다.

이런 생각도 든다. 지금 한국 교회는 수도자와 사제들이 아직은 넘친다. 자기 본당이 없는 사제들도 있다. 그들이 직분을 현장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고, 수도회도 자기들이 뭘 하고 살아야 할지 못 찾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 문제가 대두되니까, 이런 민감하고 절박한 문제에 힘을 실어줘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제나 수도자들에게 좋은 사목적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내 생각에 시국미사나 정치적인 사회 문제, 환경 문제에 뛰어들어 활동하는 분들은 자기 직분이 있음에도 나서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일을 통해서 자기 직분을 찾는 게 아닌가 한다. 평신도들 역시 자기가 사는 지역에 그런 중요한 사건이 발생한다면 나서야 한다. 내 삶의 자리니까. 그러나 전국에 흩어진 평신도가 자기 직장과 가정을 두고 모두 제주도, 밀양으로 갈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평신도가 뒤에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주교나 사제의 경우, 자기 직분 의식도 있다. 불행한 소식이 계속 들리고 교회에서 어떤 입장을 발표해야 하는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경동현 : 아까 했던 얘기의 연장인데, 교회의 사회 참여 형태가 평신도가 참여하기 어려운 형태라는 것에 대해 다시 말하고 싶다.

가톨릭농민회 회장님을 두 달 전쯤에 만나 우리농촌살리기운동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가톨릭농민회는 우리농 활동을 하면서 딜레마에 봉착했다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이런 운동을 할 때는 나름대로 그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보람을 갖고, 사명의식을 갖고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운동이 교회 구조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본당 마인드나 위계구조에 갇혀버린다. 그래서 우리농 운동이 본당 내 다른 활동과 차별성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농 운동이 생명운동으로서 운동의 결이 다르다는 평가도 하지만, 다른 협동조합운동은 밖에서 엄청 흥하고 있는데 교회는 그런 것 같지 않다. 외적인 성장이 사람들에게 주는 힘이나 에너지가 꽤 있는데, 실제로 본당 활동가들은 이미 에너지가 소진된 이들이 많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회운동 현장에서도 그런 본당의 활동 구조와 의식이 연장되다보니, 평신도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여지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평신도 연구자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강우일 주교님이 강조한 신학자들의 성찰도 마찬가지다. 우리신학연구소의 경우도 평신도들이 할 수 있는 신학적 성찰에 대한 욕구가 있었다. 그러나 정작 평신도 신학자들의 자리가 교회 안에 없다 보니, 교회쇄신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하려고 해도 교회에 문제제기하는 내용을 교회가 지원할 리 없다.

   
▲ 좌담에 참석한 평신도 신학자 경동현 · 유정원 · 황경훈

황경훈 : 아까 유정원 씨의 이야기에 조금 덧붙이자면, 지금의 운동 양상에서 평신도가 소외되어 있는 건 맞지만, 뒤로 물러나 있다는 표현보다는, 설 자리가 없다는 표현이 옳은 것 같다.

외부에서 가톨릭교회의 움직임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큰 틀에서 보자면, 4대강이나 밀양, 강정 문제나 환경, 생태 문제만이라도 교회가 거의 집중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고, 주교들도 이 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있는 현상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생태 문제에 너무 치우친 것은 내용적으로 조금 한계가 있다. 이들 역시 교회 내의 노동 문제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못한다. 이를테면 가톨릭중앙의료원(CMC)의 경우처럼, 교회 사업장이 신자유주의의 핵심인 노동유연화, 상품화 등의 선봉에 서있기 때문에 말을 못한다. 사제 중심의 운동은 자기 교회 내에, 교회 사업장들에도 굉장히 문제가 많은데도 이 문제를 다룰 수 없다. 이처럼 교회가 편향적으로 생태 · 환경 문제에 너무 치우치다 보면, 운동 자체가 자칫 근본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그야말로 내용적으로도 평신도는 설 자리가 점점 더 없어지는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의 평신도 NGO들과 일반 평신도들이 함께하기 위해서는, 평신도들이 누구나 생활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는 아이템이 나와야 한다.

유정원 : 사실은 지금 정의구현사제단의 활동들이나 강정이나 밀양 문제에 수도자들이 나서는 것에 대해 일반 신자들은 별로 지지하지 않는다. 정의구현사제단 이외의 성직자나 주교들도 달가워하지 않고, 일반 시민들도 별로 좋게 평가하지 않는 분위기인 것 같다.

한상봉 : 왜 그렇게 느끼는가?

유정원 : ‘너무 그런 데 나선다. 신부들이 세상의 심판자냐?’ 그런 분위기가 있다. 일 때문에 김수환 추기경과 관련된 인터뷰를 하고 다니면서, 작년에 영산대 김용석 교수님과 인터뷰를 했는데,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지금 가톨릭 신자들이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평판이 굉장히 안 좋아지고 있다. 그 이유는 정의구현사제단이 너무 갔다, 너무 나갔다”라고. 좀 놀랐다. 사제보다 평신도가 중심에서 참여하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아니다.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평신도들도 너무 드물다. 우리가 만나는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진보적이어서 이런 현실을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게 아닌지 염려된다.

한상봉 : 그게 사실은 사실이다. 본당에서 만나는 사람은 거의 이런 문제에 관심이 없다. 본인의 신앙생활이 중요하지, 정치하는 사람도 아닌데, 하는 분위기다.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많은 사람이 지지하고 돈을 대서 광고하는 것 같지만, 보수든 진보든 참여자는 여전히 일부에 불과하다.

결국 보통의 신자들은 이것도 저것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정의구현사제단이 뭘 해도 그런가보다, 하는 정도일 것이다. 다만 최근에 교구마다 하고 있는 사회교리학교가 그나마 이들의 생각을 바꾸는데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분위기로 교회가 가는 것도 희망적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자는 여전히 순진한 신앙에 만족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인정하는 가운데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평신도운동이 발전하자면 평신도 지도자들이 양성되어야 한다. 그중에는 평신도 신학자 양성도 포함될 것이다. 자신의 신앙적, 신학적 확신을 지닌 이들은 교회의 미래를 위해 아주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이점에서 각 교구마다 사회교리학교를 열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본다.

경동현 : 가톨릭교회가 본당 신자들의 의식을 바꾸기 위해 사회교리학교도 열고 하는 것도 좋지만, 이와 별개로 평신도 활동가들을 양성하는 것이 병행되어야 한다. 사제는 지원자의 역할이고, 세상 문제에 직접 나서야 하는 것이 평신도라면, 이런 활동을 기획하고 이끌어갈 역량을 키워야 한다. 사회교리학교가 입문교육에서 끝나면 진전이 없다. 그들이 본당 구조 안에서만 있다 보면 교육을 받아도 교육이 끝나면 흐지부지되게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교리학교에 대한 후속 지원이 필요하다. 성공회대에 NGO 양성 코스가 생겼는데, 그런 과정을 활용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황경훈 : 덧붙이자면, 이 문제는 구조 개혁과도 관련이 있다. 교황청에서도 아시아 지역 등에서 성직자나 수도자들을 전액 장학금으로 양성하지 않나. 평신도를 양성하는 그런 기구를 설립해야 한다. 어떻게 평신도 청년 리더를 양성할 것인가. 나라별로 평신도 활동가를 어떻게 양성할지 고민해서 펀드를 마련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농 매장이 있는 본당에서도, 활동가들에게 정당한 활동비를 지불하면 이 운동이 확 살아날 수 있다. 이렇게 구조적인 대안을 마련하지 않는 논의는 말장난이다. 이미 200주년 사목회의 의안에 다 나오는 이야기다. 다만 실행하지 않는 게 문제다.

우리신학연구소에서 하고 있는 교육 가운데 아시아 청년 NGO가 2주 과정으로 준비하고 실천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그런 것을 일개 평신도 연구소에서만 하거나, 외부 자금에만 의존해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해야 한다. 왜 평신도 신학자가 없는가, 묻기 전에 이를 위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는지 먼저 물어야 한다. 그냥 아쉽다고 말만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유정원 : 그렇지만 이 이야기는 현실적으로는 좀 불가능한 이야기로 들린다.

황경훈 : 불가능한 얘기인가? 기대가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게 맞지 않느냐는 이야기다. 필요한 일인데, 근본적으로 안 된다면, 그 이유에 대한 성찰하고 그것으로부터 전략과 전술, 대안을 내지 못한다면, 교구장이나 주교회의 의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그때그때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교회가 근본적인 틀을 움직여서 교회 NGO의 가능성을 인정해주고, 청년 활동가들을 양성하려고 노력하거나 아이디어를 내지 못하면서 어떤 기대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상봉 : 처음에 강 주교님이 피력하신 신학적 작업에 대한 아쉬움은 일차적으로 사제 신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평신도 신학자까지 생각하신 것 같지는 않다. 어쨌든 그 표현은 와 닿는다. “평신도들이 왜 신학적 성과를 내지 못하는지, 사제 신학자들은 왜 하지 않는지.” 못 하고, 안 하는 것이다?

황경훈 : 맞다. 그렇다고 본다.

한상봉 : 사제들은 왜 안 한다고 생각하는가?

황경훈 : 거꾸로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전라도에 무수히 많은 섬들이 있고, 거기에는 공소들이 무척 많다. 그런데 사제들이 그렇게 많은데 왜 안 가는가? 5년, 10년 적체되는 서울대교구에서, 정말 복음에 철저한 사제 양성이 된 사람들이라면, 왜 그런 곳에 가서 복음을 실천하지 않고, 늦게까지 교구에 남아 보좌 신부로 있는가? 그건 안 하는 것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그런 곳에 평신도 선교사들이 나가게 되면 그들에게는 적합한 생활비를 주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그러니 평신도 선교사든 사제든 그렇게 안 하는 것이다.

참가자
경동현 (우리신학연구소장)
황경훈 (국제가톨릭지식인문화운동 신학위원회 위원장)
유정원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 종교학과 강사)

진행 : 한상봉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정리 :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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