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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메주 모시기[청라의 마을에서 살아남기-40]

아무리 생각해도 콩 농사만큼 어려운 농사는 없다. 싹이 올라올 때는 비둘기가, 잎이 나기 시작하면 토끼나 고라니가, 콩을 가만 두질 않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올 여름엔 날씨가 무덥고 지독히도 가물었던 탓인지 별별 종류의 노린재가 대거 출현! 콩 꼬투리를 쪽쪽 빨아 먹었다. 다울이 아빠가 이른 새벽마다 밭에 나가 하루에 백 마리 이백 마리씩 노린재를 잡았지만 그들의 활약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무래도 녀석들이 우리 밭은 약을 안 치는 것을 알고 ‘여기가 천국이네!’하고 모여드는 듯했다.

그리하여 수확한 메주콩은 씨로 쓸 것 빼고 겨우 아홉 되. 집 앞 100평 남짓한 텃밭에 죄다 메주콩을 심었건만 한 가마니는커녕 한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예년에 비하면 아홉 되도 고맙기만 하다. 거기에다 밀 한 되 보태어 메주를 쑤면 우리 식구 일 년 먹을 된장은 충분히 담글 수 있기 때문이다.

드디어 대망의 메주 쑤는 날! 광주에 사는 친구도 함께 하기로 하여, 두 집이 함께 메주를 쑤게 되었다. 그런데 인터넷이며 책이며 뒤져가며 자료 조사는 많이 했으나 막상 실전에 들어가니 뭐 하나 제대로 아는 게 없다. 콩을 물에 불릴 때부터 물을 도대체 얼마나 넣어야 하나 버벅거리는가 하면, 솥에 콩을 얼마나 채워야 하는지, 밀과 콩을 한데 삶을 것인지 따로 삶을 것인지…, 모든 게 헷갈리고 아리송하기만 했다. 그런데다가 날은 춥지, 이른 아침부터 거센 바람과 함께 눈발까지 날리지, 이보다 더 심란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졌다.

이와 같은 상황을 눈치 채고 앞집 아주머니가 달려왔다.
“메주 한 뻔도 안 해 봤간디?”
“한 번도 안 해 봤다니까요.”
아주머니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약간은 딱하다는 듯이 우리를 바라보셨다. 그리고는 이것저것 지시를 내리며 진두지휘를 하셨다.

경험 많은 누군가가 있다는 건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나는 비로소 마음을 놓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안심도 잠깐, 상황은 더 혼란스러워졌다. 아주머니가 콩을 더 넣으라고 해서 넣었는데 조금 뒤엔 너무 많다고 빼라고 하고, 불을 세게 때라고 했다가 줄이라고 했다가 도대체 일관성 없는 지휘를 하시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정작 아주머니가 필요할 때 아주머니는 어디론가 사라지셨다. 콩이 잘 삶아졌는지 아닌지 알아야 하는 그 중요한 타이밍에 말이다.
“이쯤이면 되었겠지?”
“글쎄? 다 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정청라

처음 가보는 길이기에, 그 누구도 확신하지 못하고 계속 머리를 갸우뚱거리는 가운데 메주 만들기 작업이 이어졌다. 그 전까지는 충실하게 아이 돌보미 역할을 하고 있던 나도 메주를 빚을 때는 적극적으로 한 몫을 했다. 도자기를 배웠던 경험이 있어서 메주를 빚는 게 영 낯설지는 않았던 것이다. 흙덩이를 만지는 느낌으로 콩덩이를 만지며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묘한 기쁨에 빠져들었다.

메주 만들기를 돕기 위해 일부러 유치원에 가지 않은 다울이도 내 옆에서 열심히 메주를 빚었다. 처음에는 손에 묻는 게 싫다며 안 하겠다던 다울이, 그러나 한 번 빚는 재미를 느끼자 자꾸만 더 하고 싶다고 했다. 그 덕분에 작고 앙증맞은 아가 메주는 점점 불어나고, 급기야 다랑이도 메주를 만져보겠다고 달려드는 통에 진땀을 빼야 했다. 다시 나타나신 앞집 아주머니는 메주가 너무 작다며 옆에서 계속 잔소리를 늘어놓으시고….

이렇게 정신없는 가운데 메주 빚기가 끝나고 메주를 말리고 띄우는 작업이 남았다. 그런데 여기서부터는 상상을 초월하는 험난한 여정이 펼쳐진다. 메주가 추울세라 열심히 사랑방에 군불을 지피고 여러 번 들락거리며 뒤집어주고…. 정말이지 아기 돌보듯이 모셔야 하니 말이다. 또, 정성만으로 다 되는 것도 아니다. 다울이 아빠가 나름 지극정성을 다했으나 결국 우리 메주에 푸른곰팡이가 핀 것을 보면, 메주는 사람을 알아보기도 하는 것 같다. 머릿속에 메주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제 아무리 많다한들 오랜 경험을 당해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도 내 나이 서른다섯에 처음으로 메주와 부대껴 본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앞으로 몸소 겪으며 실패를 맛보며 지혜를 쌓아갈 수 있는 세월이 많이 남아 있으니까. 나와 같이 오래된 지혜 앞에 무지몽매한 젊은 사람들이, 더 늦기 전에 메주와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정청라
귀농 7년차, 결혼 5년차 되는 산골 아낙이다. 유기농 이웃들끼리만 사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살다가 두 해 전에 제초제와 비료가 난무하는 산골 마을 무림으로 뛰어들었다. 왕고집 신랑과 날마다 파워레인저로 변신하는 큰 아들 다울이, 삶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 작은 아들 다랑이, 이렇게 네 식구가 알콩달콩 투닥투닥 뿌리 내리기 작전을 펼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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