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경제와 교회 - 2]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세상은 자꾸자꾸 변해, 글을 다시 수정해야 변하는 세상에 알맞은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변하는 방향이 나빠지는 쪽이 훨씬 많아서 문제이지만, 그래도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언행만큼은 가뭄의 단비마냥 우리가 가고 있는 길과 우리의 속을 동시에 시원하게 적셔줍니다.

주민들의 참여로 이루어진 전국의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약칭 의료사협)에서는 요즘 건강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많게는 20년, 그리고 저희 민들레의료사협과 같은 경우 10여 년이 지났지만, 이제 다시 한번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이 바른 길인지, 우리가 지역에서 주민들의 건강을 위해 건강한 조직이나 건강한 살림살이를 하고 있는 건지 돌아보고 점검하는 계기가 필요할 때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됨에 따라, ‘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에서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으로의 전환이라는 커다란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더욱 ‘건강’이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고자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생협법에 따라 ‘소비자생활’이라는 명칭으로 있었으나, 의료가 사고파는 상품도 아니고, 환자를 소비자라고 규정하는 것도 시장논리에 따른 참으로 적절하지 않는 표현이었으며, 이제 사회적협동조합으로 변경을 하고 나니, 그러면 ‘사회적’으로 맞춤한 의료가 무엇이고 복지가 무엇인지, 이 시점에서 자연스럽게 점검을 하고 고민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우선 어떠한 협동조합이든, 협동조합에는 7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이 원칙은 전세계 어디에서도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됩니다. 자발성, 개방성, 민주적 의사구조, 자율과 독립성, 교육훈련, 지역사회 기여, 협동조합끼리 협동 등, 그 협동조합이 무늬만 협동조합인지 아닌지 평가해보려면 이 원칙에 따라 운영을 하는지 살펴보기만 해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다른 어떤 좋은 덕목들과 기준들을 약속하지 않더라도, 위의 7가지 원칙을 제대로 지키기만 해도 그 협동조합은 협동조합에 합당한 정체성은 물론 이미 ‘사회적’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를테면 농협이 협동조합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민주적 의사구조, 자율성, 독립성 등의 평가를 통해 그렇다, 아니다 평가를 내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농협이 협동조합일까요?

의료사협에서는 아직은 미완이지만 대략 이렇게 세 가지 갈래로 건강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첫째, 아름답고 충만한 상태로 나아가는 과정으로서의 건강, 둘째, 조합원의 건강주체성과 의료의 보완적 역할, 그리고 셋째, 관계들의 확장과 성숙에서 건강을 찾습니다. 이렇게 건강관에 대한 논의가 벌어지고 있을 때, 저는 다른 각도에서 건강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건강은 타인에게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적으로 확대해 보면, 정부가 의료법인이 영리법인으로 자회사를 설립하게 하는 등 꼼수를 써서 의료민영화를 시작하겠다고 나서는 이즈음에 이를 막고, 의료의 공공성을 조합원들과 함께 이끌어낼 때 비로소 ‘건강’이 지켜진다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공공성에 대한 다짐들을 실제 의제로 확산시켜, 의료자본에 잠식당한 미국의 사례와 같은 비참하고 병약한 상태가 되지 않도록 사회적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다름 아닌 ‘건강’이라는 말씀입니다. 정말로 4700만 명이 의료보험이 없는 나라, 단순한 충치를 치료하지 못해 치주염으로 소년이 사망하는 나라의 전철을 밟기 시작하는 정부에 대해, 의료복지협동조합의 조합원뿐만 아니라, 모든 생협과 협동조합이 연대해서 막아야 하고 거꾸로 더욱 공공성을 강화해야 하는 것이 협동조합의 원칙에도 부합하는 일입니다.

교회와 관련한 의료복지는 단연 성모병원이라고 상징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병원이 필요한 경우는 병원을 통해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고, 그 좋은 사례로 우리는 이태석 신부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혹스럽게도 의료민영화 논란의 중심에는 항상 가톨릭교회가 운영하는 대학병원들이 종교재벌병원의 상징처럼, 그리고 떠오르는 새로운 자본의 상징처럼 자리 잡고 있습니다. 빅5의 하나로 들어가 있는 강남성모병원이 작년(2012년)에만 6700억 원의 수익을 내고 있을 때, 진주의료원은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고 강제로 폐업 당했습니다.

교회가 재벌 중심의 의료민영화를 반대한다고 했을 때, 우리는 자가당착의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개신교의 대형교회를 비판한다면, 우리 스스로 대형병원에 대한 자기비판도 엄격히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자본화된 대형병원의 문제를 해결할 때에 교황님의 말씀대로 비로소 진정으로 가난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의 의료생협 병원들처럼,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2, 3차 의료기관으로, 자본에 의한 병원이 아닌 지역 신자들과 주민들에 의한 병원으로 가톨릭 대형병원들이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 전국에 있는 가톨릭 병원들이 서민을 위해 존재하는 의료원 수준의 병원으로 자리매김한다면 얼마나 많은 변화들이 일어날까요? 이것이 부질없는 꿈일까요?

교황님은 가난한 사람과의 연대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이 되라고 직격탄을 날리십니다. 부는 사회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건강을 가져다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복음 어디를 보아도 부를 찬양하고 부자를 칭송한 내용은 없습니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을 향했던 발길을 외로이 돌렸습니다. 그리고 부자이기 때문에 누구의 이야기도 듣지 못하는, 마치 오늘날의 불통의 권력자들을 말하고 있는 것 같은 부자와 나자로의 이야기가 있을 뿐입니다.

이제 사회는 “안녕들하십니까”라고 안녕을 묻기 시작했습니다. 옛날에는 어른들에게 “밤새 안녕”을 확인하며 문안을 드렸지만, 지금의 안녕은 잘 지내고 있음이 아닌 생존을 확인해야 하는 안녕입니다. 그 지경까지 내려간 취약하고 불안하고 금이 간 사회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도 주민들과, 조합원들과 더불어 우리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새롭게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 부족하지만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개인과 사회의 건강을 위협하는 의료민영화의 문제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 공공성의 건강함을 지키는 일에 더욱더 적극적으로 나서겠습니다. 교회의 병원들도 그 길에 함께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교회의 병원은 교회가 아닌가요?

의료 민영화 반대, 의료 공공성 강화 찬성!
 

 
조세종 (디오니시오)
대전 민들레의료생협 이사장
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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