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예수] 마태오복음 해설 -127

1 그때에 예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2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모세의 자리를 이어 율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3 그러니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키시오.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본받지 마시오.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습니다. 4 그들은 무거운 짐을 꾸려 남의 어깨에 메워 주고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습니다. 5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마나 팔에 성구 넣는 갑을 크게 만들어 매달고 다니며 옷단에는 기다란 술을 달고 다닙니다. 6 그리고 잔치에 가면 맨 윗자리에 앉으려 하고 회당에서는 제일 높은 자리를 찾으며 7 길에 나서면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이 스승이라고 불러주기를 바랍니다.”(마태오 23,1-7)

마르코 12,38-40에서도 다윗의 아들에 대한 질문 뒤에 율법학자들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그 비판이 마르코에서는 3절 길이에 불과했지만 마태오는 23장 전체로 확대되었다. 그만큼 이 문제는 마태오에게 중요하다. 산상수훈 첫 부분처럼(마태오 5,1) 예수는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하고 있다. 산상수훈과 마태오 23장은 추의 양쪽처럼 연결해서 보아야 한다. 산상수훈에 비해 마태오 23장은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소홀히 다루어졌다.

1절의 군중을 평신도로, 제자를 성직자로 해설하는 학자도 있지만 동일시하는 것이 의미상 더 적절하다. 율법학자는 신학자로, 바리사이는 경건한 평신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바리사이파는 당시 자타가 공인하는 모범적 평신도 단체다. 그리스도교에서 성직자가 성례전(전례)과 가르침을 모두 맡고 있지만 당시 유다교에서 사제가 성례전(전례)를, 율법학자는 가르침을 담당하였다. 유다교 평신도인 예수가 유다교 지배층인 신학자들과 경건한 평신도 단체를 비판한다. 권력이 있지만 존경받지 못하는 종교인은 지도층이 아니라 지배층에 불과하다.

유다교 여러 분파 중 오직 바리사이만 유다전쟁 후 지속되었다. 그후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는 사실상 동일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70년 유다전쟁 이후 바리사이들이 가르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니 2절은 예수가 직접 한 말씀은 아니겠다. 유다교 회당에 모세의 자리(의자 Kathedra)가 실제로 있었다. 신자를 보는 높은 위치에 주로 돌로 만들어진 의자였다. 가르치는 품위에 맞게 그들은 앉아서 가르쳤다. 불교에서도 사월 초파일에 큰스님은 앉아서 가르친다.

3절은 아주 의아하다. 바리사이의 가르침을 조심하라고 예수는 이미 경고하였다.(마태오 16,11-12) 전통을 핑계 삼아 하느님의 말씀을 무시한다고 예수는 비판한 바 있다.(마태오 15,1-9) 이 모순을 풀기 위한 여러 시도가 있었다. 3절은 유다교 회당과 초대 공동체의 사이가 좋았을 때 이야기다. 그런 기간은 아주 짧았을 것이다. 75년 무렵 회당에서 그리스도인을 저주하는 기도가 바쳐진 후 3절은 효력이 사라졌을 것이다. 4절은 말과 행동 사이의 모순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행동과 그 숨은 의도의 관계를 비판한 것이다. 악한 의도에서 나온 선한 행동은 사실 악한 행동이다.

5절 성구 넣는 갑(상자)은 두 종류가 있었다. 이마에 보이게 매는 상자에는 출애급 13,1-10. 신명기 6,4-9; 11,13-21이 담겨 있다. 왼쪽 어깨 옷 속에 숨겨 보이지 않는 상자는 유다인 성인 남자들이 기도 시간과 낮에 메고 다닌다. 특히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신경쓰는 상자로서, 이것으로 그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쉽게 구분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유다교 계명을 잘 알지 못했고 계명을 지키는데 필요한 제사와 예물을 드릴 돈이 없었다. 돈이 없어서 종교의무를 다 하지 못하는 사람을 예수가 변호하는 것이다. 지금 예수가 한국에 오시면 십일조 논쟁을 보고 뭐라 하실까. 파란색과 흰색으로 상의 네 군데에 묶은 실은 민수기15,38-40; 신명기 22,12를 기억하려는 관행이다. 실의 길이는 힐렐 학파와 샴마이 학파 사이의 논쟁에서도 결판나지 못했다. 예수도 옷단에 기다란 술을 달고 다닌 것 같다.(마태오 9,20; 14,36)

잔치에 의자 순서를 놓고 엄한 규칙이 있었다. 손님의 나이와 품위에 따라 순서가 정해졌다. 회당 제일 좋은 자리는 율법학자 차지였다. 미사에서 내빈을 소개하거나 앞자리에 앉히는 모습은 옳은 일인가. 인도 어디 성당에서는 지금도 귀족들이 앞자리 의자에 앉고 다른 계급 신자들은 뒤쪽 바닥에 앉는다고 한다. 남미에서 군사정권 시절 독재자가 제일 먼저 영성체하는 모습은 자주 TV에 방영되었다. 독재자에게 성체를 허용하는 것이 옳은가.

말과 행동 사이의 모순, 겉치레, 숨은 의도에 대한 비판은 유다교에도 많았다. 사도행전 15,10; 갈라디아서 3,10-과 달리 율법과 계명을 기쁘게 감사하게 지키는 유다인도 많았다. 마태오가 그런 모습을 공정하게 보도하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그러나 마태오는 큰 틀에서 비판한 것이다. 율법학자나 바리사이 뿐 아니라 초대교회에 대해서도 마태오는 경고하는 것이다.

본문에서 예수는 이른바 일반화의 오류를 범했다. 당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 모두가 예수의 비판에 해당되지는 않는다. 예수가 그들 모두를 일일이 조사하여 통계자료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약간의 일반화 오류는 피할 수 없다. 학자들이 모든 표본조사를 거쳐 발언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타당한 비판도 불순한 의도나 시기심을 가진 사람에게는 트집 잡힌다.

예수의 놀라운 분별력을 배우고 싶은 본문이다. 예수는 성직자와 신학자의 역할을 인정하되 그들의 행실을 비판한다. 종교인의 역할만 보면서 그 행실에 눈감지 않고, 종교인의 행실을 비판한다 해도 그 역할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성직자의 역할을 감안해서 성직자에 대한 행실을 눈감아주는 사람이 있다. 성직자의 행실에 불쾌한 나머지 성직자의 역할을 무시하는 사람이 있다. 교회를 보는 눈도 마찬가지다. 교회의 역할을 보고 교회의 부패를 못 본 체 하기 쉽다. 교회의 어두운 점에 실망하여 교회를 멀리 하기도 쉽다.

가장 안타까운 경우는 교회의 행태에 실망하여 예수를 멀리 하는 경향이다. 그러나 이 모든 사례는 예수의 태도와 거리가 멀다. 종교인의 역할을 인정하는 그만큼 그들의 행실을 비판해야 한다. 종교인의 행실에 대한 비판만큼 그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 종교인의 자기반성은 말할 필요도 없다. 오늘 본문에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 자리에 주교, 목사, 신부라는 단어로 바꾸어 읽어보자. 틀린 구석이 어디 하나라도 있는가. 그 자리에 또한 우리 자신을 넣어보자.

예수회 소속인 칼 라너 신부는 수도회 규칙에 따라 로만 칼라를 하지 않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방문하였다. 그런 모습에 요한 바오로 2세는 불쾌해서 자신과 라너가 같이 사진 찍는 것을 거부하였다. 라너같은 위대한 신학자는 교황을 만나고도 사진 한 장 없다. 그런 신학자가 푸대접을 받다니. 예수회 소속인 나의 스승 소브리노 신부가 로만 칼라하는 모습을 나는 엘살바도르 체류 3년간 한 번도 본 적 없다. 겉모습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언어, 호칭도 마찬가지다. 겉모습에 속고 껍데기에 속아 사는 사람들이 많다. 온 세상을 다 속일 수 있어도 자기 자신과 하느님은 속일 수는 없다.
 

 
 

김근수 (요셉)
연세대 철학과, 독일 마인츠대학교 가톨릭신학과 졸업. 로메로 대주교의 땅 엘살바도르의 UCA 대학교에서 혼 소브리노에게 해방신학을 배웠다. 성서신학의 연구성과와 가난한 사람들의 시각을 바탕으로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마르코 복음 해설서 <슬픈 예수 : 세상의 고통을 없애는 저항의 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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