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세 번째 추기경이 탄생하면서, 각계각층에서 축하의 메시지가 쏟아지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반응이 폭발적이었듯이, 교황의 ‘자문단’ 역할을 수행할 추기경의 임명에 거는 기대 또한 크기 마련이다. 염수정 추기경은 교황청 발표 직후인 13일 오전 서울대교구청 앞마당에서 열린 임명축하식에서 “교황님은 그리스도인으로 새롭게 태어남을 기념하는 주님의 세례 축일에 주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 살아가며 효과적으로 수행하도록 저를 임명하셨다”고 말했다. 묵은 과거는 잊고 미래를 향해 열린 사목을 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반가운 소감 발표였다.

염 추기경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하는 게 교회”라고 말했으며, “착한 목자가 해야 할 첫 질문은 양들을 모두 하나로 모으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모든 세대가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나 깊은 연대감을 갖고 하나의 가족,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삶”이라는 것인데,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분열과 갈등을 치료하는 교회가 되는데 힘이 되겠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 염수정 추기경은 추기경 임명 소식을 듣고 “착한 목자가 해야 할 첫 질문은 양들을 모두 하나로 모으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해 9월 2일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서울대교구 성지순례길’을 선포하는 염수정 추기경 ⓒ한수진 기자

그러나 추기경 서임을 앞두고 벌어진 일들을 생각할 때 우려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염수정 추기경은 전주교구 시국미사에서 나온 박창신 신부의 발언 직후, ‘신앙의 해’ 폐막미사 강론 중에 세 차례나 가톨릭교회의 문헌을 들어 “사제가 직접 정치적, 사회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고 표명했다. 이에 각종 보수 언론은 염 추기경의 말을 받아쓰기에 급급했다. 이 발언이 불러온 파장은 적지 않아서, 가톨릭교회가 마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나 각 교구의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봉헌한 시국미사 등을 단죄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 발언 직후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 <복음의 기쁨>이 발표되자 염수정 추기경은 곧바로 자신의 영명축일 축하미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세상의 부조리와 불평등의 구조에 짓눌리지 말고 용감하게 개선하며 변화시키는 데 주저하지 말라고 용기를 주신다”며 “그러나 그 방법은 철저하게 복음적인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언론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오히려 교황의 발언에 따라 갈팡질팡하는 모습으로 비쳤을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염수정 추기경의 이러한 태도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교회 안의 두 가지 흐름 속에서 분명한 사목적 지침을 제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국가주의에 쏠려 있는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에서는 염 추기경의 발언을 빌미로 민주주의를 위한 시국미사를 비난하고, 시국미사에 동조하는 사제들을 ‘정치사제’로 매도하며, 각 교구 주교좌성당과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이 사목하는 본당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심지어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인 이용훈 주교를 ‘정치주교’라고 비난하고 나섰으며, 주한 교황 대사관 앞에서도 시위를 벌였다.

한편 ‘천주교 평신도 1만인 시국선언’을 발표했던 평신도 단체는 염수정 추기경의 이러한 태도에 우려감을 표명했고, 교황청에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추기경’을 청원하는 서명운동을 벌이며 프란치스코 교황의 진보적 태도에 조응할만한 추기경 서임을 희망했다. 한국 사회가 이념적으로 분열되어 있는 상황에서, 교회 역시 이념적으로 분열되어 있으며, 이 상황을 ‘복음의 힘’으로 역전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게 한국 교회의 당면한 고민이다.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은 사실상 교도권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나 있는 단체로, 교회 안에 침투한 ‘어버이연합’의 아류에 불과할지라도, 일반 신자들 역시 사제들의 정치 참여에 대한 확신을 분명히 갖고 있지는 않다. 고통 받고 상처 받은 이들의 현장에서 위로를 제공하는 ‘야전병원’ 같은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교황의 입장은 “좋은 가톨릭 신자라면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는 말로 연결되어 있지만, 사회교리의 세례를 제대로 받은 적이 없는 한국 교회의 신자들은 여전히 그런 말들이 낯설다. 교회의 사회 · 정치적 참여에 대한 ‘복음적 확신’이 필요한 때에 ‘사제들의 정치 참여 불가’라는 염수정 추기경의 발언이 교회 안에 혼란만 가중시켰다는 지적은 그래서 정당하다.

이런 상황에서 염수정 추기경은 분명히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하는 게 교회”라고 한 자신의 발언에 대해 책임 있는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착한 목자가 해야 할 첫 질문은 양들을 모두 하나로 모으는 것”이라는 발언은 실제적인 무게감을 갖는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일치를 도모하는 일은 단순히 외교관이나 정치가들이 하는 ‘타협’의 방식으로 진행되어서는 안 되며, 철저히 ‘복음적인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정의로운 사랑’이라는 복음적 가치 안에서 교도권을 행사하고, 비복음적 태도로 교회를 능멸하는 세력에게 회개를 촉구해야 한다.

▲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의 기쁨>에서 ‘성전 안에만 안주하는 교회가 아니라 거리로 나가 멍들고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를 원한다’고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의 기쁨> 98항에서 자신의 권력과 특권, 즐거움, 경제적 안전 추구 때문에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는 관행을 비판했다.

“하느님 백성 가운데에서, 그리고 교회의 여러 공동체 안에서 얼마나 많은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우리의 이웃 속에서 그리고 작업장에서, 그리스도인 사이에서조차 얼마나 많은 싸움이 질투와 시기 때문에 벌어집니까! 영적 세속성은 일부 그리스도인을 다른 그리스도인과 싸우게 합니다. 자신의 권력, 특권, 즐거움, 그리고 경제적 안전 추구에 방해가 된다고 말입니다. 어떤 이들은 더 큰 교회 공동체의 일부로서 사는 것에 더 이상 만족하지 않고, ‘권력 중추부의 측근 그룹’을 만들어냄으로써 일종의 배타의 정신을 갖고 삽니다.”

교황은 이어서 “저는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 공동체가, 또 봉헌생활을 하는 사람조차 다양한 형태의 적개심, 분열, 중상, 비방, 뿌리 깊은 반목, 시기, 그리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특정 이념을 강요하는 것, 심지어는 분명히 마녀사냥으로 보이는 박해까지 견뎌야 하는지를 생각하면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견뎌야 할 길이라면, 우리는 누구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하겠습니까”(100항)라고 물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발언하지 않더라도 복음은 기쁜 소식이다. 이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는 공생활 벽두에 예수님이 이사야 예언자에게서 영감을 얻어 말했듯이, 먼저 ‘가난한 이들에게 전해진 기쁜 소식’(루카 4,18)이었다. 국가권력이나 특정 정치세력이 아니라, 우리는 ‘복음’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 그 희망 안에서 가난하고 억눌린 이들, 국가권력에 의해 희생된 이들에게 ‘해방의 희소식’을 전달하는 게 교회의 사명이다. 염수정 추기경 역시 이 사명 안에서 사랑과 존경을 받는 추기경이 되기를 바란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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