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가난] 100차 프리 버마 캠페인

 

주한 버마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는 프리 버마 캠페인 참가자들. 

지난 12월 30일. 유난히도 춥던 날 버마 대사관 앞에서 100차 프리 버마 캠페인(Free Burma Campaign)이 열렸다. 프리 버마 캠페인은 NLD 한국지부, 버마행동 등의 한국 내 버마 민주화 단체뿐만 아니라 한국의 인권단체 등 모두 7개 단체가 함께 연대하여 진행해온 캠페인이다. 2007년 1월부터 2년간 매주 화요일 12시부터 1시까지 점심시간을 활용해 진행했던 프리 버마 캠페인은 이 날로 막을 내렸다. 7개 단체 외 40여명이 모여 매서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Free Burma! 버마의 민주화는 아시아의 평화다!”라고 구호를 외치고 버마 민중가요를 부르며 연대하는 참가자들의 모습은 추위를 무색케 할 정도로 뜨거웠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의 사회로 시작한 집회는 여러 단체에서 온 참여자들의 발언과 지지 성명으로 이어졌다. 오창익 사무국장은 왜 프리 버마 캠페인이 100차에서 멈추는가에 대해 사람들이 의문을 가진다면서 “우리가 여기에서 멈추는 이유는 더 열심히 싸우기 위함”이라며 “우리의 싸움이 작지만 깊은 격려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용산 나눔의 집의 최준기 신부(성공회)는 연대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민주화를 위해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쓰러져가야 하느냐며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했다. 버마를 지원하는 모임의 유종순 대표는 “아시아의 평화와 민주화를 위해 프리 버마 캠페인이 큰 힘이 되었으며 이 캠페인은 한국사회에 버마의 자유, 민주주의, 인권에 대해 알리고 동참을 이끌어냈다”라고 평가했다.


이 날, 지난 2년간 민주주의를, 최소한의 정치참여를, 인권을 위해 발언하는 프리 버마 캠페인 참여자들의 마지막 목소리 앞에 버마 대사관은 여전히 아무런 반응조차 없었다. 그동안 프리 버마 캠페인은 버마 민주화를 위한 국내외 다양한 운동을 지원하고, 한국에 버마의 실상을 알려 버마 민주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이를 통해 구체적으로 국제연대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또한 한국 정부에 대해서도 버마 군부정권에 대해 경제적, 군사적, 외교적 지원을 중단하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민주주의 지원 의무를 다할 것을 촉구해왔다.

시민들과 함께 하는 매주 정기 캠페인 이외에 프리 버마 캠페인은 버마 민주화를 위한 다양한 버마 상황을 한국 사회에 알리는 가교 역할을 수행했다. 캠페인 참가자들은 중국 대사관 앞에서 버마 군부에 무기를 공급하며 버마 민주화를 외면하는 중국 정부를 규탄했고, 디페인 학살이나 8888민중항쟁 기념행사를 개최하여 진상규명과 모든 정치범의 조속한 석방 등을 촉구했다. 또한 2007년 9월부터 시작한 버마 샤프란 항쟁을 지원하기위해 ‘버마민주화운동탄압 규탄 긴급행동’을 한국 사회에 제안하여, 버마 민주화운동 희생자 추모와 민주화운동 지지를 위한 촛불문화제, 버마 군부 규탄 기자회견, 민주화운동 지원 거리모금과 사진전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버마는 중국과 타이 사이에 있는 4700만 명이 살고 있는 나라다. 포털에 검색하면 ‘미얀마’라고 바뀌어서 검색되는 그 나라가 바로 버마다. 버마인들은 자신들의 나라에서 외세도 아닌 바로 동족에 의해 독재정권이 세워지고 나라의 이름이 바뀌고 동족의 손에 의해 잔인하게 학살당하고 인권을 유린당하고 있다. 이들은 몇 십 년째 그들의 나라인 버마가 아닌 ‘미얀마’에서 이렇게 외국인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도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이주노동자로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지난 수 십 년간의 역사에서 군부독재에 항거하며 민주주의를 부르짖었듯이 버마인들도 군벌의 억압 속에서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다. 1988년 8월 8일 시작된 버마 항쟁이후 지금까지 독재 군사정권에 의해 희생되어온 사람들은 수 천 명이 넘는다. 한국의 경계를 넘어서, 혹은 아시아의 경계도 넘어서, 단지 사람으로서 요구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들을 돌려달라는 프리 버마 캠페인의 주장이 무리는 아닐 것이다.

프리 버마 캠페인의 마지막 100차 집회는 ‘나와 우리’의 조진석 활동가가 대표로 기자회견문을 읽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프리 버마 캠페인은 끝났다. 그러나 참여자들은 버마의 민주화가 이루어질 때까지 지속적인 연대와 행동을 통해 계속 노력할 것을 결의하고 큰 목소리로 “Free Burma”를 외치며 버마 민중들의 나라를 버마 민중들의 손에 다시 돌려줄 것을 촉구했다.

김유리/ 인권실천시민연대 인턴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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