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칼럼 - 정현진]

# 장면 하나

철도 민영화 반대 구호를 들고 철도노조가 파업에 나섰다. 2013년 12월 22일, 경찰이 유례 없는 민주노총 침탈을 자행한 뒤, 일주일 후인 28일 수만 명의 시민들이 ‘철도노조 파업 지지’, ‘민영화 반대’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그러나 12월 30일 철도노조 지도부는 철도산업발전소위원회 구성에 합의하며 파업을 철회했다.

파업 철회에 대한 후폭풍은 거셌다. 많은 이들이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수만 명의 시민이 파업을 지지하고 민영화 반대를 외친지 이틀 만에 타결된 합의로 신뢰할 수 없는 정치권에 공을 넘긴 것에 대한 비판, 끝까지 싸우지 않은 노조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하고, 지지를 철회하는 선언도 등장했다.

# 장면 둘

지난 2013년 한 해, 불법 대선 개입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시국선언과 미사로 한국 가톨릭교회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민주주의 회복’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종교인들의 사회 참여가 고무되면서, 교회 내 이를 지지하는 이들과 반대하는 이들은 물론, 교회 밖의 사람들이 동시에 주목한 것은 ‘추기경이 누가 될 것인가’였다. 어느 쪽이든 자신들의 생각과 행동에 힘을 실어줄 지도자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절박함이었을 것이다.

1월 12일 저녁, 한국 가톨릭교회에 새로운 추기경이 임명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한 통신사 뉴스로 확인된 추기경 임명 사실은 금세 인터넷 공간을 달궜고, 반응은 다양했다. 누군가는 축하를 전하며 기뻐하지만, 누군가는 깊이 실망하기도 한다. 어떤 일이 벌어지든 그에 대한 의견이나 입장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서명운동이 진행될 때부터 우려를 샀던 부분은 내가 원하는 이가 아니면 안 된다는 ‘편 가르기’ 또는 실망감을 못 이겨 ‘교회를 떠나겠다’는 유의 극단적 반응이었다.

ⓒ문양효숙 기자

철도노조가 파업을 철회했을 당시 쏟아졌던 갑론을박 중 인상 깊게 들린 말이 있다. “철도 파업은 길 가다가 만난 일일 뿐”이라는 것이다. 가깝게는 민영화를 막고, 멀게는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해 걷는 길에서 만난 일이며, 철도노조의 파업은 이 여정이 시작된 결정적 이유나 마침표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추기경 임명을 둘러싼 반응도 같은 맥락이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를 위한 길 위에서 누구를 만나는 것이 되돌아가거나 길을 포기할 이유는 아니다. 지금 생각해야 할 것은, 누군가 길을 막아설 것이라는 예측으로 분노하고 절망하기보다, “우리가 그동안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 우리에게 길이 있었는가”라고 묻는 일이다.

이슈와 사건에 일희일비하는 모습은 늘 우려와 자조를 낳았다. ‘일상성’을 잃었다는 것이 어쩌면 우리가 겪고 있는 근원적 비극인지도 모르겠다. 국정을 둘러싼 대형 비리, 어떤 정치인이나 지도자의 당선 같은 사건이 끝나면 우리는 자연스레 이전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 일상을 지탱해줄 구조가 망가졌는데도 그렇게 삶은 이어지고, 결정권은 다시 일부의 몫으로 남는다.

어떤 정치인, 어떤 지도자도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는 없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하게 겪어왔다. 오히려 그 지도자를 움직여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 시민이고, 평신도라는 것도 알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 우리에게 필요한 상식인가’를 상상하는 힘, 그리고 누가 어떤 자리에 있든 그 길을 간다는 결기다. ‘우리 모두가 교회.’ 이것이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절실한 상식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걸어야 할 우리의 길은 무엇일까?

예수의 십자가형 앞에서 예수 대신 바라빠를 놓아주라는 군중의 목소리, 유다의 배신을 다시 생각한다. 아마도 그것은 제각각 지극히 인간적 차원에서 생각한 구원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와 절망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불의한 정치사회적 구조 속에서 누군가가 우릴 구원할 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 희망은 특정한 누군가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시민, 신앙인들 속에서 먼저 발견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는 구원 사업의 사명을 다름 아닌 우리 모두에게 주셨기 때문이다. 그것이 구원자로 오신 예수가 권좌에 앉아 세상을 일순간에 바꾸지 않고 우리와 함께 살다가 죽음에 이른 이유다.

구원의 주체로서 우리의 길을 가자. 그 어떤 비바람에도 굴하지 않는 생명력으로, 매일 불어오는 바람처럼 그렇게 가야 한다.
 

정현진 (레지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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