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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 대천사[루시수녀의 이콘응시]

   

미카엘 대천사. 안드레이 루블료프. 15세기

En Cristo

준비한 선물에 짧게나마 몇 줄의 글귀를 적으려고 적당한 카드를 찾다가 어린 아이가 조심스레 다리를 건너는데 아기 천사가 옆에서 무사히 건널 수 있도록 기도하는 귀여운 상본이 눈에 띄어 한참을 바라보았다.

어릴 때 교회에서 받았던 그 상본 같았다. 내 입가에 미소가 번졌던 건 그 상본 하나 받으려고 성경 문제를 내는 선생님 앞에서 “저요!”를 외치며 많은 아이들이 몰렸고 처음 보는 광경에다 고함소리에 시끄러워 귀를 막고 앉아 있는 나에게 선생님이 긴 팔을 뻗어 “오늘 처음 온 우리 친구에게 주자”며 모두가 가지고 싶어 들썩이던 그 행운의 상본이 나에게로 온 그 기억 때문이다.

그때 천사를 처음 보았다. 잠자리에 붙여 놓고는 나의 천사에게 기도라는 것도 처음 해 보았던 기억이 새로웠다.

위에 소개한 이콘은 안드레이 루블료프가 그린 바로 성 미카엘 대천사이다. 수많은 세월동안 작품은 버려져 있었지만 다행히 큰 손상 없이 발견된 것은 기적이 아닐까! 그의 작품은 따스함이 가슴으로 전해오는 그런 느낌이 있다. 아무리 다른 이콘과 섞어 두어도 이콘화가로서 수도자로서 그가 그린 이콘에서 흘러 나오는 그분 특유의 기도는 정말 신비로운 것 같다. 전체적인 색깔 또한 중압감이 배제된 절제된 색감으로 인해 보는 이들로 하여금 내적 평화를 갖게 한다.

우리가 잘 아는 성 미카엘 대천사의 성화나 이콘은 대부분 칼을 가지고 악의 상징인 용과 싸우는 모습이나 최후의 심판을 알리는 모습, 또는 어둠의 세력을 짓밟는 모습이든지 붉은 말을 타고 악마를 대적하는 천사의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 이콘에서는 고요가 흐르고 있다.

어떤 문제나 관계가 잘 해결되지 않을 때는 이 이콘을 바라본다.
어디에도 격렬함이 보이지 않는 이 이콘의 고요 속에 머물다 보면 미카엘 대천사는 정(定)적인 표정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에 시선이 머물러 있다. 그 눈빛에 마음을 모운다. 뒤엉켜 있는 내면의 그 무엇의 시작을 찾기 위해 천사에게 안내를 부탁한다.

영(靈)적 눈을 따라 가다 보면 외면할 수 없는 나의 이기심과 교만을 만나게 된다.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직시하다 보면 빈털터리에다 가진 건 자존심 밖에 없는 자신을 본다. 또한 내면 깊이 숨어 있는 악을, 자신조차도 알지 못하는 엄밀한 모습을 천사의 눈빛을 통해 직면한다. 그것을 나 스스로가 끄집어 내려는 용기를 가질 때 비로소 미카엘 대천사는 도움의 칼을 뽑고 그리하여 거칠고 보잘것 없는 우리의 마음을 소박하게 정화시켜 그리스도께로 인도한다.

사실 이 이콘은 나의 방 어디에도 걸려 있지 않다. 이미 마음 기도방에 걸어 두었기 때문에 보지 않아도 바라보기만 하면 보인다!

이 이콘도 데에시스의 하나인지 모른다. 그의 손과 모습은 그리스도께 간구하는 자, 흠숭하는 자의 자세이기 때문이다. 그의 눈빛 가득히 담겨 있는 연약한 우리를 위한 간구, 그래서 그분은 우리를 지키는 직무를 기쁘게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고통이 슬그머니 들어오려 할 때, 마음의 흔들림이 심할 때 알게 모르게 우리는 천사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는 것을 이 이콘을 통해서 느꼈으면 한다.

수많은 물질적,정신적인 유혹 앞에서 과감히 돌아서게 만드는 자, 마음에 긍정적인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할 수 있어’를 외치게 하는 자, ‘너는 소중한 하느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주는 자, ‘희망이 너를 기다리고 있어’라고 말해 주는 자, 바로 그가 천사이다.

세상엔 많은 천사들이 있다. 이름 있는 천사가 있는가 하면 이름 없는 천사도 많다. 사실 그들은 자신이 천사인지도 모른다. 그저 선(善)을 베푼 것뿐인데 뒤에 보이지 않는 날개(!)가 있어 곳곳에서 많은 이들에게 기쁨을 나르며 용기를 준다.

엘살바도르의 빠빨로따(Papalota) 마을에 있을 때 콩 추수를 끝내고 붉게 타는 석양을 뒤로 하며 돌아오는 길에 소달구지에 앉아 땀을 식히는데 아이들이 선물로 들려준 노래가 들리는 듯하다. 그들의 깔깔거림과 지휘라도 하듯 손을 휘~ 저으며 부르던 노래와 웃음은 어느 갑부도 가질 수 없는 아름다움이라는 부(富)였다.
선교사로서의 행복은 바로 이런 순간들에 그들의 노래와 함께 있는 것이다.
직역을 하면,

만약에 희망이 너의 마음을 두드리며(똑 똑)
들어가기를 청하면
이렇게 말하여라.
물론이지, 물론이지
하느님이 내안에 있으니
너를 위한 자리가 있고말고!

만약에 악마가 너의 마음을 두드리며(똑 똑)
들어가기를 청하면
이렇게 말하여라.
안돼, 안돼.
하느님이 내 안에 계시니
너를 위한 자리가 없어.

이렇게 오지의 한 구석에서도 작은 천사들이 있어 수고한 자들의 땀을 값지게 만들어 준다.
지금 있는 그 곳에서의 그대들도 누군가의 천사이다.


임종숙/ 루시아 수녀,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수원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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