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지성의 정원’ 오정민씨 병역거부 선언


지난 크리스마스, 국방부가 병무청 용역의 여론 조사 결과를 발표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국방부가 대체복무제도 도입 약속을 뒤엎으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표명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불안한 마음을 떨쳐낼 수 없었던 사람들이 아마 군입영을 앞두고 있으면서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대체복무를 기다리는 많은 젊은이들이 입영일자나 재판을 연기해온 까닭에 한 때 1,000명에 육박하는 병역거부 수감자는 현재 450여 명 정도로 줄어들었지만, 국방부가 계속 결정을 유보하거나 도입을 번복한다면 수감자의 숫자는 금방 1000명을 넘어설 것이다.

오정민 씨(사진출처/오마이뉴스)
2009년 1월 6일, 아직 새로운 한 해가 좀처럼 익숙해지기도 전에 한 젊은이의 감옥행이 결정되었다. 출판사 갈무리에서 일하며 ‘다중지성의 정원’을 만드는 사람인 오정민 씨가 입영날짜인 1월 6일에 기자회견을 통해 선택한 것은 군복과 훈련소가 아니라, 수인(囚人)이 됨으로써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길이었다. 이라크 전쟁과 한국군의 참전, 그리고 최근의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을 보면서 전쟁과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하고 진지한 고민을 하였고, 그 결과 비록 부모님께 눈물을 드리지만 스스로 자유인이 되려는 노력의 하나로 취한 게 병역거부였던 것이다.

오정민 씨의 대학시절 친구들, 함께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 병역거부로 이미 감옥을 갔다온 병역거부자들, 아무런 인연도 없이 그저 인터넷을 보고 찾아온 사람들, 저마다의 이유로 오정민 씨의 병역거부선언을 지지하기 위해 모인 30여명의 사람들과 함께 회견장에 있던 있던 오정민 씨의 얼굴엔 두려움보다는 편안한 미소가 드리워져있었다.

'다중지성의 정원'에서 함께 하고 있는 영광 씨는 지지발언을 통해서 "학교에서는 학생으로, 일터에서는 노동자로, 군대에서는 군인으로, 선거에서는 유권자로, 거리에서는 잠재적 범죄인으로, 화폐 앞에서는 채무자로” 세상 모든 곳에서 우리는 사실상 감옥에 갇혀있다고 이야기하며, 자유를 위한 싸움은 “자본과 국가의 재생산에 복무하는 삶을 그만두겠다는 단호한 선언”이라며 지지의사를 밝혔다. 오정민 씨의 친구이자 병역거부자인 경수 씨는 자신의 병역거부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병역거부가 개인의 결단이긴 하지만 결코 혼자 걷는 길이 아니다”며 친구의 험난한 앞길을 도와주겠다는 작은 약속을 하였다.

병역거부선언은 감옥행의 결심을 알리는 자리였지만, 노래공연과 덕담으로 이루어진 훈훈한 풍경이 연출 되었다. 오정민 씨의 친구라고 밝힌 한 여성은 자기 아버지도 감옥에 갔다왔지만 그 시간을 값지게 보내고 왔다고 하면서 오정민씨 또한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며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2월에 영장이 나올 예정이라는 한 청년은 오정민 씨와 그 이전의 병역거부자들이 닦아놓은 길이 있어 자신이 좀 더 편하게 갈 수 있다고 하면서 이 길이 좀 더 넓어지길 바란다며 감사의 인사를 건네기도 하였다.

국방부가 허우적대고 있는 사이 또 한 명의 청춘이 감옥을 향한 선택 아닌 선택을 하고 있다. 어쩌면 슬프게도 오정민 씨가 마지막이 아닐 것이다. 지난 60여 년 동안 모질고 모진 형벌도 평화를 향한 소박한 마음을 가진 젊은이들의 행동을 돌릴 수 없었다. 또 다시 1,000명이 넘는 젊은이들을 감옥에 가둘 것인지, 안보의 변화된 개념에 입각해서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할 것인지 국방부의 마지막 결정에 이 모든 것이 달려있다.

이용석/전쟁없는세상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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