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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영성
성직주의보다 더 시급한 평신도 갈등2014년 천주교 평신도 운동 진단 좌담회 - 2
정현진 기자  |  regina@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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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1.14  11: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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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담에 참석한 경동현 우리신학연구소장, 황경훈 · 유정원 박사, 한상봉 국장 등 ⓒ강한 기자

한상봉 : 한국 교회 안에서 평신도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특히 젊은이들이 본당에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은 더더욱 평신도운동의 미래를 어둡게 만든다. 이번에는 교회쇄신과 관련해 지난 수십 년간 똑같이 지적되어 온 것 ‘성직주의’ 문제부터 따져보기로 하자. 도식적인 질문인지 모르지만 성직주의가 유지되는 것이 평신도의 잘못이냐? 도대체 뭐가 문제라서 성직주의, 혹은 평신도의 위상 격하, 이런 게 반복되고 있는가? 교황님도 이번에 성직주의를 비판했는데, 도대체 바뀌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황경훈 : 교회 구조 때문이지, 성직자의 문제냐 평신도의 문제냐 따질 게 아니다. 우리가 지금도 가지고 있는 중세의 교회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우선은 교육의 문제다. 우리신학연구소가 교육 프로그램을 말했는데, 교육을 통해서 신자들이 교회, 사회 전반 문제에 관심 갖도록 유도해야 한다. 물론 교육이라는 것이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내용을 외우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성숙을 이끌어내는 것이어야 한다. 사실 예비신자 교리 받은 다음에는 제대로 된 신앙교육이 이뤄지지 않는다.

그 다음에는 연대성을 강화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획일성이 아니라 다양성 안의 일치를 추구해야 한다. 사목 문제든 재정 문제든 교구나 본당 차원의 사목회의에서 평신도들이 이를 논의하고 계획하는 데 참여하게 하는 것, 조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평신도들에게 부여한 사명, 예수의 제자로 성장해가기 위해서 그들이 자유롭게 판단하도록 북돋워주고 보장해주는 구조의 구축이 절실하다.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의 경우 교회에서 성직자들이 평신도들을 통제하고 애들 취급하려는 유혹을 이기고, 평신도들을 지원하고 동반하고 있는지 스스로 질문해 왔다.

한편 성직자나 평신도의 문제, 성직주의는 구조 자체의 변화를 통해서도 해결해야 한다. 중앙집권화 된 권력을 분산하기 위해서 예를 들면, 교황청도 종교간 대화 같은 것은 아시아 교회, 가난의 문제는 라틴아메리카 교회에 실무 단위를 나눠야 한다. 그런 식의 구조 개혁이 로마 교황청에서 받아들여진다면, 대륙별 주교회의에서도 그런 개혁이 진행되어야 하고, 나라별 주교회의도 마찬가지다.

한국 교회의 경우를 보자. 1987년 정의평화위원회 전국 조직이 해체되고 위원장이었던 이돈명 변호사가 쫓겨났다. 국가적 차원에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는데, 교회에서는 민주주의의 싹을 잘라버리는 작업을 해서 성직주의를 더욱더 공고하게 했다.

교회 조직을 운영하면서 여러 가지 대안이 나올 수 있지만, 주교회의에 평신도 대표가 참여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함께 참여하는 사목평의회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회의는 수적으로는 평신도들이 훨씬 많아야 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개혁은 불가능하다. 이런 노력이 없을 때, 성직중심주의가 사라질까? 아니라고 본다. 이것은 이미 문화로 형성됐다. 누구 탓을 할 문제가 아니라 제도가 사람을 망가뜨린 것이다.

한상봉 : 하지만 그런 개혁에 대해 염려스러운 부분도 있다. 평신도라고 다 같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현재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평신도들이 모두 교회 내에서 쟁쟁하게 행세했던 이들이다. 이들에게 권한을 주고 각 요소에서 핵심적 권력을 갖게 되면, 주교나 사제들은 정작 균형을 잡아야 할 때 힘을 쓰지 못한다. 단순히 교회 권력을 평신도가 나눠 갖는다는 식의 사고는 문제가 있다.

황경훈 : 결정 구조에 참여하는 것이 권력을 나눠 갖는 것이라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단순히 권력을 나누자는 것이 아니고, 또 평신도가 성직자의 위치에서 권력을 행사하려는 것도 결코 아니다. 내 생각에는 전세계적으로 볼 때, 이미 성직자의 시대는 가고 있다. 한국 교회는 특수한 경우다. 앞으로는 평신도와 평신도의 갈등이 더 복잡해질 것이다.

가톨릭교회 시민단체(NGO)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교회 NGO라면 천정연 산하 단체, 가톨릭농민회, 우리신학연구소 등이 다 그런 단체들인데, 예전부터 가져온 자신들의 복음적 확신과 신학적인 생각을 가지고 싸워야 한다. 청부론과 청빈론이 싸워야 하는 것처럼, 서울대교구가 운영하는 주식회사 평화드림이 ‘기업영성’을 강조할 때, 우리 NGO들은 가난한 이들이나 케노시스 신학을 통해, 즉 자기 비움의 신학과 가난의 영성을 무기로 싸워야 한다. 문제는 권력이 아니라 누가 더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설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이른바 ‘인정투쟁’은 평신도와 성직자 사이가 아니라 평신도 사이에서 더 치열하게 드러날 것이고, 그것이 발전이라고 본다.

한상봉 : 아까 말한 권력의 부분은 여전히 성직자들이 독점하고 있지만, 평신도들은 그 권위에 연연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은 주교좌성당을 다니며 시위를 벌이고, 사제에게도 빨갱이 신부라고 한다. 그들은 신부고 뭐고 없다. 사제들이 갖고 있는 권위가 예전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증거다. 평신도 자신들의 생각과 의지가 더 중요해진 것이다. 교리적인 문제는 교회에 의존하지만, 그 밖의 모든 생활은 자기 판단에 의해 움직인다. 이 부분에서 가톨릭교회 평신도 사이의 갈등은 우리 사회의 갈등이 그대로 압축되어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계속)

참가자
경동현 (우리신학연구소장)
황경훈 (국제가톨릭지식인문화운동 신학위원회 위원장)
유정원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 종교학과 강사)

진행 : 한상봉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정리 : 정현진 기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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