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주민 정신건강 실태 조사 결과 발표

‘나는 기회만 있으면 자살하겠다’ 10.7%. ‘나는 자살하고 싶은 생각이 자주 든다’ 28.7%.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이하 인의협)가 송전탑 공사가 강행되고 있는 밀양 주민 31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주민 정신건강 실태다. 인의협은 이런 결과에 대해 “6개월 전인 2013년 6월 조사 결과에 비해 한전과 시공사 직원, 경찰 등에게 학대나 폭력을 경험한 이들이 늘어났고, 이에 따른 정신적 피해도 증가했다”고 밝혔다. 또한 “헬기 소음이 지역주민의 불안감과 우울감을 증폭시키고 있으므로, 이런 가해 행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밀양 4개면(단장면, 산외면, 상동면, 부북면)에서 진행된 조사는 ▲송전탑 건설 저지 과정에서의 학대 및 폭력 경험 ▲헬기 소음에 관한 피해 ▲우울과 불안 등 정신에 관한 설문으로 이뤄졌다. 대상자의 평균연령은 64.1세였으며, 남성은 136명, 여성은 181명이었다.

조사 결과, 대상자의 71.9%가 ‘한국전력, 시공사 직원, 경찰 등이 위협적이고 무례한 행동을 취하여 불안한 마음을 갖게 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고, 63.4%는 ‘모욕적인 말, 욕설 등을 하여 감정을 상하게 하거나 수치심을 느끼도록 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고소 · 고발 경험은 전체의 반이 넘는 56.8%에 이르렀고, 17.4%의 응답자가 ‘뺨을 맞거나 발에 차이거나 주먹으로 맞았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인의협은 “2013년 5월 공사 재개 당시와 비교하여 각종 학대와 폭력이 더 증가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 밀양 송전탑 건설 주민의 학대 및 폭력 경험 유무. 2014년 1월 조사 (자료 제공 /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 밀양 주민의 학대 및 폭력 경험. 2013년 6월 조사. 주민들의 폭력 경험이 현저히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자료 제공 /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헬기 소음과 관련해서는 응답자의 77%가 ‘헬리콥터 비행으로 소음, 공포, 불안 등 신체적 정신심리적 불편을 매우 심하게 경험했다’고 답했다. 정신진단 검사를 활용한 우울, 불안 증상 조사에서는 87.3%에 해당하는 277명이 일반인 평균보다 매우 우울증을, 81.7%에 해당하는 259명이 일반인 평균보다 높은 불안증을 보였다. 인의협은 “2013년 6월 조사에 비해 증상 유병률이 두 배 이상 높아졌다”고 지적하며, “당시 조사에 비해 우울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특히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또한 이런 높은 증가 추세는 “초기 불안감이 주종이던 감정 상태가 우울감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는 결과물”이라고 전했다.

특별히 자살과 관련한 문항에서는 ‘나는 기회만 있으면 자살하겠다’ 10.7%, ‘나는 자살하고 싶은 생각이 자주 든다’ 28.7%로 이를 합하면 거의 40%에 이르는 주민이 자살 충동을 가까이 느끼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우울증상과 관련한 질문에서 ‘나는 모든 것이 다 불만스럽고 짜증난다’는 응답자는 59%, ‘나는 너무나도 슬프고 불행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고 응답한 이들도 57.7%에 달했다.

인의협은 헬기 소음과 우울감의 상관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헬기 소음을 약간 경험한 군, 상당히 경험한 군, 심하게 경함한 군으로 나누어 차이를 비교한 결과, “헬기 소음을 심하게 경험했다고 응답한 이들이 약간 경험했다고 응답한 이들에 비해 우울 증상을 호소하는 이들이 2.1배나 많았다”고 밝혔다.

▲ 밀양 송전탑 건설 주민들의 우울감 및 불안감 비교. 2014년 1월과 2013년 6월 조사 (자료 제공 /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밀양765㎸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이 결과와 관련해 10일 오후 밀양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사 중단을 촉구했다. 대책위는 “공사가 재개된 지 1월 9일로 100일을 맞았다. 그동안 벌어진 일들은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고통과 분노의 파노라마였다”면서 “103명의 노인이 병원으로 응급 후송되었고, 73명이 경찰에 연행되거나 출두요구서를 받았으며, 유한숙 어르신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말했다. 또한 헬기와 발파 소음 등으로 주민들이 받는 심리적 고통을 언급하며 “정부와 한전은 주민들의 고통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대책위는 기자회견을 마친 후 헬기 소음과 관련해 주민 357명의 이름으로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재정신청을 접수했다. 현재 한국전력의 개발보상 행태에 대해서도 주민 403명이 감사원에 국민감사 청구를 낸 상태다.

그러나 대책위는 “이런 행동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음을 알고 있다”며 “현재 밀양 주민들은 집단으로 공황상태에 빠져있다. 정치권과 종교계, 시민사회는 더 이상 지켜보지 말고 중재에 나서 달라”고 호소했다.

▲ 2013년 12월 7일 오전 11시, 영남종합병원 본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고 유한숙 어르신의 죽음에 대한 경찰의 왜곡 발표에 관해 유족과 밀양765㎸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의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장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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