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국수집 이야기]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이사 42,3).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한 지도 꽤 되었지만 아직도 술주정을 하는 손님을 만나면 당황스럽습니다. 술이 한 잔 들어가면 두 얼굴의 사나이처럼 변해버립니다. 술에 취하기만 하면 대화 좀 나누자고 찰거머리처럼 따라다니던 손님도 술 깬 다음에는 이야기할 줄도 모릅니다. 부러진 갈대 같은 사람이고, 꺼져가는 심지 같은 사람입니다.

아침 준비를 하면서 쌀통에서 쌀을 덜어내는데 손님 한 분이 들어옵니다. 술에 취했습니다. 밥을 달라고 합니다. 아직 준비가 안 되었으니 조금 후에 오시라고 했습니다. 그럼 담배를 하나 달라고 합니다. 드렸습니다. 쌀을 몇 컵 담았는지 잊어버렸습니다. 쌀을 다시 쌀통에 붓고 다시 컵으로 세면서 담고 있는데 이번에는 라이터를 빌려달라고 합니다. 불을 붙여 주었습니다. 또 숫자를 잊어버렸습니다. 다시 쌀통에 붓고 처음부터 다시 담고 있는데 또 들어와서 밥을 달라고 합니다. 이번에는 듣고도 끝까지 쌀을 열넷까지 헤아려서 담았습니다. 자기를 무시한다고 화를 냅니다. 밥을 빨리 준비해야 하니까 제발 조금 있다가 오시라고 돌려보냈습니다.

번잡스런 오전 시간이 지나가고 조금 한가한 틈을 타서 봉사자들과 점심을 먹었습니다. 거의 다 먹었을 때 아침에 와서 술주정을 했던 손님이 또 왔습니다. 곧 봉사자들의 식사가 끝나니까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듣기 고약한 말을 합니다. 자기처럼 불쌍한 사람에게 먼저 밥을 줘야지 왜 자기들끼리만 먹느냐는 것입니다. 정부 지원을 받았으면 제대로 해야지 하면서 온갖 욕을 합니다. 밖에 말리기 위해 놓아두었던 도마를 들고 위협까지 합니다.

오후 두 시쯤 되었는데 술주정하던 손님이 또 왔습니다. 밥을 왜 안 주느냐고 떠듭니다. 주먹을 불끈 쥐고선 때릴 듯 위협합니다. 술이 좀 깬 다음에 오라고 했습니다. 계속 욕지거리를 하자 다른 손님이 겨우 설득해서 데려갔습니다. 술이 깬 다음에는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기억조차 못하고 또 식사하러 올 것입니다. 한 번은 매정스럽게 한 끼를 굶겨야겠습니다. 그래야 분이 좀 풀릴 것입니다. 속이 밴댕이 속입니다. 하느님께서도 놓아두시는 부러진 갈대 같은 사람, 꺼져가는 심지 같은 사람을 괴롭히려 하니 말입니다.

화를 삭이려고 밖에서 서성이는데 순의 할머니가 오셨습니다. 망설이다가 힘겹게 입을 여십니다.

"쌀 좀 주실 수 있어요?"
"그럼요."
"집에 아픈 사람이 두 사람이나 있어요. 영감이 다섯 달이나 병원에 입원했는데 돈이 없어서 병수발 들 사람을 구할 엄두도 못 내고 직접 영감 대소변을 받아내느라 고물 줍는 일을 못했더니 집에 먹을 게 아무것도 없어요."

"주민센터에 가 보셨어요?"
"주민센터에 갔다가 오는 길이예요. 영감이 중풍으로 쓰러진 지 다섯 달이 되었는데 여섯 달이 되어야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될 자격이 있는지 심사할 수 있다거든요. 한 달이 더 지나야 된데요."

순의 할머니는 일흔셋입니다. 아들이 장애가 있어서 할머니가 수발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려운 일들이 엎친 데 덮쳤습니다. 할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졌습니다.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니 할머니가 일을 하실 수 없습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종이상자를 줍는 일을 할 수가 없으니 살 길이 없습니다. 쌀 한 포를 드렸습니다. 떨어지기 전에 또 오시라고 했습니다.

순의 할머니가 휠체어를 밀고 할아버지 산책을 시키십니다. 간병인을 쓸 수 없습니다. 할머니가 고물 줍는 일을 해서는 간병인의 일당을 치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조그만 집이 있어서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시고야 생활보호대상자가 될 수 있는데 한 달은 더 기다려야 합니다.

순의 할머니가 굴을 따 오셨습니다. 고마운데 갚을 길은 없고 그래서 바다에 나가서 굴을 땄다면서 한 사발이나 주십니다. 귀한 굴을 넣고 배추 겉절이를 만들었습니다. 저도 맛있게 먹었습니다. 우리 손님들도 맛있게 드셨습니다.

서영남/ 인천에 있는 민들레국수집을 운영하면서 노숙자 등 가난한 이웃들과 더불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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