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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까까남(男)’으로 사는 이유[김정식의 삶과 노래]지속가능한 삶

  

우리청소년센터「숨」의 간사회의를 끝내고 우리신학연구소 직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갔다. 직원들이 돌아가며 밥을 지어 집에서 싸온 반찬과 함께 먹는 것이 너무 좋았었는데, 오늘은 사정이 생겨 분식집이었다. 나에게 선택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는 철저하게 외식을 사절해왔던 터라 대부분의 동료들이 염려해주었지만, 또 이럴 때는 맛있게 한 끼 외식을 때리는 것도 별미라 여겼다.

주문한 자장이나 짬뽕이 나오는 동안 탕수육을 먹었는데, 덤으로 군만두 두 접시를 더 주셨기에 아홉 사람이 다 먹기에는 조금 양이 많았었나 보다. 각자 음식을 다 먹었는데도 군만두가 서너 개씩 남아 있었다. 이쪽 탁자에서는 배가 부르긴 해도 남겨서 버리느니 하나씩 더 먹기로 했는데, 저쪽에서는 가위바위보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긴 사람은 안 먹어도 되나 보다.

“아이, 너무 심하다. 먹는 음식을 가지고 가위바위보를 하다니.”
“배가 불러 서로 안 먹겠다는데 남겨서 버리는 것보다는 낫잖아.”
“그래도 그렇지. 배가 고파도 먹을 것이 없어서 죽어갈 수밖에 없는 이웃들이 얼마나 많은데. 르완다나 케냐로 전화해서 일러준다. 아니야. 이 사실을 <지금여기>에다 글로 써 버릴 거야.”
“알아서 해. 쓰든지 말든지.”


모처럼 가져보는 우리의 재미나는 점심나들이는 이렇게 끝났지만, 오후 강좌를 위해 가는 길에 내내 그 생각을 했다. 가족처럼 친한 사이여서 편하게 한 말이겠지만, 동료들은 자주 나를 향해 피곤한 사람이라고 놀렸다. 일상적인 작은 일에도 까칠하고 까다롭기 때문이다. 그런 놀림을 받고 사는 내가 보기에도 오늘 함께 식사를 나눈 그들은 복음적으로 깨어 사는 훌륭한 정신의 소유자들이다. 그런 우리에게 언제라도 쉽게 지나치기 쉬운 삶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 그러고 싶지 않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세상 안에서 세상과 다르게 살고 싶은 우리에게, 매사를 식별하는 삶이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특별히 작은 일에 더 그렇다. 나 또한 생각하는 대로 잘 살아낼 수 없다는 인간적 부족함을 받아들이기에, 말이라도 자주하고 싶다. 말에 대한 책임이 식별을 도와 깨어 살게 해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내가 ‘까까남(까다롭고 까칠한 남자)’으로 사는 이유이다.

지난 해 대림특강을 위해 부산에 갔을 때, 6년간의 교포사목을 마치고 돌아온 신부를 만났다.

“형님. 그간 이런 저런 일로 분주하게 지내느라고 연락도 제대로 못 드렸네요. 그래도 제가 형님이 베트남에 오셔서 하셨던 강의를 듣고 지금까지 꼭 지켜오고 있는 일이 있어요. 물 절약을 위해 소변 후에는 변기 물을 내리지 않고 그냥 덮어둔다는 말씀을 듣고,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그 후로 결코 쉽지 않았지만 아직까지 실천하고 있어요. 그만하면 나름대로 열심히 산거지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5년 전, 베트남의 호치민 한인성당으로 초청강의를 갈 무렵, 전주교구 사제인 후배의 사제관에서 자게 되었다.

형. 소변이면 내리지 말고 그냥 나와. 모아두었다가 나중에 대변 보고나서 한꺼번에 내릴거야. 기왕에 말이 났으니 부탁 좀 할께. 형이 전국 방방곡곡도 부족해서 세계 곳곳에 초청강의를 다니기에 말인데, 만나는 사람들에게 부탁 좀 해 줘. 신부도 이렇게 살고 있으니 제발 물 좀 아껴 써 달라고.”

세면장을 둘러보니 변기 물통에는 벽돌 두 장이 들어있었고, 위에는 페트병이 떠 있었다. 받아지는 물의 양을 줄이기 위해서다. 세면대에는 조그만 플라스틱 그릇이 놓여있었는데, 손이나 얼굴을 씻거나 이를 닦은 물들을 되받아서 변기 물통에 채우고 있었다. 그런 물도 소변을 누고서는 내리지 않고 뚜껑을 덮고 나온다지 않는가.

   
'물절약하는 김정식씨 가족'이라는 평화신문 기사에 실린 사진을 인터넷에서 퍼옴. 


우리 집에 와서 가족들과 그 얘기를 나누었고 모두가 감동되어서 우리도 그렇게 했다. 벽돌이나 페트병을 넣는다거나 몸 씻은 물을 모아 변기 물통에 채우는 것 정도는 일상처럼 하고 있었지만, 소변 후에 내리지 않고 변기 뚜껑을 덮어둔다는 것은 실로 감동이었다. 지린내가 난다는 가족들에게 ‘익숙해지면 생각하기에 따라 고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고 응수했었다. 그런데 베트남에 다녀올 무렵 우리는 이사를 했고, 새집은 아니지만 붕괴 직전이었던 지난 번 집에 비해 상대적으로 깨끗한 환경을 만나자 그런 감동은 잠시 잊고 싶었다. 생각하고 말한 대로 살기보다 쾌적하게 살고 싶어진 것이다. 그런데 그 감동을 잊고 싶지 않아 생각하는 대로 살아내고 있는 신부를 다시 만날 줄이야.
“난(NAN)~ 사실 그렇게 말했을 뿐이고, 이제는 그렇게 살고 있지 않아 부끄러울 뿐이고, 버릴 물을 모았다가 변기에 다시 쓰는 정도로 만족하고 있을 뿐이고.”

언젠가 미국의 콜로라도 스프링스 한인성당에서 강의를 마치고 나오는데 삼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 분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환경오염을 줄이신다고 빨래비누로 머리를 감고 계시는데, 저는 샴푸 린스를 아무 생각 없이 함부로 썼던 것은 물론이고, 한 달에 서너 번씩 미장원에 다니면서 파마에, 염색에, 고데까지 했던 걸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아파요.”
“뭘 그런 일로 울기까지 하세요. 그보다 더 나쁜 일을 하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정 마음이 불편하면 두세 번으로 줄이면 되죠.”
“정말 그러면 될까요? 줄일 자신은 있거든요.”

요즘도 머리를 감을 때면 눈물을 흘리다가 금방 해맑게 웃던 순박한 그 얼굴이 자주 떠오른다. 그럴 때마다 사용하는 샴푸의 양을 줄이거나, 한 번은 빨래비누로 감고 나서 칙칙하게 엉킨 머리칼을 풀기위해 한 번은 샴푸로 감게 된다. 적게 짠 샴푸는 물을 몇 방울 떨어뜨려서 묽게 만들면 숱이 많은 내 머리에도 충분해진다.

며칠 전 전라도에서 만난 분은 치약 얘기를 했다.

“제가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평생 실천하는 것이 있는데요. 치약을 조금만 짜는 거요. 말씀처럼 처음에는 쉽지 않았는데 십오 년 이상을 그렇게 썼더니 조금도 불편하지 않고 치아도 다른 사람에 비해 오히려 건강한 편이예요.”
“고마워요. 저도 치아가 아주 튼튼해요. 치약에 섞인 불소나 미백효과를 주는 계면활성제의 일차적 오염피해자는 자신이구요. 이차적으로는 수질오염의 주범이 되지요. 남성불임의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알려져 있구요. 한 번 오염된 물은 다시는 완전히 정화되지 않기 때문에 힘들어도 꼭 실천해야 하는 일이예요. 그냥 적게 쓰자고 하면 실천력이 떨어져요. 구체적으로 새끼손톱만큼, 혹은 5mm 정도면 이 닦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어요. 제가 평생을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요.”


실천적 삶에 관한 간디의 일화가 있다. 설탕이나 사탕과자를 너무 많이 먹어서 소아당뇨의 위험에 노출된 한 소년의 어머니가 간디를 찾아와 청했다.

“선생님. 제가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습니다. 다행히 아이가 선생님을 무척 존경하고 있으니 선생님께서 한 말씀해주시면 들을 것 같습니다.”
“죄송하지만 보름 후에 다시 오시면 안 되겠습니까?”

보름 후에 어머니와 함께 다시 찾아온 소년에게 잘 타일러서 소년은 설탕을 먹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고마움을 전하러 다시 찾아간 소년의 어머니가 물었다.

“선생님. 처음 찾아뵈었을 때 말씀해주셔도 되지 않았을까요?”
“그때는 저도 설탕을 너무 좋아해서 노력해도 끊을 수 없어 힘들었을 때입니다. 그래서 보름의 시간을 갖고 끊도록 애를 써보았더니 잘되었기에 도움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만약 제가 설탕을 끊지 못한 채 아드님에게 조언을 했더라면, 아마 도움이 안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폴 부르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종국에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김정식/가수 겸 작곡가로 생활성가의 개척자이며, 파리국립음악원에서 그레고리안과 지휘법을 공부하였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돕기위한 자선음악회와 환경보전과 인권회복을 위한 사회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으며 어린이들을 위한 노래와 예술가요 및 연주곡 등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만들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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