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송경동 칼럼
부처들의 농성장

   


저 부처들 벌 받고 있는가? 戒를 받는가

고래 심줄 같은 그리움 도끼로 잘라버리고
전라도 화순 땅 운주사에 가서 보아라
인간들의 기다림에 기가 질려서 만정이 떨어져
부처는 세상을 팽개치고 벌렁 나자빠졌다
느닷없이 안식년 선포하고 결의문 채택하여
기똥차게 농성장을 차려버린 부처들은 결연하다
사랑하지 마라, 기다리지 마라, 현수막도 걸어 놓고
소낙비 오는 아침부터 폭설이 쏟아지는 아침까지
생트집의 세상은 각성하라고 결사투쟁이다
논산훈련소 훈련병들 철조망 통과 자세로
부처들의 농성은 당당하다, 그러나 쓸쓸하다

저 부처들은 농사꾼에게 배웠을 것이다
지금도 국회 앞에는 파란만장의 농민부처들이
허리에 쇠사슬 감고 드러누워 농성을 한다
오뉴월 농사 팽개치고 용맹정진할 때
전경들만 땡볕 공양 맹렬하게 퍼먹고 있다

-이중기, 부처들의 농성장


세속에서 묻힌 때들을 정화하고 싶은 많은 이들이 산사를 찾는다. 운주사에 들러 천년 와불을 보며 일상의 자잘함과 사사로움을 놓고 싶어한다.

그러나 불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시인은 WTO 세계화 속에서 벼랑 끝에 몰린 농민들이 ‘땅 농사’를 작파하고 서울 도심으로 올라와 짓는 ‘아스팔트 농사’ 한 복판으로 나아간다.

거기 이 시대의 미륵불들이 앉았거나 서 있거나 누워 있는 것을 본다. 검게 그을리고 세파의 그늘이 골골이 박힌 이마 위로 빨간 머리띠를 두른 이 시대의 불상들을 본다. 지금 여기에서 온 몸으로 세상을 위해 소신공양하다 이마저도 모자라 천년 농업의 뿌리를 지켜라며 새로운 시대의 농사를 짓고 있는 농투사니들이 부처가 아니라면 우린 어디에서 살아 있는 부처들을 만날 것인가.

 ‘처처불상 사사불공’ 이 세상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불성이 있으니 그들에게 경배하라. 종교는 모두 그 버르적거리는 삶 속에서 나왔나니.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불의를 만나면 불의를 죽이고, 저 정치모리배들 위정자들을 죽이고 파란 한 알의 벼 이삭도 제 가치를 인정받는 새 세상으로 지금 용맹정진하는 사람들은 한가로운 산사에 있지 않다. 저 차갑고도 뜨거운 도로 위에 있다.


이중기 / 1957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났다. 1992년 시집 『식민지 농민』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다른 시집으로 『숨어서 피는 꽃』, 『밥상 위의 안부』 등이 있다. 지금도 영천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송경동의 다른기사 보기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