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석 신부의 Spring Tree]

오늘은 한해의 끝 날입니다. 아침에 수사, 수녀, 신자들과 함께 감사미사를 봉헌했습니다. 한 해 동안 사느라고 수고 하셨습니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면 기적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모두다 주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 생각하니 다시금 감사합니다.

우주만물의 참다운 진리를 깨닫는 참된 신앙인은 좀처럼 기적에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매일 매순간의 일상이 모두다 기적과 이적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기적과 이적만 쫓는 신앙은 오히려 하늘의 질서를 그르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적을 따르는 신앙은 껍질에 불과 합니다. 그런 따위네 관심을 기울이게 되면 진정 오늘의 기적과 이적을 망각하고 사는 위험이 있습니다.

 ⓒ박홍기

최근에 들은 인상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개선장군이 로마로 귀향할 때는 노비 한 사람을 마차 뒤에,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숨겨두는 관습이 있습니다. 전쟁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둔 장군들은 황제가 기다리고 있는 궁전을 향해 로마 시내를 행진하는 동안 모든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서 만세를 외치며 꽃을 던진다고 합니다. 이때 개선장군은 네 마리의 말이 이끄는 수레 위에 서서 시민들의 환호에 일일이 손을 들어 화답하게 되어 있는데, 바로 그런 마차의 수레 뒤에는 장군이 고용한 노비 하나가 숨어서 열광적인 환호에 손을 흔드는 장군에게 끊임없이 이렇게 외친다는 것입니다.
“그대여 너는 네가 인간임을 잊지 마라, 장군이여, 너는 네가 인간임을 잊지 말아라.”

개선장군은 자신을 열광적으로 환호하는 로마 시민들의 외침 소리와 그 모습을 보는 동안 무의식중에 자신이 그런 대접을 받아도 마땅하다는 황홀경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로 인해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 신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빠져 교만해지고 우쭐거리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태양을 향하다 촛농으로 만든 날개가 녹아 추락하여 죽는 희랍신화의 이카로스처럼 비참하게 몰락할 것을 경계하는 현명한 예방책이었던 것입니다.

이게 바로 지혜입니다. 권력에 심취하여 신기루와 같은 허상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지혜가 필요했습니다. 미리 노비를 고용한 개선장군의 지혜가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지 않으려는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부도 종종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습니다. 나를 존중하고 귀하게 여겨주는 사람들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문제는 내 스스로 그런 존경을 받을 만 하다고 생각하여 우월감과 교만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정말 잘나서 사람들이 나를 존경하고 따르는 것 인양 거들먹거리기 일쑤입니다. 이럴 때 ‘너 자신을 잊지 말아라’를 끊임없이 외쳐주는 노비와 같은 친구가 주변에 있는 것은 지극히 다행한 일일 것입니다.

내게도 잠을 깨우는 죽비와 같은 존재가 있습니다. 그 존재는 고장 나지도 않고 항상 내게 길라잡이 역할을 합니다. 그 나는 늘 텅 비어 없는 듯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알아차리며 이렇게 소리를 냅니다.
“잘난 체하지 마라. 남의 칭찬을 너무 사실대로 받아들이지 마라. 인간임을 잊지 마라. 지금 꽃을 던지는 저 사람들이 언젠가는 돌을 던질지 모를 일이다.”

내 안에 계시면서 나를 인도하는 그분은 없는 듯 계십니다. 그 분은 모든 것을 알아차리는 분이십니다. 세상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이 말씀이 힘들고 어려울 때 참 많이 힘이 되던 말씀이었습니다. 역시 나와 관계하던 수많은 인간들도 스쳐지나 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인간들과 관계된 수많은 사물들도 연쇄적으로 사라졌습니다. 관계되고, 관계되고, 관계된 것들이 사라져가고 없습니다.

그러다가 일순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계속되는 사라짐 속에서 놀라운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라지고, 사라지고, 사라짐을 계속하다 보면, 결국 나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뿐만이 아니라 지구 전체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아무리 하찮은 미물이라고 하더라도 저마다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대우주를 형성하는 필수적인 구성요소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삶의 진가를 알아차리는 것은 고요함에 있습니다. 세상의 휘둘리지 않는 고요함에 들어오면 평화로움이 시작됩니다.

고요히 앉아 지난해를 다 접어두고 내 존재를 품어내는 숨을 지켜봅니다. 평온함을 통하여 내가 사라지는 고요함에 들어갔다가 나옵니다. 나를 지켜봅니다. 촛불이 흔들리면서 나도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촛불이 안정되면 나도 안정되었습니다. 때로는 온 세상이 황홀한 빛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때로는 나 자신도 황홀한 빛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나는 비로소 만물이 눈물겹게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시는 그 분은 내 정신과 육신의 급소도 기가 막히게 잘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적절한 시기에 급소를 찔러 잠자고 있는 나를 깨웁니다. 가끔 나는 너무 아파 힘들어서 왜 이렇게 힘들게 하냐고 짜증을 내기도 했지만 그 보살핌으로 지금 내가 살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당신의 적절한 일깨움이 통해 굽었던 마음이 펴졌습니다. 불구와 같은 마음이 꼿꼿해짐을 느낍니다.

주님의 일깨움이 없었다면 나는 무감각의 식물인간으로 전락해버릴지도 모릅니다. 때로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일, 받아들일 수 없는 일 앞에 좌절했습니다. 주저앉아 허망하게 하늘만 쳐다보던 때가 있었습니다.
“허허 이게 뭐야.”
“이럴 수도 있단 말인가.”
“아! 정말 모를 일 천지구나.”
“나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습니다.”
“아! 내가졌습니다.”

나의 내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관통하는 깨달음은 하나입니다.
“나는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나에게 있어 인생열차의 동반자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면서 나를 인도하시는 그분이 동반해 주심을 믿습니다. 그분이 바로 내주님이십니다.

2014년도 주님께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주님, 아픈 고통은 싫습니다.
제발 아프지 않게 살살 깨우쳐 주세요.
아이고! 사람 살려, 이런 소리는 안하게 미리 미리 깨우치며 살겠습니다.


 
최민석 신부 (첼레스티노)
광주대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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