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문화 이야기]


얼마전에 내가 초대받은 강의에서 참가자들의 나눔을 들은 소감이다. 주제는 '복음이 한국에 뿌리를 내려 토착화된 모습들이 어떤 것인가'였다. 한국인이 복음을 받아들여 신자상호간, 이웃종교인이나 무종교인들과 상호작용(혹은 상호접변) 하면서 빚어낸 문화(통칭하여)들이 어떤 형태로 형성되어 있고, 또 어떤 양상으로 지금도 전개되고 있는지 성찰하는 것이었다.

이 가운데 하나가 '가부장적 성직자'였다. 이 모임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 활동하면서 여러 곳으로부터 같은 이야기를 쉽게 들을 수 있다. 대체로 이 문제에 가장 민감한 층이 여성수도자들이다. 요즘은 평신도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져 여성신자들 가운데서도 이렇게 말하는 이들이 늘었다. 남성신자들은 자신들이 남성이라 그런지 가부장적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럼 왜 한국 사제들은 개인주의 문화권의 사제들과 다르게 가부장적이라는 말을 듣는 것일까?

신자들은 스스로 이 문화가 유교적 관습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하도 이 말을 많이 들어서 필자도 '아! 이것이 유교 때문이구나!'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종교와 같이 복잡한 현상을 한 가지 원인으로 단정하여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 실제로 유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천주교의 '성가정' 상도 가부장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국교회의 가부장적인 모습의 원인을 유교에만 혐의를 둘 수 없다. 게다가 같은 상을 배웠는데 어떻게 개인주의 문화권에서는 가부장적이지 않고. 이른바 집단주의 문화권에서만 가부장적인 모습이 강하게 나타나는가 하는 것도 유교만 탓할 수 없는 이유이다. 개인주의 문화권으로 분류되는 나라들 가운데서도 가톨릭 전통이 강한 나라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대개 가부장적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문제를 '왜 한국교회가 유교적인 가부장주의냐'라고 물을 것이 아니라 '왜 개인주의 문화권과 다르냐' 하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최근에 가장 보편적인 관점에 따르면 한국교회의 가부장주의가 유교적이라는 것은 '한국인이 이미 익숙해있는 문화와 동질적인 것을 가톨릭교회도 가지고 있어서 수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중국의 경우 '마테오 리치'도 당대의 지식인 또는 지배층인 선비의 복식을 따랐다. 조선에서도 유교적 지식인들이 먼저 서학을 받아들였고, 이후 중인으로 신자층이 변화되는 과정에서도 성직자가 양반의 반열로 받아들여졌다.

종교의 자유가 인정된 이후에도 일제, 미군정, 단독정부 수립 이후 권위주의적 정권이 이어지면서 서구식 계몽을 경험하지 못하였다. 지식인들의 생각에는 평등주의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참다운 시민혁명을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한국인으로서는 인간이 평등하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지구화를 들먹이는 요즘도 사람 간의 우열을 가리고, 공고한 신분주의 틀을 고착화시키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의 정당성은 개인주의 속성이 강하게 나타나는 나라들이 대부분 서유럽, 북유럽과 같이 시민혁명을 거친 나라들이었다는 사실이 뒷받침한다. 같은 유럽에서도 남유럽과 동유럽은 이런 속성이 강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된다. 그러니 교회 안에 존재하는 가부장적 권위주의도 그 사회의 시민 역량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아야 한다. 참다운 '개인'의 등장만이 이런 문화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현재 한국에서 진행되는 권위주의로 뒷걸음치는 퇴행은 교회 안에 온존하는 가부장주의를 더 오래 지속시키는 원인이 될 것이다. 이제라도 교회 안과 바깥은 나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박문수/ 프란치스코,  가톨릭대학 문화영성대학원 초빙교수, 평신도 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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