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 <8월의 크리스마스>, 허진호 감독, 1998년작
예전에 본 영화를 세월이 흐른 후 극장에서 다시 본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그런데 2013년에는 그런 일이 많이 일어났다. 뭐, 영화뿐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 곳곳이 ‘필름을 다시 돌리는’ 풍경들로 정신없이 돌아가긴 했다.

실버 극장을 표방한 몇몇 곳의 ‘명화’ 상영만이 아닌, 극장가에 ‘추억의 영화’ 재개봉 열풍이 이어졌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한국 상업영화 최초의 재개봉작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었다. 얼마 전 모 극장 홈페이지에서 진행한 ‘다시 보고 싶은 명작’을 뽑는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을 정도의 작품이니 재개봉은 어쩌면 시간 문제였다. 한국 영화에서 멜로물이 거의 실종됐던 2013년 가을이야말로 적기였다. 전국 72개관이라는 최대 규모의 당당한 재개봉이었다. 지난 11월 7일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개봉해 연말까지 상영이 이어졌다.

나로서는 극장에서 본 건 처음이었다. <8월의 크리스마스>가 개봉했던 1998년에는 어쩌다 보니 관람을 놓쳤다. 아마 그 다음해에 비디오로 본 것 같다. VHS 비디오와 집에 있던 텔레비전의 한계는 있었지만, 나는 그때 그 영화를 정말 집중해서 보았다. 배우 한석규와 심은하, 유영길 촬영감독과 허진호 감독과 김동호 조명감독. 그들이 빚어낸 매 순간 순간의 영상을 홀린 듯이 보았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진사와 앳된 주차단속원의 사랑 혹은 연애 직전의 설렘 등등을 여전히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 절제된 표현들이었지만 여운이 오래 남는 명작이었다.

내 기억은 정말 정확한 기억인가?

그런데 ‘다시’, 아니 극장에서는 ‘처음’ 본 그 영화는,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저런 장면이 있었나. 저런 사람이 등장했었나. 아, 이 장면이 저런 느낌이었던 건가. 그땐 이런 느낌이 아니었던 거 같은데. 내 기억은 왜 영화를 드문드문 기억하고, 어떤 사건과 어떤 사람은 아예 싹 지워버린 걸까.

시간이 지나도 선명하게 남은 것들과 전혀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진 것들의 조우. 그 익숙하면서 낯선 부조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장면들에 대한 신선함. 엄청나게 흥미진진하고 혼란스러운 일이었다. 옛날에 본 영화를 오랜 시간 뒤에 다시 보게 되는 경험 말이다. 옛날 영화를 ‘다시’ 돌린다는 거, 생각만큼 뻔한 일이 아니었다. 실은 조금도 뻔하지 않았다. 그리고 기억이란 그리 선명한 것도 믿을 만한 것도, ‘흐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 기억 속 ‘비디오’로 본 그 영화는, 어쩌면 그저 당시 나의 심경의 한 소산일 뿐인지도 모른다. 기억이란 그중 일부를, 아니 한두 가닥을 뽑아 정리한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다 안다고 생각했었다. 다 아는 내용이라 여겼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전혀 내용을 모르는 그 어떤 최신작보다 더 긴장하고 몰두해서 보고 말았다. 머릿속이 바빴다. 기억-생각-스크린-예상을 재빨리 배치하고 쫓아가느라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했다. 영화관으로 가는 동안에는 설렜고, 영화를 다 본 다음에는 기진맥진했다. 기억하고 있는 것과 방금 본 것을 통합하는 데 꽤 에너지가 들어갔다. 물론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의외의 신선함이었으니까. 게다가 영화는 그때나 지금이나 훌륭했다.

결론적으로 그 영화는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그 영화가 아니었다. 그 남자는 내가 안다고 여겼던 그가 아니었다. 그 여자 또한, 아니 영화의 모든 장면들이 다 예상과 달랐다. 나 또한, 늘 똑같은 상태로 지내온 일관된 내가 아니었다. 적어도 14~15년 전에 그 영화를 봤던 나와 지금의 나는 달랐다. 새로운 발견, 새로운 내러티브였다.

 

과거로만 끝나는 과거는 없다

영화를 본 직후, 적어도 줄거리만은 확실하게 촘촘히 기억할 수 있었던 그 시간에 내 머리를 스친 것은 어이없음이었다. ‘아니, 15년 동안 대체 뭘 기억한 거지?’

내가 15년 전에 보았다고 생각한 그 남자 김정원(한석규 분)은 좀 답답했다. 그땐, 사랑은 적어도 저것보다는 뜨겁지 않을까, 좀 더 뜨거워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그 여자 류다림(심은하 분)의 감정은 잘 모르겠다 쪽이었다.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너무나 건강하고 발랄하고 예뻐서 되레 얄미웠던 것일까. 그 시절의 내가 가장 헤아리지 못했던 것은 다림의 감정선이었던 것 같다. 당시 여주인공 캐릭터를 내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은 뜻밖이었다. 그리고 왜 남자들이 정원이라는 캐릭터를 못내 잊지 못하고 추억하는지도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나는 그 영화를 정말이지 내 멋대로 기억한 셈이다. 싱거웠다, 그땐 그 영화가. 어쩌면 내가 강한 자극들에 중독된 상태였는지도 모르겠다고 이제야 생각한다. 가장 먼저 알게 된 중대한 기억의 오류는, 영화 광고문부터였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나는 긴 시간이 필요한 사랑을 하고 있다.” 15년만에 깨닫게 된 오류였다. 나는 “긴 시간이 필요한 사랑을 하려 한다”로 잘못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이 이미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그땐 왜 몰랐을까. 사랑을 하려다 만 남녀로 내 기억에 남은 것임에 틀림없다. 나는 영화의 느낌을 어쩌면 완전히 곡해해서 저장한 건 아닐까. 영화 관람 뒤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것은, 십수 년 전의 내 상태였는지도 모른다.

그날 극장을 나서면서부터 이어진 질문에 아직 시달리고 있다. 눈보라가 치고, 어느 대학교 담벼락에는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줄줄이 나붙던 날이었다. 어떤 시대를 실제로 경험한 사람들과 과거를 역사책 속의 글자로 배운 사람들 중 누가 더 그 시대의 정확한 ‘기억’을 소유하게 되는 것일까? 그 옛날의 나와 지금의 나, 누가 더 영화를 잘 ‘보고’ 있는 것일까? 더 살아보면 알아지려나. 지금은 추억과도, 기억과도 남은 건 전면전뿐인 듯한 살벌한 ‘복고’의 시대인 것을.
 

 
 

김원 (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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